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인들에게 교통물류가 흥미롭고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싶을 때는 그간 마크 레빈슨이 쓴 <더 박스>를 추천해왔습니다. 이젠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혁신이 인류의 생활을 얼마나 현격하게 향상시켰는지를 보여주니까요.
그리고 오늘 이에 견줄 수 있는 책을 한 권 찾았습니다. 교통연구원을 11년을 다녔고, 민자도로 업무도 6년째이면서 이제야 찾아본 게 계면쩍기도 합니다.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주간(interstate)고속도로 사업의 역사와 큰 역할을 했던 이들을 발굴한 품이 많이 들어간 논픽션입니다. 버지니아에 사는 저자 얼 스위트는 일곱 권의 책을 썼고, 그 중 여섯 권이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네요.
1,300억 달러의 예산이 들어가고 총연장 75,600km의 주간고속도로망 사업은 로마제국이 건설한 가도망처럼 미국의 동맥과 정맥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유재산 중 가장 평가액이 높은 자산이 경부고속도로이죠.
물론 저도 드라이브할 때는 양쪽 길가의 가로수들이 터널처럼 덮은 왕복 2차로 지방도가 좋지만, 미국이나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의 대도시들은 고속도로망 없이는 그 기능을 며칠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연방예산마련 방법 등이 포함된 주간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위한 근거법은 1956년에 통과되었지만, 노선의 구상은 18년전부터, 기본설계도 12년 전에 마쳤던 이 사업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삶과 역할을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당대의 문화사도 많이 담았네요.
자동차의 초기시절인 1912년에 당대의 셀랍 칼 피셔가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12개주를 거치는 자동차전용도로를 제안했고, 그가 부회장으로 참여하여 이듬해 창립된 링컨고속도로 협회 활동 당시 고속도로 사무가 주와 연방 중 누가 이니셔티브를 쥐는지부터가 이슈였더군요.
평균시속 32km 수준의 당시 협회의 고속도로의 건설사업이 부동산 개발회사, 자동차회사, 타이어회사, 아마추어 카레이서 등 자동차 애호가들의 기부금, 그리고 지역발전을 소망한 주민들의 자원봉사노동으로 건설되었다는게 지극히 미국적이더군요.
주간고속도로 건설을 둘러싼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관계는 1916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건설비용은 양자가 분담하고, 고속도로의 소유자는 연방정부로 하는 협력체계를 규율한 <연방도로지원법>을 서명하며 틀이 잡힙니다.
1919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교가 72대의 차량과 300명이 넘는 수송대와 엔지니어들을 이끌고 미래의 군물자 수송데이터 조사 임무를 맡아 워싱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를 횡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주간고속도로사업은 이러한 경험애 아우토반을 경험한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구축되었다는 통설을 부인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훨씬 전부터 주간고속도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일해온 아이오와 출신 엔지니어인 도로관리국장 토머스 H. 맥도널드의 노력부터 초점을 맞춥니다.
그를 시작으로 허버트 페어뱅크, 교통부 연방고속도로관리국 국장 프랭크 터너까지 세 사람을 주간고속도로 구축의 가장 큰 유공자로 보고 이들의 역할과 역경들을 서술합니다.
중반 이후로는 자동차와 고속도로 위주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반대운동가로서 작가겸 건축도시비평 칼럼니스트 루이스 멈포드, 볼티모어 주민으로 제70번 주간연결 고속도로 흑인거주지 관통노선건설을 포기시킨 시민 조 와일즈의 생각과 행동으로 균형을 맞추고요.
책 표지사진에도 나온 방패모양의 미국고속도로 표지의 유래, 네이게이션 안내만 따라가는 요새는 의미가 퇴색했지만 당시 운전자들에겐 중요했던 도로번호 부여 규칙, 클로버형 인터체인지(입체교차로)의 첫 설치사례, 도로설계기준 마련을 위한 조사와 연구과정, 독일의 아우토반이 미국의 연구와 기술을 참고했다는 사실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네요.
텍사스 A&M 대학이 교통공학 분야에서 왜 유명한지 몰랐는데, 당시 총장이 맥도널드의 친구라서 도로관리국장에서 퇴직한 맥도널드를 학교로 모셔왔더군요. 이미 업계의 거인이었던 맥도널드는 학내에 <텍사스 교통연구소>라는 씽크탱크를 만듭니다.
(저희 원장님도 여기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ㅋㅋ)
자동차 유류세, 대형트럭과 타이어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연방고속도로기금을 조성해서 주간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1955년 주간고속도로 법안의 재원마련 방안이 우리나라에서 1994년에 도입된 교통세의 원류였더군요. 우리나라는 목적세인 교통세 세입이 교통시설특별회계로 들어오죠.(초기에는 100%였는데, 현재는 68%만 ㅠ.ㅠ) 그리고 이 특별회계 중에서 약 40% 중반 정도가 도로계정으로 배정됩니다. 이 법안은 한 차례 부결되고 이듬해인 1956년에 시행됩니다.
