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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 아메리카 자전거여행(2006)

독서일기/자전거

by 태즈매니언 2014. 7. 8.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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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샾인 일산 '꿈꾸는 자전거'의 사장님 블로그에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읽고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홍은택씨는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를 통해 이미 접한 경험도 있었고. 


본문의 첫페이지에서 나오는 아래와 같은 현대 자동차 문명에 대한 비판은 아주 간결하게 화석문명의 정치경제학과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의 자전거의 매력을 잘 대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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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차는 한 시간을 달리면 무려 1만 8600칼로리를 소비한다. 같은 시간에 자전거는 350칼로리를, 그것도 허리둘레이 끼인 지방을 소비한다. 자동차로 운전하는 거리의 80%가 집에서 13킬로미터 이내에 집중된다. 몸무게 70킬로그램 한 사람을 나르기 위해 300마력을 내는 2000킬로그램 괴물을 움직이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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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위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하지만 교통사고와 소비문명, 석유와 비만에서 해방되는 방법이 자전거라고 해서 자전거 근본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특히 철도와 지하철, 버스 등과 같은 대중교통수단과 자전거를 결합할 때 자전거는 본연의 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자전거를 그거 탈것으로 생각하는 대중을 위한 공공자전거 시스템, 마이카처럼 자기만의 자전거에 대한 애착이 있는 사람들을 대중교통이용에 편리한 접이식 자전거 보급 및 대중교통 연계의 편리성 지원 등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저자는 본인이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에서 처음 제기한 문제의식의 연장선 상에서 자전거를 단지 곡의 변주로서 사용한 느낌이 강했다. 대안교통으로서의 자전거를 논의한다면 광활한 미대륙 횡단보다는 대도시에서의 시티 라이더로서의 경험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있음으로 인한 교류의 단절, 끊임없이 도매상점들을 먹어치우는 월마트로 인한 생필품 공급망의  붕괴, 공동체의 주요 소비자인 중소 자영농을 몰락하게 만든 국물 메이저들의 부당거래, 이러한 단일경작과 근거리 소비자인 도시민과의 교류나 협동조합보다는 수출중심이자 개인 단위의 교섭에 맡기는 미국 정부의 농업정책에 초점을 맞췄어야 하지 않았을까? 미국 중부의 농부들과 한량인 젊은이들이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불친절하고 때로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이유에 대한 보다 상세한 고민이 아쉬웠다.(당연히 그런 부분이 글에서 종종 언급되기는 했었다.) 한정된 시간과 짧지 않은 일일 주행거리상 그네들이 왜 자신들이 추구하는 미국적인 가치가 손상되고 있다고 느끼는지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해가 되긴 하지만.



자전거 여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 책을 낸 저자가 80여일 가까이 되는 대륙 횡단 자전거여행을 준비하면서 너무 기초적인 준비가 부족했던 부분도 이채로웠다. 적어도 나라면 좀 더 고민을 해서 준비했을 것 같았는데. 접이식 자전거인 몰튼을 탔는데도 80일 동안 자전거를 접은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아서 저자가 본인이 타고 여행한 자전거가 접이식 자전거라는 점을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몰튼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여행용으로 편리한 랜도너라는 자전거 종류도 있는데 말이다. 


대륙횡단 자전거 여행을 생각하면서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전거와 용품들을 준비하는 모습에서도 그 사람의 자전거여행에 대한 철학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지인으로부터 빌린 자전거에다가 트레일러에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일단 모두 싣고 떠나는 식이었다. 물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효과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 책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저자는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다양한 체험을 이 책에 녹여서 쓰고 있고, 다년간의 기자생활을 통해서 사람과 대화를 하고, 또 그 대화를 글 속에 간결하게 정리하는 데 있어서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게다가 본인은 자신의 영어실력에 대해서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인터뷰한 내용들을 읽다보면 이런 내용들까지 어휘를 알아듣고 대화를 나눴을까 싶을 정도로 영어실력도 뛰어나다. 하긴 영어서적을 번역했을 정도이기까지 하니. 중간중간 시적인 표현들을 사용한 부분들을 읽을 때면 어떻게 이런 표현들을 생각했는지 잠깐 감탄하고 다시 계속 읽기를 시작할 정도로 한글 솜씨도 좋다


그런 이유로 2006년에 출판한 이 책이 지금도 멋진 여행기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리라.


