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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김정아 역] 마음의 발걸음(1997)

독서일기/에세이(외국)

by 태즈매니언 2024. 11. 1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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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글솜씨의 작가 리베카 솔닛이 30대 중반에 썼던 그녀의 두 번째 책입니다. 원제는 <A Book of Migrations>(1997)인데, 솔닛 어머니의 양가 조부모가 모두 아일랜드 이민자라 솔닛도 '아일랜드 3세'라서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했다고 합니다. 전체 미국인 중 아일랜드계는 약 3,800만 명으로 역국계와 독일계 다음으로 많고, 아일랜드 본토인구보다 여섯 배나 많다죠.

솔닛은 1987년 27세 때 아일랜드에 처음 가봤고, 1994~1995년 사이에 몇 달 간 아일랜드를 여행하면서 경험하고 생각한 에세이들과 함께 독립연구자로서 연구한 '소고'들이 자유롭게 교차했더군요.

비교문학 박사이자 빼어난 번역가이신 김정아님 덕분에 '유럽 중심의 세계사와 동부 중심의 미국사, 영문학사의 정전들'에 대한 청년 솔닛의 통쾌한 비판을 즐겁게 읽었네요.

제 영문학이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충분히 올해의 책으로 꼽을만한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비록 30여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아일랜드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신흥경제성장 국가로 부상하기 시작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어서, 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처럼 길이 남을 명저라고 생각되네요. 아마 한 세대만 지나면 아일랜드 안에서도 옛이야기가 되어버릴 식민과 탈식민, 해외이민 같은 이야기들이 아직도 현지 주민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시절의 기록이니까요.

경지면적이 전 국토의 64%라지만 농업이나 목축업 종사자는 불과 16만 여명에 불과한 지금의 아일랜드를 예언했다고 볼 부분들, 세계화된 도시가 된 더블린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유럽대륙의 로마니(집시)처럼 아일랜드 내부에서 박해받아왔고, 2017년에야 법적으로 소수민족으로 인정된 '트래블러'까지 인터뷰하고 연구한 솔닛이 참 대단합니다.

1991년에는 산림면적이 국토면적의 1%까지 떨어졌다가 겨우 11.2%로 회복된 초지만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영국의 목재 수탈로 인한 것이었는지도 처음 알았네요. ㅠ.ㅠ

아일랜드 서부 해안의 장보고 격으로 엘리자베스 1세와 협상을 하고 천수를 누렸던 호걸 그레이스 오말리(Grace O'Malley:1530~1603)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넷플릭스 시대극으로 만들면 인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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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9, 41쪽

더블린은 처음 세워질 때부터 지금까지 침입자들의 도시였다. 침입은 아일랜드 역사의 주요 모티프가 되어왔고, 더블린은 주요 침입 관문이자 점련지가 되어왔다.
(중략)
침입은 9세기에 노르만족 바이킹과 함께 시작되었다. 침입자들은 포들강과 리피강이 만나는 늪지에 더블린이라는 도시를 세우고 린 더브(Linn Dubh, '검은 호수')라는 켈트어 지명을 계속 사용했다. 그들이 섬 전체를 약탈하고 공포에 떨게 할 때 더블린이 근거지가 되어주었다.
(중략)
1170년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대략 1,000명의 병사들과 함께 침입한 수백 명의 노르만계 영국 기사들은 아예 렌스터를 점령하고 더블린을 영국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들은 더블린 성을 비롯한 튼튼한 요새를 지었고 아일랜드 땅의 많은 부분을 노르만족 귀족들에게 쪼개 주었다. 더블린은 그때 이후 1920년대까지 확실히 영국에 예속돼 있었던 반면에, 아일랜드의 나머지 땅은 부침이 있었다.

54~55쪽

(조나단) 스위프트가 주임사제로 있을 당시의 성 패트릭 대성당은 더블린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슬럼에 둘러싸여 있었다. 더블린에서 가장 낮은 지대였고, 비좀은 길에는 똥길이나 똥동산이니 하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중략)
불공평과 불의, 흙과 똥에 대한 스위프트의 깊은 관심에는 성 패트릭 대성당 동네라는 글자 그대로의 기반(ground)이 있었다는 것이 문학사 연구자 캐럴 패브리컨트의 지적이다.

57~58쪽

영문학 그 자체가 영국 시골저택 같다. 영국 문학은 고색창연한 중앙 건물이고, 영어권의 다른 문학들은 헛간이나 신축 부속 건물이다.
(중략)
아일랜드 작가들이 써낸 걸작들은 관습을 가지고 놀면서 해체한다. 그 작품이 속한 장르의 관습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야기의 관습, 언어의 관습, 전통의 관습을 모두 해체한다. 그중에서 <걸리버 여행기>와 <율리시즈>는 각각 아일랜드 문학이라는 영국 점령지의 처음과 끝이다. 스위프트는 더블린을 망명지로 삼은 아일랜드인이고 조이스는 더블린을 떠나 망명자가 된 아일랜드인이지만, 어쨌든 두 책 다 조롱과 망명과 방랑의 책이다.

132쪽

대기근의 생존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살아 있다니 그것은 내게 경이로운 발견이었다. 시간 그 자체가 탄력적이라서, 똑같이 먼 과거라고 해도 어떤 과거는 이야기가 되어 살아 숨 쉬고 있고 어떤 과거는 침묵 속에 묻혀 있다. 한 사람의 기억이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과거는 150년 정도(노인이 아이였을 때 만난 누군가가 겪은 일까지)가 아닐까.

143쪽

"농가의 부모가 가산을 보존하고 싶을 경우, 또는 노동자의 자녀들이 살아남고 싶을 경우, '잉여' 자녀의 해외 이민은 공동체의 오점 같은 것, 국민을 부양할 능력이 부족한 국가의 부끄러운 낙인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중략)
해외 이민이라는 '해결책'이 내포하는 이상적 가정의 파괴를 이렇게 독하게 합리화해야 할 의무를 떠안은 사회는 아일랜드 사회 말고는 달리 없었다." Joseph Lee <Irish Values & Attitudes>(1984) p.112

222쪽

내가 처음에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게 아일랜드에서 100일 내내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100일 내내 비를 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함께 알려주었다. 다행히 아일랜드의 날씨는 비가 오는 날씨, 아니면 비가 좀 그친 것 같은 날씨, 아니면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라서, 이 한 가지 화제의 변주만으로도 끝없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274쪽

(16세기말 아일랜드 식민지 행정관이었던) 스펜서가 아일랜드 진압 작전을 제안하면서 아일랜드의 목축민들을 스키타이족 유목민에 비유하던 때가 있었고, 그렇게 목축민의 비정주 생활을 즐기던 아일랜드인들은 결국 땅에 얽매인 가난한 농경민이 되었는데, 아일랜드인들이 목축민이었을 때 키우던 양이 결국 농경민이 된 아일랜드인들의 땅을 빼앗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까, 한때 목축문화를 지탱해주던 양이 결국 외국자본을 지탱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277쪽

아일랜드에 풍경시가 없는 것은 아일랜드에서 숲을 없앴기 때문이잖은가? 아일랜드 문학에 무엇이 왜 없는지를 모르면서 영국 문학에 무엇이 왜 있는지를 알 수 있겠는가? 영국 문학에 있는 것들 속에 아일랜드 문학에서 빼앗아 간 것들이 있지 않겠는가? 지금 영국에서 누군가가 정원 같은 쾌적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한때 아일랜드에서 누군가가 감옥 같은 억울함을 겪었기 때문이 아닌가? 영국에는 목가가 있고 목가가 상징하는 안정과 풍요가 있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궁핍하기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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