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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허스트/박종성역] 우리가 자전거를 타야 하는 이유

독서일기/자전거

by 태즈매니언 2014. 7. 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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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인 로버트 허스트는 도심에서 8만 건이 넘는 물건들을 배달해온 자전거 메신저란다. 바이크 메신저라고 하니 조셉 고든 래빗이 나왔던 영화 <프리미엄 러쉬>의 이미지가 떠오르네. 




책 표지사진이 꽤 파격적이다. 탑튜브를 어깨에 걸친 건강한 여성의 모습이 도발적인 이 책의 제목과도 잘 어울린다. "운동과 이동을 동시에 해결하는 자전거타기의 즐거움'이라는 부제도 잘 붙인 것 같고.




8쪽


키티 호크에서 라이트 형제는 초보적인 비행기를 개발하고 시험하면서 여러 가지 자전거 부품을 활용했다. 랜딩 기어에는 자전거 바퀴 허브를, 날개에는 바퀴살을, 프로펠러 추진 장치에는 기어 등을 갖다 썼다. 그런데 자전거 부품도 부품이지만 라이트 형제는 이 자전거라는 탈 것에 내재된 고유한 물리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라이트 형제는 자전거타기의 물리학에 깃들어 있는 미묘한 특성들을 파악하려고 했다. 자전거를 탈 때의 균형 잡기와 핸들 조작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과 연구 그리고 흥미로운 역핸들조작 현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은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나는 기계를 복합적으로 제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한게 된다. 


10쪽


자전거를 타는 것은 하늘을 나는 것과 비슷하다. 자전거를 타고 회전을 하다보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좋은 느낌이 든다. 몸은 공중에서 움직여 가지만, 금속 파이프와 바퀴로만 된 간결한 차체 위에 얹힌 채 땅 위에 정지해 있기도 한 것이다. 라이더는 공중에 부양해 있는 것이다. 최소한 공기를 채운 바퀴 위에 떠 있는 것이다. 


14쪽


과학자들이 내린 효율성의 정의를 사용해 보면 인간의 몸은 일반적인 가솔린 엔진보다 크게 효율적이라고 할 것도 없다. 둘 다 유입되는 연료 에너지의 1/4 이하만을 힘 에너지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버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자전거와 인간의 조합은 운송 방식에 관한 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최고의 엔진시스템이다. 라이더는 리터 당 425킬로미터의 연비와 동일한 효율성을 내고 있다. 요즘 구할 수 있는 차 중에서 가장 연비가 좋은, 예를 들면 프리우스라 할지라도 동일한 거리를 가는 라이더보다 무려 20배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 자동차가 자전거의 속도로 가도 그렇다는 얘기다. 자동차의 엔진이 한 인간을 이동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정작 힘은, 1천5백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제 몸 곧 기계장치를 움직이는데 대부분이 소요된다. 


17쪽


마음껏 돌아다녀라. 내가 말하는 것은 돌아다니되 그 방식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삶을 앗아가는 것이 아닌 삶을 보충해주는 방식으로 돌아다녀야 한다. 


28쪽


2008년 재무부 산하의 한 위원회가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및 의회제출용으로 <미래 미국의 에너지 관련 이행계획>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이 보고서는 88개의 권고사항을 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계획안이 인간 자체 동력 운송 방식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조차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41쪽


1893년 5월 26일 에드워드 클라인슈미트라는 자전거 라이더가 캐티 맥글린이라는 7살 소녀를 치어 죽게 만들자 라이더에 대한 일반인의 분노가 폭발했다. 자전거 이용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그들에 대한 보행자들과 마부들의 증오와 반감 또한 격화됐다. <뉴욕타임즈> 사설에서는 '바퀴쟁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등록제와 면허제를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갈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캐티 맥글린 사망 사건 몇 해 전인 1887년 뉴욕 주는 센트럴 파크와 같은 공원이나 공동대로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해달라는 자전거 이용자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차량 이용자에 준하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서 차량이란 말이 끄는 마차를 의미한다. 당시 뉴욕 주에서 허용된 마차의 최대속도는 시속 8킬로미터 정도였다. 그런데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힘들이지 않고 이보다 세 배는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또한 마차가 갈 수 없는 장소나 길도 자전거는 갈 수 있었고 많은 라이더들이 그런 식으로 자전거를 탔다. 교통이 혼잡해지는 상황에서 소녀의 사고를 둘러싸고 대중들의 분노가 치솟자 경찰은 과속하는 라이더들은 단속하기 시작했다. 


