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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헬리엉 루베르, 윤여진]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2019)

독서일기/유럽

by 태즈매니언 2020. 6. 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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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내게 각별하다.

 

처음으로 프랑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면서부터였다. 요즘이야 '불뽕'은 비웃음을 사지만, 90년대 중반엔 프랑스영화나 샹송들이 인기가 많았는데 난 일단 프랑스어 발음이 음악처럼 우아해서 끌렸다.

 

주당 1시간 배우고 수능에도 안들어가는 과목이라 다들 별로 의욕이 없었지만, 불한사전 들춰보며 샹송 가사도 해석하며 애정을 갖다보니 프랑스어 경시대회 학교대표가 되었고, 부모님께서 당시 거금 백만 원을 투자해주신 덕분에 전남대 교수님의 레슨을 받아 전국경시대회 입상까지 했다.

(정작 대학가서는 프랑스어회화 한 과목만 듣고 까맣게 잊고 살았지만 ㅋㅋ)

 

2013년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프랑스를 여행했다. 출발은 바르셀로나였지만 3주 이상 남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을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좋은 풍광들도 봤고 갖고 있던 환상도 많이 깨졌다. 더구나 업무로 관여한 건이 있어 빠리 출장을 두 번 다녀오기도 했고. 그래서 최소한 어린시절 읽었던 <먼나라 이웃나라:프랑스편>의 인상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웬걸~이 책을 덮고 나니 프랑스에 대해 내가 뭘 알고 있었나 한탄이 날 정도다. 가끔 유툽이나 블로그에서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의 생활기를 재미있게 봤는데, 프랑스사람이 직접 말하는 이야기와는 좀 달랐다. 사람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고 귀결되는 결론은 같지만.

 

<비정상회담>을 잘 안봐서 오헬리엉 루베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이 책으로 느낀 루베르는 겸손하고 한국과 프랑스 모두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구나 싶다.

 

세상에...프랑스에서 소득세 원천징수제도가 시행된 시기가 2019년 1월부터이고, 대중교통을 국영철도회사인 SNCF가 독점하다보니 마크롱이 경제부장관을 역임하던 시절에서야 최초로 지역간 고속버스제도가 생겼다니.

(그래서 고속버스터미널이 없다고 한다 ㅠ.ㅠ)

 

어릴적에 불뽕 주사를 맞았던 나지만 병인양요 시절의 조선과 지금의 한국, 지금의 프랑스를 대비해보니 국뽕이 차오른다.

 

혹시 한국이 프랑스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불뽕주사기를 꺼내기 전에 이 책부터 읽고, 본인이 살던 시절의 지식들을 업데이트한 다음에 고나리질하시길 추천한다.

 

책 말미에 루베르가 추천해주는 전국의 여행명소들을 열심히 구글맵에 저장한 것도 수확. 나중에 2인승 로드스터를 빌려서 프랑스를 길게 여행하고 싶구나.

(이 책을 추천해주신 한승혜님을 경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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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쪽

 

프랑스 만화의 특징은 '개인 창작'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에서는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걸 존중한다. 미국이나 일본 만화 업계처럼 스튜디오 창작 방식보다는 개인 작업, 또는 글과 그림작가 두 명 정도가 만든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스튜디오 창작 방식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작가 개인의 색깔을 더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교육제도에 깔린 철학의 영향인 것 같은데,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산업화 측면에서는 불리할듯.)

 

172쪽

 

아이를 대하는 구체적인 방식들은 가정마다 각양각색이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양보하면 안 된다'는 인식은 사회 전반적으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너무 멋대로 행동하면 주변 사람들이 부모를 비난하거나 눈치를 준다. 이럴 경우 부모는 아이를 굉장히 심하게 꾸짖는다. 만약 미국 사람이 이 광경을 본다면 아동 학대라고 생각할 정도다.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혼내는 과정에서 큰 소리가 나고 시끄러워지는 것은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해주는 분위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도 자제하는 법과 공공장소에서 갖춰야 할 예의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216쪽

 

프랑스에서는 주로 저소득층에서 자녀들에게 미국식 이름을 붙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저소득층 가족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TV에서 보여 주는 미국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부모들은 '브랜든'이나 '딜런'같이 '미드'에 나온 인물들의 이름을 따서 아이 이름 짓곤 한다.

프랑스에서 미국식 이름은 가난하고, 상급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신분 상승을 하겠다는 야망조차 없는 사람들의 표상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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