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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정지호 역] 우리 시대를 살아가며(1967)

독서일기/에세이(외국)

by 태즈매니언 2025. 2. 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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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많이 추천해주시는 독서광 페친님들께서 에릭 호퍼의 책에서 인용해주시는 글귀들이 인상깊어 사보게 되었습니다.

1967년에 출간되었던데, 부두노동자 생활을 1964년에 잠시 끝내고 버클리대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세미나를 하며 집필에 집중하던 시기였다네요.

에릭 호퍼가 샌프란시스코 엠바카데로 항구의 부두노동자로 일하던 때엔 1957년에 발명된 컨테이너 하역시스템은 아직 없었을 것 같지만, 인력에 의존하는 하역노동이 크레인으로 바뀌는 등 블루칼라들이 기계로 대체되던 시기의 위기감과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AI서비스로 인해 줄어드는 지금과 겹쳐보입니다.

케네디 대통령도 1962년에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고 하니까요.
"자동화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기에 자국 내 완전 고용을 유지하는 일은 지금 1960년대에 우리 미국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계화와 이민 등으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뒤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심리와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운동의 전략 등에 대한 옛사람의 이야기였지만 지금 시점에도 통하는 내용들이 많더군요.

소위 지식인들이 우대받는 사회와 기업가와 엔지니어가 우대받는 사회의 전형을 EU와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데, 에릭 호퍼는 이미 60년대에 이들 양 부류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었네요.

AI기술과 서비스의 발전으로 자기가 '지식인'이라고 뽐내는 행위가 우스꽝스럽게 보이고, 지식의 유무로 엘리트층 그룹을 판별할 수 없는 '지식인이 없거나 모두가 지식인인' 사회가 다가오는데, 이런 사회에서 개인들이 다양한 관심과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플랫폼 제국을 거느린 소수 빅브라더들의 지배하에 살아가게 될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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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우리는 20세기의 대단한 역설에 직면해 있다. 즉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부족주의, 카리스마 강한 지도자, 주술사, 절대적 맹신, 부족전쟁의 시대로 퇴보했다는 것이다.
(중략)
사회의 원시화를 초래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급격한 변화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수백만 인구의 급격한 도시화가 우리 시대의 주요 사건으로 자리 잡았고, 자기의 뿌리를 잃은 수백만 인구가 새로운 정체성을 필요로 하면서 우리 시대의 기질이 형성되었다.

40쪽

모든 문명의 어느 한 시점에서 서기는 '작가'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서기가 무엇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는지 알아보면 모든 경우 한결같은 답이 나온다. 바로 이들은 관직을 박탈당했을 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86쪽

지식인을 만드는 것은 눈에 보이는 지적 우수성이 아니라 지식 엘리트층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이다.

91쪽

정치 분야에서 지식인은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 설득의 기술에서는 대가이지만 일단 권력을 잡으면 그 기술을 발휘하려고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설득이 아닌 명령을 내리고 싶어한다. 역사적으로 설득에 의존하던 정부는 지식인보다는 상인을 배출해냈다. 상인은 보통 권력의 외양보다는 권력의 실체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지식인은 권력을 장악하길 원할 뿐 아니라 막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타인과 논쟁하고 그를 설득해야 한다면 권력을 쥐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다가 이들은 단순한 복종에는 만족하지 못한다. 아주 효과적으로 설득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대중의 열렬한 환호를 강압적으로라도 받아내려 한다.

92쪽

전 인구가 전례 없이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는 현상은 지식인이 권력을 잡으면서 나타난 가장 치명적인 결과이다.

93쪽

지식인 지배 계급은 창의적인 개인을 방해하고 심지어 숨통을 막기도 한다. 이런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권력을 잡은 지식인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대체로 재능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진정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은 권력을 장악하여 행사하고 무엇보다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질이 부족해 보인다.

119쪽

지식인이 지배하는 사회는 점점 동물원을 닮아가는 경향이 있다. 둘레에 쳐놓은 울타리와 담장은 동물을 들여놓고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 용도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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