125쪽


어떤 이들은 자전거 복장을 걸치지 않고서는 결코 라이딩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요컨대 이 옷들이 너무 편하고, 중요하고, 대단히 실용적인지라 필수 불가결한 장비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그들 말대로 평상복 차림의 라이딩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특별한 복장을 구입하는 일이 자전거 장만에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업무를  수행하러 갈 때 그런 반짝이 슈퍼맨 복장을 입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자전거용 의상이 따로 필요하다는 잘못된 가정이야말로 자전거가 일상 생활에서 친근하고 유용한 운송수단으로 널리 보급되는 데 가장 끈질기게 방해를 놓는 장애물이다. 


136쪽


피터 제이콥슨은 2003년에 사고통계와 인구수에 관한 연구서를 펴냈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의 68개 도시 및 다른 나라의 여러 도시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충돌사고의 확률과 이 도시들의 보행자와 라이더 숫자 사이에는 상간관계가 많았다. 제이콥슨의 연구에서 보면 도로에 자전거 통근자가 많을수록 자전거와 자동차의 충돌 확률은 낮아졌다. 물론 자전거 통근자가 매우 적은 도시에서는 충돌 사고의 수도 적었다. 그러나 라이더 한 명당 충돌사고 발생율이나 1킬로미터 당 충돌사고 발생율을 따지면, 이런 도시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자전거로 통근하는 지역에 비해 훨씬 높았다. 


제이콥슨은 '보행자나 라이더들의 경우 자신들의 숫자가 많다고 더 주의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이처럼 사고가 나기 쉬운 환경에서는 오히려 자동차 운전자들이 보행자나 라이더들과 충돌사고를 빚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즉 이 이론에 따르면 운전자들이 자신드롭다 '취약한 도로 이용자'들을 더 많이 접할수록 이들을 더 크게 인지한다는 것이다. 


148쪽


쟁점이 되었던 자전거전용차로의 단점은 버리고 이점만을 대부분 수용한 새로운 노면 처리 기법이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섀로우(sharrow: share+arrow=shared lane pavement marking)기법. 섀로우는 그래픽 노면 처리 기법으로써 도로 위에 칠하는 방법으로 설치할 수 있다. 이는 큰 화살표나 꺾기 표지의 위쪽 또는 안쪽에 자전거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을 말한다. 이를 보는 운전자들은 경각심을 갖게 되고 그 도로가 자전거 라이더들과 공유하는 곳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길에 라이더의 공간이 존재함을 (운전자 뿐만 아니라 라이더 자신에게도) 알려주면서 자전거의 위치를 도로 위의 특정공간 안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섀로우는 자전거인을 위한 노면 처리 기법 중 최선의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섀로우 표지가 너무 작거나 차로의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치게 그렸을 경우에는 그 효력을 반감하거나 상실할 수 있다. 십수 년 전에 덴버의 자전거 정책 담당자였던 제임스 맥케이가 처음 창안한 섀로우 표지 원형은 상당히 작았다. 60~9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에 자동차의 오른쪽 타이어가 밟기 좋을만하게 오른쪽으로 치우져 있었다. 설치한 지 몇달도 되지 않아 덴버 시의 섀로우 표지는 호응을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렇지만 덴버의 섀로우는 일단 도로 공유의 개념을 소개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맥케이의 그림은 미국 내 다른 도시들도 진출하면서 회생했고 진화하기 시작했다. 자전거 전용차로를 선호했던 샌프란시스코 시는 여러가지 스타일의 표지들을 가지고 실험했고, 그 중 2겹의 꺾기 표지가 운전자와 라이더의 행동을 바꾸는데 가장 효과가 있음을 알아냈다. 


자전거 차로도 그렇지만 섀로우 표지 역시 자동차로부터 라이더를 물리적으로 직접 보호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시의 섀로우 연구는 이 표지가 노상에서 자동차 운전자들의 위치에 영향을 주고 있임을 보여준다. 라이더가 지나갈 때, 심지어는 지나가지 않을 때조차 그들은 30에서 60센티미터 정도 더 자신의 위치를 이동시켰다. 이 정도면 일반적인 도심도로에서 라이딩하는 라이더의 눈에는 상당한 변화량으로 느껴진다. 