아래에서는 인상깊은 부분들을 인용해봤다. 인용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타이핑하기가 아주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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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쪽


미국의 철도회사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철도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차 전용이 맞다. 만약 자동차 회사들도 도로 포장비용을 부담하거나 또는 분담하기라도 해야 했다면, 이렇게 많은 자동차들이 설치고 다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이슈다. 왜 미국에서 납세자들의 돈으로 도로를 포장해주고 자동차 회사들에게 더 많은 차를 팔게 해줬는지 늦었지만 청문회라도 열어야 한다. 그렇게 공짜로 길을 닦아주니까 자동차들은 자기 것인 줄 착각하고 도로를 점령해버렸다. 


46쪽


1940년대 말 세계최대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는 다른 자동차 회사들과 담합하여, 전차 회사들을 몰래 매입한 뒤 전차의 궤도를 걷어내고 버스 회사로 바꿔버렸다. 버스를 더 많이 팔기 위해서였다. 물론 담합행위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지만, 제너럴 모터스 간부에게 벌금형, 그것도 단돈 50달러가 선고됐다. 그렇게 해서 전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데, 퇴근 휴스턴과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몇몇 도시에서 전차를 복원했다. 도심의 교통수단으로 전차만큼 많은 사람을 나르면서 안전한 게 없다. 


47쪽


무엇보다 자동차는 공존의 문화를 파괴한다. 자동차가 발달한 미국에서처럼 공공성이 공산주의처럼 죄악시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공공의 교통수단인 철도는 이미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올해 미국 정부는 철도 회사인 앰트랙에 대해 예산 지원을 중단키로 했다. 앰트랙사가 재정적으로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전에는 더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 기차가 장사가 안 되도록 정책을 펴놓고 이제와서.......


거기에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그레이하운드 버스조차 수지를 맞추기 위해 노선을 대폭 감축하여, 승객이 적은 마을들은 고립되고 있다. 미국에는 보도조차 사라지고 있다. 오로지 자동차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나라로 완성됐다.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국가가 됐다. 세계 인구의 5%도 안 되는 미국인들이 전세계 일일 석유 소비량 중에서 25%나 쓴다. 에너지를 낭비하고 공해를 일으키는 것 말고도 자동차는 사람을 사물화한다. 자동차에 올라타면 사람들은 자동차가 된다. 옆으로 지나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다. 그래서 서로 부딪히고 나서 보니 안에 사람이 들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는 식이다.


버스나 기차에 올라탔을 때 승객들이 공유하는 연대감이나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함께 하면서 형성되는 동지의식 같은 것들 대신 자동차는 개인적 안락함만을 추구한다. 


94쪽


도로에는 계급이 있다. 인터스테이트라고 주들을 연결하는 주간 고속도로, 도로 번호 앞에 US가 붙어 있는 국도, 그리고 SR이 붙어있는 주도, CR이 붙어 있는 카운티 도로, 그리고 아무 것도 붙어있지 않고 번호만 있는 도로. 


106쪽


내꿈은 동호대교 입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서, 한강 둔치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강을 헤엄쳐서 건넌 뒤, 나머지 구간은 뛰어서 출근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좁은 지하철에서 졸면서 한 시간을 가는 대신 전신운동을 하면서 출근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꿈을 안고 잠실대교 밑에서 한강을 왕복 도강한 적이 있다. 한강에서 실제 수영해야 하는 거리는 800미터 밖에 안되기 때문에 사실 웬만큼 수영하는 사람이라면 어려운 거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랜 준비운동으로 심장을 데워놓는 것이다. 


