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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양영란 역] 탐욕의 시대(2008)

독서일기/경제학

by 태즈매니언 2014. 7.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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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썼던 UN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 장 지글러의 책. 지금 당장의 생생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한국판이 나온 것이 2008년었다. 

마치 격정적인 생태주의자가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서기 전에 지구 온난화로부터 아직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이 10년 남았다고 주장하는 책을 인상깊게 읽었는데 그 책이 2000년판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맛있게 먹는 프라이드 치킨 한마리가 사람이 들어가면 암모니아 냄새에 눈조차 뜨기 힘든 병아리 양계장, 뒤로 돌아앉지도 못할 정도로 옴쭉달싹 못하는 사이즈의 케이지식 양계장에서 24시간 내내 환하게 불을 밝히고 모이를 먹이는 35일간의 사육, 불법체류자인 외국인 노동자에 의해 비위생적으로 처리되는 도축과정, 입맛을 돋구기 위해 갖은 첨가물을 넣는 프랜차이즈의 합작품임을 카메라를 돌려가면서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보는 느낌... 

여기서 닭을 사람으로 바꾸면 그게 바로 이 책이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이다. 2300원에 납품되는 닭으로 치맥을 즐기는 내가 앞서 본 닭의 짧은 생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제2의 프랑스 혁명의 날이 오면 가장 먼저 불태워지는 것이 민법이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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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쪽

2006년 북반구 선진 산업 국가들이 제3세계 122개국의 개발을 위해 지원한 돈은 580억 달러였다. 같은 해 제3세계 122개국은 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상환 명목으로 북반구은행에 포진한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에게 5,010억 달러를 지급했다. 

87쪽

이런 경우 군대나 정보부, 경찰의 예산이 삭감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조직들은 외국 투자 유치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군대와 비밀 정보원, 경찰들은 항상 세계화 지상주의자들과 그들의 시설물들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이들에게 그 위협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112쪽

르완다에 새로이 들어선 정권은 약 10억 달러가 넘는 외채를 이어받았다. 내란으로 국내 사정은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데다 자신들의 어머니와 동생들, 자식들을 죽이는 데 사용된 칼을 사기 위해 끌어들인 외채를 갚아야 할 도덕적 의무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새 정권은 채권단에게 부채 상환을 중지, 아니 아예 무효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주도한 채권단은 협력 자금 공급을 끊거나 르완다를 재정적으로 세계로부터 고립시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그러한 요청을 보기 좋게 거절했다.

185쪽

아디스아바바에서 아와사로 가는 일곱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대의 경운기도 보지 못했다. 이 고원지대에서는 현대적인 농업기술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저지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나무 지지대를 댄 쟁기만 눈에 띈다. 이 농부 저 농부가 번갈아가며 임대해서 쓰는 피곤해 지친 듯한 한 두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가 대여섯 번 정도는 땅을 갈아엎어야 비로소 돌을 골라내고 씨를 뿌릴 만하게 부드러워진다. 

203쪽

당시 룰라에게는 젊은 아내가 있었다. 첫 아기를 임신한지 8개월째 되엇을 때, 진통이 시작되었다. 산모는 갑자기 열이 올라 위급한 상황이었다. 룰라의 아내는 고통 속에서 밤새도록 헛소리를 했다. 새벽에 비밀노동조합 동료의 도움으로 룰라는 아내를 상베르나르두 두 캄푸의 공공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당직 의사는 돈을 미리 내라고 요구했다. 룰라도 그의 동료도 수중에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다. 그러나 의사는 입원을 거절했다. 룰라의 아내와 뱃속의 아기는 이렇게 해서 병원 복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277쪽

유전자 변형 유기체의 생산과 보급은 자본주의 추종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생물과의 불공정한 경쟁을 근원부터 차단하겠다는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자연, 즉 생명은 식물이나 인간, 먹을거리, 공기, 물 빛 등을 무료로 생산하고 얼마든지 재생산한다. 자본주의자들에게 무료로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임밀한 의미에서의 공공재산이란 존재할 수 없다. 

295쪽

아프리카의 일부 산부인과에서는 젖병이 무상으로 지급된다. 산모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역시 무상으로 분유 한 두상자를 제공받기도 한다. 그 후로는 무상 공급이 딱 끊긴다. 

상황이 이러니 모유로 아기를 키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산모에게서는 젖이 나오지 않는다. 당황한 산모는 급한 대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돈을 빌려서 분유를 사고..... 이렇게 되면 이제 노천 시장에 가서 몇 숟가락씩 찔금찔금 분유를 사는 악순환의 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물론 이렇게 해서 마련한 우유는 오염된 우물물이나 울타리 너무 늪지대에 고여 있는 물에 타서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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