156쪽


일부의 반-라이더 정서에도 일리는 있다. 우선 라이더들은 법을 잘 어기는 경향이 있으며 자전거가 제공하는 자유를 지나치게 탐한다. 그리고 그들은 거리에서 확보하고 있는 자신들의 영역을 놓고 대단히 공격적이다. 누가 조금만 치고 들어와도 그야말로 눈을 부릅뜨고 분개한다. 법을 어기고, 분개하는 일이 아예 일체형으로 같이 일어난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눈에 이런 태도는 뻔뻔하고 이기적이고 위선적으로 비친다. 


하지만 라이더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쁜 운전은 불편함을 주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위는 라이더의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주행 중에 차가 와서 살짝만 접촉해도 대단히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차 안에서는 감지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도로 위의 라이더들은 자신의 공간을 호전적인 태도로 지키려 하는 것이다. 


163쪽


자전거 라이더로서 수행해야 할 첫번째 과업은 자신을 불안정한 교통시스템에 편입한느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서 교통법규에 대한 믿음을 유보하는 일이다. 교통시스템에서 우리는 매우 본질적인 오류 가능성을 본다. 이 오류 가능성이란 '인간은 기본적으로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 있다'는 전제를 말한다. 교통은 인간의 행위이고, 실수는 인간의 조건이다. 명심하라. 이는 라이더들이 도로의 규칙을 외면해야 한다는 말이 아님을. 단지 길 위에서는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라이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항상 '실수할 수 있는' 이런 저런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신을 보지 못할 수도 있임을 염두에 두고 자전거를 타는 일이며 이게 자칫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일이다. '적절히' 자전거를 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규칙은 그 다음이다. 성인 라이더에게 법규 준수와 안전은 사실상 별개의 문제다. 안전문제는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 


168쪽


준법을 강조하는 라이더들은 자전거 라이더나 자동차 운전자 모두 동일한 법규를 엄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준법 라이더들이 존경을 받을 것이고, 자동차와 똑같은 방식으로 도로를 사용할 때 라이더들은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들이 하는 말이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유는 이미 많은 지역에서 라이더들은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보다 월등한 자유를 오랫동안 누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어들은 보행자의 영역에도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으며 거의 모든 탈 것의 영역을 활보할 수 있다. 그들은 거리와 뒷골목, 필요한 경우에는 인도와 광장과 주차장까지, 그리고 자신들이 별도로 만들어 낸 이면도로들을 지배하고 있다. 교통 체증이 일어나도 그들은 헤쳐 나간다. 운전자들이나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은 꿈에서나 해볼 수 있는 행동들이다. 일부 자전거인들이 뇌까리는 평등권이란 실제로는 이들이 지금껏 누려온 자유에 대한 실제적인 제약일 뿐이다. 

176쪽


요즘 우리가 쓰는 석유의 상당량은 해저 3천 미터 아래에 있는 유층에서 끌어올리고 있다. 대양 해저에서 9천 미터씩 내려간 곳에서 채굴한 것도 있다. 10킬로미터 이상을 수직으로 끌어올린 원유를 정유공장으로 보내기 위해 이번에는 멕시코 만을 가로질러 무려 240킬로미터를 송유하기도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에너지를 생각해보라. 


185쪽


세계 석유 필요량의 약 절반을 전체 유전의 2퍼센트, 즉 4천개 중 규모가 가장 큰 100여 개의 유전이 채워주고 있다. 이 대형 유전에 관해 알아야 할 대단히 중요한 몇 가지 점들이 있다. 우선, 이들 중 극소수만이 비교적 근래에 발견됐다는 점이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유전들 대부분은 급격하게 회복 불가능한 생산량 감소를 보이고 있다. 


200쪽


유럽의 도시에도 교외라는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노동인구는 주로 자신들의 직장 근처에 거주한다. 이 도시들은 출퇴근 교통분담의 기여도가 높은 제대로 된 자전거 전용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가솔린은 미국보다 훨씬 비싸다. 이들은 1970년대 초반의 에너지위기 때 자신들의 취약성을 절감하자 연료세를 대폭 올려 사회의 운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고자 했다. 


242쪽 (옮긴이의 글)


자동차의 직계 선조에 해당되는 탈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받은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마차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다. 자전거다. 포드 자동차의 원형은 삼륜 자전거에 엔진을 얹은 것이었다. 마차와 자동차는 다른 세계관의 산물이다. 마차의 세상에서 그걸 움직이는 힘은 차체 외부에 있었고, 자동차의 세상에서는 차체 내부에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yclist's Manifest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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