111쪽


미국의 의료체계는 한번 걸리면 과잉치료에다 거의 호객 수준이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까지 가는 데 10분도 안 걸렸는데, 1500달러 가까이 나왔다. 학생의료보험회사에서 일부를 부담하기는 했지만, 미국 의료제도의 실상을 아는 데 비싼 수업료를 냈다. 


121쪽


"이곳은 산세가 험해서 담배 농사와 목축 외에는 다른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런데 담뱃잎이 작년에 1파운드 당 2달러에서 1달러 50센트로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담배 농사를 포기했다. 그 돈으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담배 농사가 안 돼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도 줄었다. 담뱃잎 1파운ㄷ면 담배 1000개피를 만든다." 

1000개피면 50갑. 50갑이면 한 갑에 3달러라고만 해도 150달러. 아무리 세금이 많이 붙는다고 해도 담배 회사로서는 엄청난 마진일 것이다. 


124쪽


한가로운 시골에서 자신의 힘으로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그의 오랜 꿈이었다. 그의 꿈은 실현됐다. 하지만 조그만 가게들이 하나둘 없어져서 몇십 마일을 가야 장을 보고, 이발을 하고, 병원에 갈 수 있어서 불편하다고 말했다. 가게들이 문을 닫은 것은 대형 도매상들이 이제는 물건을 배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식품점은 닭을 한 번에 200마리 이상 주문하지 않으면 배달하지 않겠다고 해서 가게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는 그 가게가 아마 일 년이 가도 200마리를 다 팔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모든 게 대형화해야 살아남는 월마트 신드롬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큰 기업들의 편으로 알려진 공화당을 지지한다.


140쪽


하루 24시간 중에서 언제를 몇시로 할 것인지도 최근에서야 정해졌다. 미국에서는 19세기 말까지도 각 지역이 알아서 태양을 보고 시간을 정했다. 그래서 같은 동부에 있어도 필라델피아 시간은 뉴욕보다 5분 느렸고 볼티모어보다는 5분 빨랐다. 이 같은 '시간자치제'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열차시각표를 정하는 철도 회사 직원들이었다. 미국을 횡단하는 열차는 100개가 넘는 다른 시간대들을 지나갔는데, 각각 다른 현지시각마다 정확한 발착시각을 표시하기 위해 시각표 담당 직원들은 불면의 날을 보내야 했다. 문제가 더 복잡한 것은 철도 회사 자신들도 회사마다 다른 시간을 썼다는 점. 펜실베이니아 철도 회사는 필라델피아 시각, 미시간 센트럴 철도 회사는 디트로이트 시각을 사용했다. 한 기차역의 발착시각이 철도 회사마다 달랐으니, 역에는 다른 시간을 표시하는 수많은 시계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참다못한 기차 회사들은 1883년에 미국 철로협회 회장이던 W. F. 앨런이 '일반시간협정'을 제안하자 두말없이 채택했다. 아무 강제력이 없는 기차 회사들끼리의 협정이었지만, 기차가 지나가는 도시들도 앞 다퉈 이 협정을 받아들였다. 얼마나 그 동안 다른 시간대로 고통받았으면.. 이 협정의 골자는 바로 미국을 15도 각도에 따라 네 시간대로 나눈 것. 이 협정의 정신인 표준시간제가 법으로 채택된 것은, 시간이 한참 흘러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인 1918년이었다. 


151쪽


메노파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그들을 찌르고 죽이는 사람들에게 보복은 커녕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죽어간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 교파는 박해를 피해 신구 대륙을 전전하는데, 이게 인류에게는 축복이 된다. 그들은 1790년에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의 초청으로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로 가서 스텝 평원을 푸른 농토로 바꾸었다. 그들은 뛰어난 농부였다. 당시 유럽의 곡물시장은 이들이 재배한 우크라이나 밀이 장악했다. 예카테리나 여제가 죽고 그가 보장한 군복무 면제와 종교의 자유가 흔들리자, 그들은 1871년에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그들이 들여온 '터키 레드 밀'로 캔자스의 대평원은 세계의 곡창지대로 탈바꿈했다. 이전까지 대평원에서는 벌레들과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가문 여름때문에 어떤 밀 품종도 통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서 추위에 대한 내성을 키운 터키 레드 밀은 겨울에 파종해서 여름 이전에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평원에서 살아남았고 해일처럼 뻗어나갔다.


