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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전현우]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2024)

독서일기/교통

by 태즈매니언 2025. 2. 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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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적으로 혹은 몇 년 동안 서울로 편도 2시간 이상을 통근하며 살아온 '이동'과 '운동'을 분리하는 추세에 의문을 제기해온 노화의학전문의와 <거대도시 서울 철도>,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를 통해 도로와 자동차 중심의 우리나라 교통(축소하면 대도시권광역교통)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며 철도체계의 개편을 제안해온 과학철학 연구자가 2023년에 만나 의기투합해서 아홉 번 이메일을 주고 받고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의 논의가 흥미롭긴 했는데 이 주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다루려면 故조중래 교수님 같은 교통경제학자까지 끼어서 논의를 진행하는게 맞았을 것 같습니다. 사업의 타당성 분석과 국가 및 지자체의 중기재정운용계획 추계에 대한 이야기없이는 탁상공론에 그칠 뿐이니까요. 그랬다면 제가 올해의 책으로 꼽았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두 분이 펴는 논지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으면서도 근본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이유는 이런 이유였습니다. 한국은 싱가폴 같은 도시국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도 30대 중반에야 운전을 처음 시작했고 지금도 운전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지만 자동차는 늙어서 면허를 반납하기 전까지는 도로가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이동권에 있어 혁명적인 자유를 줍니다.

이동권을 주거권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입주 대기기간이 평균 5.4년인 홍콩 특별행정의 공공주택의 2인 이상 최소주거면적 기준은 26제곱미터입니다. 8평이 채 안되지요. 그러니 4인가족이 산다면 욕조, 세탁실, 다이닝룸 공간은 공간은 넣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러 공중목욕탕에 가고, 빨래는 코인 빨래방에서, 음식은 노점이나 작은 식당에서 먹습니다. 개인들이 각자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목욕하는 것보다 목욕바구니를 들고 10회권을 끊은 동네목욕탕에 가는 것이 열에너지와 상하수도 이용량이 적고, 이동하면서 걷게 되니 건강에도 좋습니다. 거대도시에서 자동차 이용을 줄이자는 두 분의 논의도 같은 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싱가폴이나 홍콩같은 도시국가가 아닌데, 개인의 이동권을 이렇게까지 제약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의 수도권에서도 안나오는 철도사업의 B/C를 투자평가지침과 편익산정기준을 바꿔서 높여서 추진하면 그 운영적자는 누가 어떻게 분담해야 할까요? 더 많은 철도로 인한 빨대효과로 인한 서울집중이 용적률과 건폐율이 홍콩수준으로 올라가게 압력을 넣게될 가능성도 있고요.

수도권 주민들이 서울로의 통학, 출퇴근 등을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을 개별 지자체간 협의로는 해결할 수 없어 2018년에 국토교통부에 차관급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가 생겼죠. 간선급행버스와 M버스 같은 버스운송체계 개편 중심으로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또, 교통경제학자나 교통공학자들이 제안하는 도로용량이 넘쳐나지 않도록 자동차이용 수요관리를 하는 정책들은 이미 충분히 제안되어 있습니다. 차고지증명제, 도심진입요금(혼잡통행료), 5부제 또는 10부제, 무료도로의 유료화 및 탄력요금제, 대중교통 소득공제 확충처럼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대중교통이용요금이 원가보다 훨씬 낮고, 65세 이상은 도시철도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국민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가구당 1대 이상의 승용차를 보유한 수도권 유권자들이 이런 수요관리 정책을 실행하는 지자체장이나 M버스의 서울도심 진입을 막고 외곽의 환승센터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타게 만드는 대광위위원장을 지지할까요? 어떻게 정치적인 동의를 얻어내서 서울시내 자동차 수요관리를 할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어서 아쉽습니다.

국토교통부를 보조해서 우리나라 민자 유료도로사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제 입장상 토건족의 옹호논리라고 치부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도 철도운임이 너무 낮아서 신규사업의 사업타당성이 안나오고, 그에 비해 용지보상비를 감당할 수 없는데도 건설 및 운영비용은 계속 치솟는 철도를 수도권에 몇 개나 추가할 수 있을까요?

자동차에 대해서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취득-보유-이용의 전과정에서 국세와 지방세가 부과되고 있고, 교예환세 재원이 교특회계로 68% 전입되서 그 중 40%가 철도사업에 투자되고 있는 상황이라 이미 탄소세의 역할도 어느 정도 하고 있는데 말이죠.