이 법이 제정되던 1950년대 중반의 미국과 1980-90년대의 산업생산과 대량소비, 인구구조와 정주상황 등을 보면 고속도로는 한정된 재원으로 빠르게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던 것 같습니다. 총사업기간이 13년인 대규모 사업을 승인할 정도였으니까요.
여기서 끝나면 주간고속도로 건설 찬가로 그쳤을테죠. 이렇게 막대한 고속도로를 건설하며 스프링롤현상, 중산층의 교외이사, 국도변과 도심의 쇠퇴, 도시고속화도로로 인한 철거로 인한 역사성 훼손, 부족한 보상금과 주민이주 갈등, 도심 경관 및 녹지공간 훼손, 고속도로 IC근처 토지가격의 급등처럼 고속도로가 확장시킨 미국 자동차문화의 어두운 부분을 서술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의 갈등과정에서 경제적 타당성과 공학적 기능에 충실하게 설계된 고속도로사업이 도시기본계획에 부합해야 하고, 공청회 절차를 통해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할 의무가 생기고, 연방고속도로관리국이 교통부 소속이 된 1966년 개정법에는 연방 및 주정부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존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됩니다. 우리나라의 “전략환경영향평가”제도가 이걸 따른거죠.
은퇴한 프랭크 터너의 제안에 따라 1969년 워싱턴DC에서 시작된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선제도나, 연방고속도로기금이 대중교통, 도시철도 재원으로도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논리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제도의 원류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인프라의 걸작으로 손꼽을만한 미국의 주간고속도로 체계가 노후화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예산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유지관리가 안되고 있다고 합니다.
물가지수는 계속 오르는데 갤런당 정액으로 부과되는 유류세는 인상하지 못하고 있죠. 미국인들의 면허취득률과 평균 주행거리는 줄어드는데, 최신 차량들의 연비가 계속 좋아지면서 유지관리 재원인 고속도로기금은 적자를 내고 있다네요. 유루세를 내지 않는 전기차가 증가하고 있고요. 이러니 주행거리기반 과세체계로 전환하고 혼잡통행료 부과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말하며 이 책은 끝납니다.
미국에서 이 책이 2011년에 출간되었는데, 미국의 주간고속도로가 처한 상황은 얼마나 나아졌을지 궁금하네요. 가끔 보는 뉴스들만 보면 뾰족한 해결책을 못찾은 것 같은데 말이죠.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이나 일제시대 구축된 철도망을 보면 철도위주의 지역간 교통체계로 갈수도 있었는데, 미국의 영향으로 고속도로가 더 중심이 되었습니다. 올해 2월에는 전국고속도로 총연장이 5,000km를 돌파했을 정도로요.
하지만, 재정의 도로건설예산은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고,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경제활동인구 감소가 시작된 장래 인구구조, 1%대 성장으로 저성장 기조를 봤을 때, 서울특별시 관내 지하도로나 수도권 일부지역 말고는 신규 고속도로 사업을 추진하기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미국처럼 너무 늦기 전에 슬슬 노후화되기 시작하는 고속도로인프라의 유지관리 사업모델을 마련해야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민간투자사업으로는 건설투자가 없는 순수운영형 사업이 아직 선례가 없어서 답보상태입니다. 그렇다고 현행 국유재산법이나 공유재산법처럼 관리위탁 계약 또는 사용수익허가 방식으로 운영하기에는 계약기간이 최대 5년이라 운영사업자가 수익을 내기 너무 짧은 기간이고요.
그나마 유료도로의 통행료 수입 예상액을 눈덩이처럼 잡아먹던 전기 수소차에 대한 통행료 할인이 내년에는 40%로 줄고, 2027년 20%를 끝으로 일몰될 예정이라 다행이긴 하지만요.
고대 엔지니어들은 콘크리트 믹스에 말의 털을 섞어 넣음으로써 수축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거기에 혈액이나 동물의 지방을 조금 첨가하면 얼고 녹는 과정을 견디게 해준다는 것도 깨달았다. 산화칼슘이 지방과 만나면 비누의 성질을 가지게 되는데 거기서 생기는 거품이 기포를 형성하여 콘크리트가 온도 변화를 견디게 하는 것이다.
(프랭크 터너) “주간고속도로는 매일 매일 끊임없이 관리되고 대체되어야 합니다. 그것 자체로도 아주 큰 프로젝트입니다. 고속도로의 수명은 30-35년 정도라고 봅니다.”
6천 개에 육박하는 전국의 교량 중 4분의 1이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쓸모가 없어졌다. 이들 대부분은 50년을 보고 지어졌다. 2008년에 그 다리들은 건설된 지 평균 43년이 지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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