182쪽


스무 살인 장남 라이언은 고교를 졸업했을 때 독립을 강요당했다. 부모는 만약 집에 머무르고 싶으면 집세를 내라면서 그를 쫓아냈다. 대신 1600만원짜리 집을 한 채 사서 독립할 곳을 마련해줬다. 지금부터는 학교를 다니든 말든 혼자 힘으로 꾸려가야 한다고 했다. 며칠 동안 꾸물거리며 독립을 회피하던 라이언은 마침내 새 집에 안착했다. 그는 저녁식사도 초대해야 와서 먹을 수 있는데, 오늘은 초대를 받았다. 


190쪽


바라는 것(Desiderata)


소란스러움과 서두름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기를. 정적이 싸인 곳을 기억하기를. 쉽게 굴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당신의 진실을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기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아둔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이기를. 그들도 그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으니. 사납고 나쁜 사람들을 피하기를. 그들은 영혼을 갉아 먹으니.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공허해지니거나 잠시 기분이 나아질 뿐. 세상에는 항상 당신보다 낫거나 못한 사람들이 있거늘. 


앞일을 계획하는 것만큼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을 음미하길.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그것이 당신이 할 일이라면 그 일에 흥미를 잃지 않기를. 시간에 따라 운은 변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변하지 않는 당신의 천직이 될 것이니. 사업을 할 때는 조심하기를. 세상에는 사기가 판치고 있으니. 그러나 이것때문에 좋은 일들에 대해 눈감는 일이 없기를.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분투하고 있고 영웅적인 노력들로 세상이 가득 차 있으니. 당신 자신이 되기를. 관심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지 말기를.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지 말기를.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일들이 벌어져도 사랑이야말로 잔디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는 것이니.


젊음의 것들을 우아하게 단념하면서 세월의 흐름이 순응하기를. 갑작스런 재난에서도 당신을 지켜줄 영혼의 힘을 키우기를. 그러나 상상의 것으로 스스로 괴롭히지 말기를. 두려움의 대부분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싹트나니. 엄격한 자기수양을 넘어서 자신에게 온화하기를. 당신은 우주의 자녀이니. 나무와 별보다 못한 조내재가 아니니. 당신은 여기에 있을 권리가 있거늘. 그리고 당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우주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대로 끝없이 펼쳐지고 있으니. 그러므로 신과 융화하길. 신이 당신에게 어떤 모습이든 간에. 그리고 삶의 시끄러운 혼란 속에서 당신이 무엇을 열망하고 무엇을 위해 다투고 있든 간에 당신의 영혼과 조화를 이루길. 세상은 거짓과 허영과 무너진 꿈으로 가득 차 있어도 여전히 아름답거늘. 조심하기를. 행복하기 위해 분투하길. 



205쪽


나는 전부터 사용설명서 쓰기가 신문기사나 시, 소설보다 더 중요한 글쓰기라고 생각해왔다. 기술의 세계에서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주문이 필요하다. 주문을 모르면 기계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열려라 참깨'와 같은 주문이 매뉴얼이다. 세상에는 뜻모를 매뉴얼이 너무 많다. (중략) 그렇게 사용자의 관점에서 기술을 통제할 수 있다면 기술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술작가들은 소중히 여겨야 하고, 기술작가들은 사용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분연히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255쪽


미국은 집이 하나의 우주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마을이 하나의 우주인 것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미국에서 가족이 최우선적 가치로 강조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가족은 핵가족을 의미한다. 근대적 개인들이 전통 사회에 들이닥쳐 수천 년 동안 연속해온 문명을 파괴하고 사유재산권에 기초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261쪽


그의 직업은 앞서 소개했다시피 교도관. 푸른 제복을 입고 수인들을 감시하는 게 일이다. 그는 감옥이 사회의 축소판이라면서 감옥에서 미국 사회가 몰락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2인1실로 돼 있는 미국의 교도소는 아침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는 수인들이 자기 방에서 나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나고 한다. 한 사동에는 160명의 수인이 있는데, 감시하는 사람이 세 명 밖에 없어 교도소 내에서 살인, 강간, 마약 복용 등이 난무한다. 교도관들이 개입하러 들어갈 때에는 이미 상황이 끝나 있곤 한다고 질리언은 말했다.


