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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2022)

독서일기/인물

by 태즈매니언 2025. 6. 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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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에 정수일 선생님의 부고 뉴스를 보고서 2022년에 출간된 이 회고록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34년 만주국 북간도 조선인 마을에서 태어나 2025년 서울에서 만 90세로 사망한 그가 겪어온 개인사와 현대사의 시공간들이 겹쳐있는 기록일테니까요.

나무위키에 대략적인 생애사가 정리되어 있긴 한데 정말 독특한 이력들이 많으신 분이시죠. 회고록이긴 하지만 남파 전부터 무함마드 깐수라는 신분으로 1984년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의 이야기들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책은 두껍지만 생애사와 자신의 학문적 업적과 사상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들은 15페이지 남짓의 서장으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6진4군의 변경 함경북도 명천현에서 살다가 1917년 북간도로 넘어와 수십호 규모의 조선인 화전민 취락에 자리잡은 윗대의 가족사와 당시 유민들의 생활모습, 간도에 살던 조선인들 사이에서 조선인들의 도회지였던 '용정시'의 위상, 외교관으로 모로코 주재 중 잠시 귀국해서 외교부 초대소에 다과를 차려놓고 각자 근무복장 차림으로 다과를 놓고 30분만에 치른 첫 아내와의 결혼식, 1955년 반둥회담에서 나세르와 주은래가 회담의 약조를 처리하는 세심한 모습, 북경대 동방학부의 스승이었던 계선림 교수의 풍모, 암묵적으로 용인되었던 북한으로의 불법 도강이라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외교부장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총리에게까지 북한으로의 환국을 공식적으로 청한 행동, 감옥에서 2,349페이지짜리 국어대사전을 433일에 걸쳐 독파한 일, 수형생활을 하면서 1년 9개월만에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완역한 모습 등이 기억에 남네요.

제가 수업을 들었던 문화인류학자 전경수 교수님, 법무법인 덕수의 설립자 고 이돈명 변호사님과의 일화때문에 한결 가까운 느낌도 들었고요.

책에서는 언급이 없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사가 사형을 구형한 상황에서 정수일 선생님은 최후진술에서 자신의 목숨보다 압수된 동서교류사 원고를 살려달라고 발언해서, 공판검사가 판결 선고 직전에 원고파일을 복원해준 이야기와 8년 동안의 결혼생활 동안 자신을 외국인이라고 철저히 숨겼던 남편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2년형이 확정되서 수감생활을 하는데, 20년 동안 일해온 병원의 수간호사직을 사직하고, 옥바라지를 했고, 출소하더라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늙은 남편(16세 연하라)을 먹여살리려고 국비지원 교육을 받으며 자격증을 따고, 매주 면회를 오고 온갖 생소한 언어로 된 책들을 구해서 영치하는 일들을 묵묵히 해낸 두번째 아내분의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같이 살면서 남편이 얼마나 학문적으로 정진하는 사람이었는지를 지켜봤다지만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북한의 보위부가 자국의 귀중한 인재를 어울리지도 않는 대남공작에 투입하는 바람에 한국이 시대인을 얻어 동서교류사 연구에 큰 도움을 얻었죠.

신분사칭으로 인해 박사학위는 박탈되었지만 고 정수일 선생님은 지도를 보며 (상상속의 오염된 표현이긴 하지만)실크로드를 머리에 담게 하면서 그 길이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는 점을 부각하시면서 교류의 역사를 복원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시대적 소명을 충분히 다하신 분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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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쪽

민족이 없었던들 문명다운 문명은 애당초 창조가 불가능했을 것이며, 민족주의가 없었던들 문명의 성장이나 전파, 교류는 역사가 기록한 양상으로 전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민족론과 교류론은 모순관계가 아니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민족의 존재는 문명과 그 교류의 전제다. 인간의 문명화는 언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공통적 구성 요소를 최초로 공유한 민족 집단으로부터 시작되고 확산된다. 인간 개개인의 윤리, 도덕이나 숭고한 사회적 가치도 민족 집단 구성의 세포인 가족으로부터 배우고 익히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문명교류학을 연구하면서 민족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민족주의와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532쪽

나는 비록 일시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놓였다 하더라도 한 번도 자학적인 불우지탄같은 넋두리나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이 시대, 이 세월의 축복받은 행운아로 자임하곤 했다. 왜냐하면 분단 시대를 포함한 격번의 이 시대, 이 세월이 나를 이만큼의 지성으로 키워주고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이러한 세월이 아니었던들 나는 전연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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