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강화도 쯤인 아일랜드 브레이에서 거주 중인 이현구님의 에세이입니다. 워킹홀리데이나 어학연수로 아일랜드를 택하는 이들이 늘었다지만 IT기업의 유럽본사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별로 없을 것 같네요.
아일랜드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대영제국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16세기 튜더왕조의 헨리8세로부터 시작되서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 이전까지의 영국의 간섭과 지배시기는 마치 일본이 임진왜란이래로 계속 조선을 침략하고 때때로 하삼도를 점거하다가 결국 1801년에 조선 전역을 완전히 식민지로 만들고 나중에는 내지로 통합해서 지배하다가 태평양전쟁 패망 이후에야 한국이 분단된 채로 독립했다고 생각해보면 너무 비슷하게 보여서요.
물론 기후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1년 중 무려 300일은 비가 오고 대부분 초지로 이뤄져있는 평탄한 지형인데다가 겨울철에도 영상 5도씨 이상이라니까요.
책에서 소개하는 아일랜드에 대한 이야기들보다 저자의 남편 ‘존’의 인생사가 가장 와닿더군요.
1964년 런던에서 태어나서 어릴적 호주로 이주갔다가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이모네로 보내진 소년. 이모가 운영하던 펍에서 살다가 15세에 선원이 되서 요리일을 배우고, 기타를 연주하며 긴 항해를 견디면서 전세계를 다녔다고 합니다. 아일랜드로 돌아와 요리사로 일하며, 음악을 가르치다가 저자와 결혼하게 되었고요. 1960년대생인 한국인에게도 외항선원은 가난하고 답답한 나라를 벗어나서 힘들지만 큰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되었죠.
아일랜드는 90년대부터 ‘켈틱 타이거’라는 별명을 얻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생스러운 시기를 겪었다죠. 브렉시트 이후에 런던을 대체하여 다국적 기업의 유럽지사들이 모인 서유럽의 싱가폴 역할을 하고 있다는데, 이들 소수의 다국적기업들에서 일하지 않는 보통의 시민들은 90년대 이전과 지금의 자신들의 생활을 비교해서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네요. 기후때문인지 지금도 위스키, 맥주, 감자와 양고기, 양털, 수산물 외에는 수입품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여서요.
저자분께서 지금 스페인에서 한 달 살기를 하시는 걸 보면 아일랜드의 겨울은 방문하기에 별로인 시기 같긴 합니다. ㅎㅎ
제가 기억하는 아일랜드의 들판은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늘 바람이 가득합니다. 눈이 부실만큼 강한 햇살에 속아 벌컥 차문을 열고 나섰다간 즉각 덮쳐 오는 날선 바람에 소름이 오소소 돋고 맙니다. 그러다가 햇빛이 쏟아지는 하늘 한편에 회색 구름이 낮게 깔리기 시작하면, 다시 부지런히 차를 몰거나 준비해둔 우산을 꺼내는 것이 좋습니다. 곧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질 테니까요. 하지만 또다시 거짓말처럼 해가 반짝 비치며 하늘이 미안한 마음에 무지개 한 자락을 높이 띄워줄지도 모릅니다.
특히, 춥고 비가 자주 내리고, 밤이 일찍 찾아오는 아일랜드의 길고 우울한 겨울을 펍에서 나누는 왁자지껄한 농담과 웃음 없이 나기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용하고 편안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펍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펍은 엄청나게 시끄럽다. 옆 사람과 말할 때도 거의 소리 지르듯 해야 할 때가 많다.게다가 아일랜드 사람들은 펍 안에서든 밖에서든 잔을 들고 서서 마시는 데 익숙하다. 사람이 많을 때는 펍 앞의 인도까지 점령한다.
처음 아일랜드에 왔을 때는 이들의 콘서트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술을 마시며 떠드는 펍에서 콘서트를 하는 걸까? 더구나 아이리시들은 펍이 아닌 공연장에서도 늘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한마디로 ‘자기들끼리 놀면서’ 음악을 듣는다. 사람들이 공연에 집중하지 않고 제 할 얘기 다 하면서 음악을 듣다니…. 뮤지션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콘서트를 몇 번 보면서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완벽한 사운드 시스템, 화려한 조명을 갖춘 무대는 뮤지션을 우상으로 빛나게 하지만 관객은 단지 ‘청중’으로 남는다. 그런데 아일랜드 사람들은 음악과 함께 논다. 일어나 박수 치라는 뮤지션의 요구가 없어도 알아서 일어나 박수 치고 춤추고 논다.
펍이나 호텔 레슽토랑의 벽 혹은 문 앞에 놓인 알림판에 ‘카버리(Carvery)’라는 단어가 있다면 아일랜드 전통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보통은 점심식사로 제공되며, 메뉴는 그날그날 달라진다.
다른 유럽 나라들을 여행하며 화려한 건축 양식이 눈에 익은 사람이라면 더블린의 건축물들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너무 많은 색이나 복잡한 형태로 일상을 긴장시키지 않고, 자연의 빛, 색, 모양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들의 소박함과 겸손함이 좋다.
흐렸다 개었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날씨와 비바람 부는 날들의 우울을 견딜 수 있는 건 사계절 내내 초록 들판과 나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타닉 호 침몰 백 주년을 기념해 2013년에 문을 연 타이타닉 박물관은 벨파스트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건축물로, 알루미늄 패널과 통유리로 만든 독특한 외관 자체가 큰 볼거리다. 타이타닉 박물관이 서 있는 곳이 실제로 타이타닉 호를 만들어 바다로 내보냈던 조선소가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날씨 좋은 일요일’은 아이리시들에게 로또 당첨과도 같다. 집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 벡 퍼센트, 기분 좋게 술 마실 이유는 2백 퍼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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