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에드워드 리/박아람] 버터밀크 그래피티(2018)

독서일기/에세이(외국)

by 태즈매니언 2025. 5. 10. 11:49

본문

 

공동체의 일에서 아예 눈을 돌리면 안되겠지만, 너무 후지고 추악한 욕망의 진창을 계속 보고있기가 힘들 때는 자연스럽게 매료되는 기품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보는게 위로가 되네요.

<버터밀크 그래피티>라는 와닿지 않는 제목에 대해서 이민 1.5세대인 저자가 설명한 것처럼 '연결'은 이 책의 주제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한 'connecting the dots'죠.

이 매력적인 책은 인생 자체가 중간계에 걸쳐 있는 상태로 연결의 연속이었던 1.5세대 코메리칸인 에드워드 리 자신의 개인사, 광활한 북미대륙 곳곳에서 사람들의 열광과 선호에서 비껴나있는 수십년 혹은 100~200년에 걸친 이민자들의 삶과 그들의 세계관이 남아있는(상당부분 허물어져버린) 공간,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authentic이 아닌 traditional) 음식이라는 보편언어, 이 세 가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프렌치나 이탈리언, 일식처럼 이미 유명 셰프들에 의해서 주류가 된 식문화가 아닌 민족 음식들을 찾아나서는 모험담이라 여행기+논픽션+에세이라서 글의 장르도 책의 주제, 저자의 정체성과 맞물리고요.

시오노 나나미의 <사일런트 마이너리티>나 김호동 교수님의 <황하에서 천산까지>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저자의 개인사가 훨씬 높은 비중입니다.

이런 책이니 당연히 제 올해의 책으로 올려야지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성공 이후에 바로 번역본이 출간될지 알았는데 왜 이리 시간이 걸렸나 싶었는데, 기다린 만큼 꼼꼼히 공을 들인 것 같은 훌륭한 번역도 한몫 거들었네요.

안성재 셰프처럼 고국과의 연결을 상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샐러드볼 세대들에게는 신기할 수 있는 멜팅 팟의 압력솥에서 살아온 이민자드들의 이야기는 보편적이지만, 한 명 한 명을 만나고 질문하는 저자의 깊은 시선과 애정덕분에 겹친다는 느낌의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의외로 현대차 공장이 위치한 앨라배마州 몽고메리市의 한식당들에 대한 챕터가 가장 밋밋하고 재미가 없었는데, 다음 책으로 미국의 한식들에 대한 책으로 쓰려고 아껴둔 거면 좋겠네요.

간호사와 의사, 목수, 요리사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적당히 상대하면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밸런스가 잘 잡힌 직업인으로 오래 일해온 분들이 풍기는 아우라가 멋지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이 더 굳어지네요.

저자 이균님이 중간중간 언급하는 개인사들을 보면서 주방에서 제대로 일을 배우고 자기 일에 몰입하는 요리사라는 직업을 갖지 못했다면, 그저 스테레오 타입의 주류가 되길 원하는 잘 생기고 여자 꼬시기와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1.5세대 날건달 아재가 될 수 있었겠구나 싶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거든요.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고, 그 일이 지식과 육체를 모두 갈고 닦아야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야하는 직업을 선택하신 덕분입니다. 이런 사람이 나오고 널리 알려진다는게 미국의 저력이고요.

책에서 알려준 여러 음식들 중에 제가 시도해볼만한 것들은 거의 없긴 한데, 나중에 리마인드 웨딩으로 아내와 함께 저희의 신혼여행지였던 스페인을 잠시 찍고 모로코에 가보려구요. 모로코음식과 레반트 음식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을 전혀 못하는데, 전통 발효 버터 스멘(smen)이 들어간 모로코 음식들을 맛보고 싶습니다.

 




--------------------------------------------------

12쪽

핫도그와 햄버거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지나치게 단순한 대답입니다. 저는 미국 음식의 정의가 이보다 훨신 복합적이고, 미국 땅을 밟은 모든 이민자가 여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가 기록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21~22쪽

나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 음식을 누가 만들었으며 그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훌륭한 요리를 발견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알아보는 일이 내게는 더 흥미롭다.
(중략)
나는 이민자들의 요리를 좋아한다. 맛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 안에 내가 요리에서 찾는 요소들, 즉 단순함과 융통성, 절약 정신 등이 담겨 있기 대문이다. 그러나 그런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주목받지 못한다.

27쪽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먹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좋아하는 음식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으면 그저 이름 없는 요리책이 아니라 한편의 회고록이 될 수 있다.

201쪽

(에드워드 리)"한국인은 지독히 내성적이지만 대게는 그런 척하는 겁니다. 진짜 장애물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거죠."

202쪽

음식은 신뢰에 기반하고 신뢰는 친밀함에서 나온다. 낯선 음식을 섣불리 먹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233쪽

나는 모인 여자들에게 우리 이민자들이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무얼 잃는지 물어본다. 대체로 비슷한 의견인 것 같다. 가장 먼저 읺는 것은 언어이고 그다음은 친척이나 조부모에 대한 기억이다. 다음으로 전통을, 그 다음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고 정체성을 잃는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결혼 풍습? 오래된 사진 몇 장? 내게는 요리와의 연결이 남았다. 음식의 전통은 대개 끝까지 놓지 않는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