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출판 느낌이 나는 문고판 책인데, 최근인 2022년에 나왔더군요. 표지의 아일랜드 국기와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두 개의 명사를 연결한 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산부인과의사로 35년간 일해온 저자가 머나먼 아일랜드를 무려 21회나 방문했다니 호기심이 들만하고요.
저자의 인생사와 아일랜드의 간략한 역사 및 사상가를 교차한 구성입니다. 저는 아일랜드의 성 골룸반 외방전교회가 일제시대 조선에서 적극적으로 카톨릭 포교활동을 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저자는 3년간의 공중보건의 생활 중 선배들 조언에 따라 개업비용을 마련하려고 제약사의 리베이트를 받고 불필요한 주사들을 가난한 김포 농촌의 환자들에게 투약하고, 술집에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런 저자가 시골 성당에서 봉직하던 아일랜드 신부님과의 세 번의 만남에서 (아일랜드계 스코틀랜드인) A. J. 크로닌이 쓴 소설의 주인공처럼 개심해서 글을 쓰고, 아일랜드에 탐닉하게 되었더군요.
중간에 등장하는 아일랜드의 해방신학자 토마스 케네디 신부가 인상깊긴 했지만, 인내심이 부족했더라면 완독하기 힘들었을 정도로 논리의 비약에 환빠스멜까지 엉망진창인 부분과 훌륭한 아포리즘들이 공존하는 책이었습니다.
인간은 참 복잡한 존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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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대기근 때 아일랜드인들은 아사를 피해 가까운 리버풀로 가장 많이 이민을 떠났다. 그래서 현재 리버풀 인구의 절반이 아일랜드계이다.
68쪽
종교는 상대성의 세상에서 ‘이미 정해진 절대성’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문학은 주어진 표의에 또 다른 의미를 계속 붙여 진짜 의미를 끊임없이(실제로는 영원히) 연기시킨다.
76쪽
(아일랜드의 해방신학자 토마스 케네디 신부) “진보는 존재의 온전함을 지향하는 변화주의자들이야. 항상 위를 향하는 거고, 그러기 위해선 매 순간순간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하는 거지. 그래서 진보의 완성된 형태가 보수인거야.
(중략)
“진짜 보수는 초인들이야. 그래서 ‘나는 보수다’라고 하는 자칭 보수들은 대부분 가짜야. 아무런 ‘발전적 자기극복의 서사’를 쓰지도 않으면서 편안함만 유지하려는 안일한 수구들이지.”
142쪽
굶어죽기를 피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죽음 직전에 빵 한 조각을 훔쳐서 오세아니아로 귀양을 가든지, 희망의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었다. 아일랜드의 대지는 또다시 떠나는 자와 남은 자로 나뉘었다. 어쩔 수 없이 별리의 아픔을 담아내야 했던 아일랜드 서쪽 바다를 제임스 조이스는 ‘떠나는 자들의 대서양은 찢어지는 눈물의 바다’라고 묘사했을 정도로 대기근은 끔찍한 재앙이었다.
161쪽
1916년 부활절의 독립 봉기는 미완의 결말을 도출했다. 아일랜드 카톨릭은 조국의 물리적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은 실패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독립된 주체로서 자민족을 넘어서는 ‘억압된 세계민족의 구원‘이라는 해방담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주제넘은 세계해방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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