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크메르 루즈의 <킬링 필드>는 1975-1979년 사이의 대학살을 통칭한다는데, 임명묵님 덕분에 알게된 이 책은 그 초기를 겪은 생존자 ‘핀 야싸이’의 수기입니다.
해외유학파 출신의 자수성가 엘리트가 주인공이다보니 크메르 루즈가 어떻게 농촌을 기반으로 해방구를 구축해서, 부패한 론 놀 정권을 전복했는지에 대한 과정은 거의 나오지 않네요.
이 책에서 다루는 사건이 일어난지 반세기만에(원서 출간은 1987년) 한국어로 이 수기를 읽을 수 있게 된 건 세종시의 출판사 <마르코폴로> 덕분입니다.
1975년에 크메르 루즈가 캄보디아의 정권을 잡은 직후부터 마오주의에 경도된 이들 혁명가들은 도시주민들을 농촌마을로 소개시키고, 원시적인 농사와 밀림 개척작업에 투입하면서 이들의 ‘개인주의적 근성’을 ‘정화’하는 혁명화 작업을 수행해나갑니다.
책 제목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수용소에서 죽음을 거두기 사흘 전 마지막으로 아들을 봤을 때 남긴 당부이자, 저자가 수용소에서 탈출하기 전에 자기 자식을 잃은 여인에게 마지막으로 살아남았던 둘째 아들을 맡기면서, 아들에게 남긴 당부이기도 합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이 책이 다른 부분은 17명의 대가족들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아남기 위해 거래를 통해 필사적으로 정보와 물자를 확보해가는 분투기였습니다.
(저는 말라리아에 걸린 주인공에게 어린 딸이 베푼 호의로 인해 파멸한 시골마을 주민의 후일담이 가장 슬프더군요.)
저자 핀 야싸이는 태국으로 탈출한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여 토목 엔지니어로 살아갔고, 재혼해서 세 자식을 두었다고 합니다. 70세인 2014년에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이 책을 모티브로 한 VR작품 전시회에도 참석하셨다고 하니 아버지가 남긴 당부를 충실히 지켰다고 볼 수 있겠네요.
거칠게 일반화해보면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조악하더라도 사회구조를 뒤엎는 혁명을 원하고, 이러한 목소리를 결집한 정치세력이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반대파를 척결하면서 교조주의로 치닫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 극에 달하는 미중 갈등의 결과가 지도자가 취한 정책의 효과성이나 캐릭터보다는, 총동원령을 내렸을 때 둘 중 어느 사회가 더 크메르 루즈에 가까운가 여부로 판가름나지 않을까 예상해보게 됩니다. 그 사회는 중국일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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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쪽
신상 메르세데스가 바퀴을 떼어낸 채로 벽돌 위에 올려져 있었고, 대장장이 다섯 명이 그것을 해체하고 있었다.
(중략)
할말을 잊었다.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여러 날을 들여가면서 수만 달러는 나갈 물건을 크메르 루즈의 혁명 경제에 입각해 무가치한 물건들로 바꿔놓고 있었다. 이전 같으면 몇백 달러면 살 수 있을 물건들로 말이다.
135쪽
”(크메르 루주의 장교 페치 동무) 우리는 도시를 그대로, 사람들이 살던 대로 내버려 두는 게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소. 도시들은 저항의 중심지이고 작은 반당 집단들이 모이는 곳이오. 도시에서는 반혁명 종자들을 추적하기가 어렵소. 우리가 도시의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적들이 조직화해서 우리와 맞설 음모를 꾸밀 것이오. 도시를 통제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불가능한 일이오. 우리가 도시에 소개령을 내린 것은 모든 저항을 분쇄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반동적인 자본주의의 요람을 없애기 위함이오. 도시 주민들을 몰아낸 것은 크메르 루주에 반하는 저항운동의 조짐을 없애겠다는 의미요.“
200쪽
크메르 루주는 과거의 악덕에 대항하면서 모든 미덕을 말살했다. 그들은 삶을 제공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이념의 이름 아래 우리에게 준 것은 죽음이었다.
329쪽
결국 모든 신인민(그리고 적잖은 구인민)은 자신들이 종속되어 있는 체제의 적이 되었다. 자기네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그토록 많았는데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생각과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로봇이 될 수도 없었고 황소처럼 굴 수도 없었다. 크메르 루즈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를 ‘정화’함으로써 자기네가 잠재적인 적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혁명의 원래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신인민은 구인민이 될 자유를 절대 누릴 수 없었다. 크메르 루주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노예로 남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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