죄인들은 흑인 이슬람교도 갱, 흑인 비이슬람교도 갱, 백인 기독교도 갱, 백인 비기독교도 갱, 아시아 갱, 히스패닉 갱 등으로 나눠진다. 교도소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한 사동마다 각 파벌을 비슷하게 안배한다. 얼마 전에는 히스패닉 숫자가 늘어나서 세력 균형이 무너지자 폭동이 일어났고, 교도소가 불에 타고 헬기가 뜨고 무장 장갑차가 출동하는 사태로 번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교정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미국은 50년형, 30년형 같은 무거운 형벌로 죄인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데만 급급하지, 죄인들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젊은 수인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그들을 키웠다면 그들이 감옥에 오는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 젊은 수인들이 교도소의 기존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면서 지금의 교도소는 혼돈 그 자체라고 말했다. 



287쪽


우리는 일하는, 만드어내는 사람으로서의 인간인 '호모 파베르'다. 일을 통해서 자기를 실현한다고 배운다. 그런데 과연그럴까? 예술가 같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가 아닌 이상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잠재적 가능성을 확인하고 발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보통은 일이 생활비를 벌거나 축재 또는 출세의 도구다.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 똑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거나 때로는 눈치를 봐야 하고 비굴해지는 것도 참아야 하는 노역일 뿐이다. 사람이 일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몇몇을 위한 이데올로기이며, 다수를 부려먹는 소수의 논리다. 


하지만 그다지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일을 하지 않고 노는 사람들을 더 지탄하는 모습을 흔히 발견한다. 시간을 헛되이 쓰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자식들에게도 맘껏 놀아보라고 하지 않고, 시켜서 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그러니 인생이 뻔해진다. 개성을 상실한 채 사회적 기능과 의무를 다하는, 전체의 일부로 살다 간다. 



288쪽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것들은 더 나은 날들을 위해 바닥에 깔리고 모여지는 것이다. 나는 바퀴를 굴리면서 내 몸의 가능성이 쉬지 않고 이뤄지고 펼쳐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후지어 패스를 넘었어도 여전히 성취해야 할 험한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더는 관조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교문을 열고 뛰어들어가는 운동장이 된다. 나와 세상의 관계는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면서 역동적으로 바뀐다. 


299쪽


가장 인상적인 장비는 '데이저(Dazer)'라는 초음파 발사 총이었다. 이 총을 발사하면서 사람들은 들을 수 없지만 개들만 들을 수 있는 초음파가 나와서 송아지만한 개도 퇴치할 수 있다고 한다. 4만원 정도 하니까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다. 


575쪽


마치 부침개를 뒤집듯 천만 년을 단위로 지각히 휙휙 변동한다. 이곳이 열대밀림이었다는 사실, 브론토세레스와 아미노돈트처럼 멸종된 포유동물이 여기에 쏘다녔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기 어렵다. 지금은 사막성 분지이기 때문이다. 마른 광선은 생명을 태워버린다. 그런데 열대의 밀림이었음을 증명하는 나무와 동물들의 화석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인류의 역사도 언젠가는 저 한 층, 경우 10미터도 안 돼 보이는 지층 하나로 압축되지 않을까? 이 화석들을 보면 인류가 영속하리라고 믿기보다는 지각 변동으로 보론토세레스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그것을 최후의 심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또는 자연적 순리로 받아들여야 할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의 의미를 묻게 된다. 무엇을 하던 어차피 저렇게 시간의 잔재로 퇴적하고 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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