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님의 마음을 움직인 독후감덕분에 찾아보게 된 책입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도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숫자가 1만 4,439명으로 13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주변에 자살자가 없어서인지 저는 이런 숫자를 보면서 자살자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자살자의 유가족들에 대해 한번도 헤아려본 적이 없었네요. 우리나라에 백만 명이 훨씬 넘는 자살 유가족이 있다는 사실을요.
성경에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할 뿐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는데, 제가 만약에 저자였다면 사막잡신이나 믿는 개독교 따위 비웃어주고 살텐데 젊은 시절부터 선교봉사를 하다가 선교사 배우자와 결혼하고, 필리핀 오지에 파송되서 선교를 하다가 제대로 치료를 못받아 한쪽 청력을 상실하기까지 한 건 참 안타까웠습니다.
여자는 국민학교만 졸업하면 된다는 새어머니때문에 중학교에도 못갈 뻔했던 것처럼 저보다 겨우 네 살 많은 저자께서 담담하게 풀어놓으시는 가족사를 보면서 수시로 놀랐습니다.
그리고 출판사에는 죄송한 말이지만 저자분께서 보다 전문적인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물론 저자분을 훨씬 더 힘들게 해야하는, 쉽지 않은 채근이 필요했겠지만요.
저는 그런 개신교나 해외선교를 미화하는 작품으로 안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넷플릭스에서도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라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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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들에게 가장 쓰린 고통을 주는 말들 중 하나다. 특별히 고인이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을 경우 남겨진 가족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된다. 내가 아는 엄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엄마와 내게 추억이 가장 많은 장소도 교회였다.
참으로 슬프게도,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에서 자라온 내게 가장 안전하지 않은 장소가 교회였다.
"형제가 몇 명이냐"고 낯선 사람이 물을 때마다 머리가 멍해졌다. 너무 아파서 사람들이 내게 물어보지 않기를 바랐다. 오빠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과 지금은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오빠의 죽음은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게 해서 더 고통스러웠다.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두려움은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동물적인 감각을 발휘하게 했다. 타인의 부탁이 내가 감당하기에 벅찬 경우에도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내 삶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고 무리한 부탁을 하는 사람들조차 밀어내지 못했다.
가족을 잃은 후에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원망하고 비난할 때, 고통은 가중된다.
나의 상실은 타인에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내 삶에 허락된 고통이라는, 헤아리기 힘든 신비를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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