제가 보기에 가장 현실적인 정책은 서울특별시장이 시장의 권한으로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 동부간선도로의 전면 유료화, 거주자우선 주차제 폐지, 공영주차장 주차료 100% 인상, 승용차에 대한 차고지증명제, 서울시내 혼잡통행료 전면부과(현실은 딱 하나 남은 남산터널 혼잡통행료도 폐지될 상황이죠.)를 하고, 이렇게 모은 재원과 국비 매칭+BTL 민간투자사업(저는 '민관합작사업'이 적절한 번역이라고 봅니다만 법률용어이니)으로 도시철도망을 확중하면서 민간투자사업이니 9호선처럼 추가운임을 내게 하는 방식이 서울로의 수도권 광역교통집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정책을 내건 후보가 과연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서울로의 이동시간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그 광역교통거점 인근을 뺀 나머지 수도권 군소도시와 지방의 상대적 거주매력은 더 떨어지겠죠. 어차피 지방의 대중교통인프라는 지자체의 자치예산 규모와 인구감소로 지속가능하지 않으니, 무궁화호 철도 수준은 유지하되, 시군과 인근 시군까지의 근거리 통행은 자동차와 수요응답형 교통수단(바우처 제도 포함) 위주로 갈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데, 이에 대한 저자들의 의견도 궁금했습니다. 저는 비수도권 지자체들에서는 자차가 필수적이라는 걸 인정하고, 자동차의 취득, 보유에 대한 비용을 감면해주는게 이동권 보장이라고 생각해서요. 이것도 도로 토건족 옹호논리일까요?

다만 수도권 도시철도망의 증설, 인구감소와 고령화 추세의 급속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대략 73세쯤에 실질적으로 경제활동에서 은퇴하고, 이동능력을 상실해서 노인의료복지시설에 입소 규모 만큼의 부동산 공급 등을 감안했을 때, 약 15년 후에는 수도권 통근혼잡 문제가 꽤 해소될 것으로 보는 전망에는 저도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망의 신규노선 신설사업도 그 시점부터는 중단하고, 개량 및 유지관리 위주로 가야할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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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버스 대란은 전근대 서울의 교통망에서 신도시 개발까지 이어지는 겹겹이 쌓인 여러 문제 위에 나온 빙산의 머리부분이었다. 사람들은 빠른 대책을 원한다. 하지만 그런 획기적인 해법 같은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나는 내 일상을 지배하는 이 교통 지옥의 정체가 궁그맿ㅆ고, 10여 년간 많은 시간을 들여 교통 지옥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도시와 철도를 분석했다. 교통문제를 생각하면 솔직히 막막하다는 감정이 가장 크다. 그렇게만 나는 그럼에도 우리의 길, 판도라 상자 바닥에서 튀어나가지 않고 남은 희망을 들어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다.

28쪽

움직이도록 설계된 사람은 좁은 공간에 오랫동안 묶여 있으면 좋지 않은 변화들을 경험한다. 다리가 부어오르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근력과 이동력은 장기간 사용하지 못하면 점차 건강을 잃고 관절은 굳어간다. '모빌리티' 속에서 사는 현대인이 정작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47쪽

2024년 4월 국토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서, 우리 사회의 개인이 집을 나서 귀가할 때까지인 '활동시간'은 평균 10.3시간이며 이 중 이동 시간이 24.3%인 2.5시간을 차지했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일하고 자는 시간, 직장에서 보낸 점심시간 1시간을 빼면 8시간이 남는데, 이 중 반절에 가까운 시간을 출퇴근(주로 '지옥철'이나 만원 버스다)에 사용해버리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59쪽

1억 원에 달하는 기아의 최신 SUV 전기차 EV9의 최고 사양은 전비가 3.8km/kWh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나오는 크고 효율이 나쁜 전기차들은 최소한 인류와 생물권의 멸망을 늦추는 일에는 별로 기여하지 않는다. 이런 '거함거포주의' 추세는 차량 가격까지 계속 상승시켜, 전동화 기술을 부유층의 장난감으로 묶어놓는다는 해악도 있다.

79쪽

철도는 열차가 실제로 다녀야 의미가 있다. 특정 철도 노선이 정말 유의미한 노선인지 평가하려면 열차 운용 계획부터 수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선 건설 계획은 시작일 뿐, 배선도를 작도하고 시각표까지 작성해야 실제 평가가 가능한 노선이 된다.
또한 사람들은 결국 역까지 걸어서 접근하는데 보행로를 시뮬레이션에 입력하기란 까다로운 일이다.

140쪽

사람들은 자신을 도로 환경 생산에 기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순히 소비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모든 게 매끄럽다. 단순 소비자에게 혼잡이나 탄소 배출은 도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리자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현상이지, 도로 이용자가 비용을 분담해 뭔가 해야 할 사태는 아닌 것이다. 혼잡통행료가 급진적인 소리처럼 들리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오늘의 도로 이용객들이 소비자 쏠림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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