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님 덕분에 알게된 책입니다. 대학시절 인류학 수업과 교양서들을 보며 의례에 대해 캐나다 추장들의 과시적인 포틀래치 낭비축제를 통한 갈등해소와 부의 재분배처럼 기능주의 이론들에 수긍하고 넘어갔었죠. 요즘은 손목시계 혹은 부착형 생체정보 측정도구, 분석 소프트웨어들이 많아져서 실험심리학 방법에 기반한 종교의 인지과학적 분석을 도와주는군요.
온갖 루틴에 집착하는 스포츠스타들처럼, 예나 지금이나 인류는 스트레스가 심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면 자발적으로 의례화된 행동을 끌어들이고, 그 동작에 어떤 결과가 있으리라고 예측합니다. 저자는 인과관계가 없고 그저 통제감을 줄 뿐인 의례행위는 왜 자연선택에서 제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자신이 20년 동안 탐구한 결과를 정리해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해줍니다.
한국과 같은 세속적인 현대국가에서는 과거에 의례의 상당부분을 지배하던 종교나 국가의 영향력은 물론 관혼상제 의례의 전통들이 상당부분 소멸되었지만, 여전히 혼돈의 해독제가 필요하기에 의례는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다만 소규모 그룹안에서 파편화된 의례 위주로 생기는 중으로 보입니다. 아이돌기획사, 자기계발 성공팔이나 다단계회사들이 기를 쓰고 이러한 의례들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가두리양식장 안에 넣으려고 애를 쓰고 있고요.
엄격성, 반복성, 중복성에 기반한 의례가 실제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실력발휘 및 일상 생활에 대조군에 비해 유의미한 효과를 보여준다는 실험결과들, 제식훈련-합창-군무 등 박자를 맞춰 함께 몸을 움직이는 행동들이 상대를 더 신뢰하고 협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사회적 접착제로 기능한다는 점, 전세계 대부분의 의례는 크게 일상 의례와 극한 의례 둘로 구분되며 역할을 나누어 맡고 있다는 점, 극한의례로 인한 참여자들의 동조적 정서 각성효과는 의례당사자와의 친소정도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점, 불필요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한 극한 의례인 결혼식이나 장례식 절차나 비용지출이 의례의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려는 의지를 포착하기 위한 것이고, 조폭처럼 목표달성을 위해 사회적 결속에 더 의존하는 사회는 더 극적인 입회의식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직장 내 회식에서의 건배사같은 다들 싫어하는 일상 의례가 무임승차자를 방지하고 목표달성을 위한 사회적 결속 기능을 담당한다는 내용, 대가가 큰 의례의 자기 강화적 힘 등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12년 마다 갠지스강 둑에서 열리는 힌두교 종교 행사인 '마하 쿰브멜라'의 참석자가 최대 1억 5천만 명에 달한다니...역시 인크레더블 인디아!
의례는 매우 구조화되어 있다. 그것은 언제나 '옳은'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엄격성, 같은 동작을 수행하고 또 수행한다는 반복성,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중복성을 요구한다. 즉, 의례는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예측 가능성은 일상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통제감을 제공한다.
알고 보면 세계의 의례 대부분은 그 효력을 키우기 위해 주로 두 가지 기본 전략 중 하나에 의존한다.
한편에는 매달, 매주 또는 심지어 하루에 여러 번 높은 빈도로 수행하는 의례가 있다. 이런 의례는 전형적으로 그다지 볼만하거나 신나지 않는다. 반대편에는 한 해에 한 번, 한 세대에 한 번 또는 심지어 일생에 한 번 하는 식으로 덜 자주 수행하지만 정서적으로 강렬하고 사치스러운 의식(극한 의례)이 있다. 하나는 반복을 중심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각성에 의존하는 두 가지 정반대의 문화적 인력이 있는 듯 하다.
공유된 고난 앞에 조성되는 강한 유대는 초기 인류 공동체가 전쟁이나 포식자, 자연재해 같은 실존적 위협과 맞닥뜨렸을 때 합심하여 역경을 극복하도록 도운 진화적 적응일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이 가장 이례적으로 협력한 일부 사례는 그러한 실존적 위협 한복판에서 발견된다.
(중략)
요컨대 극한 의례는 친사회적 이익을 거두려 이런 조건을 흉내 내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공동체가 전쟁이나 다른 어떤 재난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적극적으로 강력한 의례적 경험을 제공해 구성원의 기운을 북돋을 줄 안다.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그처럼 강력한 집단 의례를 겪은 사람들이 표현하는 바는 흔히 전투원들의 감상을 연상시킨다.
의례의 실천자가 지닌 중요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관찰하기 어려운 자질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이 능력 덕분에 대가가 큰 의례는 사회생활과 관련된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가가 큰 의례는 개인과 집단, 집단의 문화 모두에 이로운 정직한 헌신의 표시 역할을 하며 선순환을 만들어 낸다. 헌신적인 개인은 자기 지위를 높여 더 잘 결속될 수 있고, 헌신적인 구성원이 더 많은 집단은 응집력이 더 강해진다. 이는 대가가 큰 의례를 요구하는 집단에 상당한 진화적 이점을 제공하여 그러지 않는 집단을 능가하게 해 준다. 한편 대가가 큰 의례적 관행과 결부된 믿음이 더 믿을 만하게 보이는만큼,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서 지지받고 전도될 가능성이 더 커질 뿐 아니라 다른 집단이 모방할 가능성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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