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2014)

독서일기/한국사

by 태즈매니언 2014. 10. 21. 16:24

본문



어김없이 믿고보는 유시민시의 신작.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유시민씨가 이제 더이상 청년이 아니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 아쉽기도 하다.


내가 경험한 1979~2014의 대한민국에서 잘려나간 1959~1979 20년 동안의 대한민국에 대해서 알려주는 똑똑한 삼촌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읽었다. 애매모호하거나 주관적 표현이 들어간 부사나 형용사를 최대한 절제하고 구체적인 수치와 인명을 등장시킨 책이라 더 좋았다. 게다가 1959년생 중 최초의 국무위원 경험자의 식견을 맛볼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고.


이하에서는 역시 인상깊었던 구절 발췌

--------------------------------------------------------------------

    


  22쪽


나는 고령 유권자들이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 했다고 추측한다. 그들은 일제강점과 해방공간의 혼란, 참혹한 전쟁과 절대빈곤의 고통을 견뎌내고 기나긴 군사독재의 시대를 통과해 오늘에 이르는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룸으로써 대한민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후 빈손으로 노후를 맞았다. 박근햬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그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는 소망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2012년 12월에는 그것 말고는 적절한 표현방법이 없었다.


75쪽


공산화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통일국가로 가는 길과 북한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주고 남한에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길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분단을 거부한 민족주의자는 전자를 선택했지만 철저한 반공주의자들은 차라리 후자가 낫다고 판단했다. 그 대표자가 바로 이승만 박사였다.


99년


5.16도 성공했다. 박정희 장군은 18년 동안이나 권력을 누렸으며 그 후예인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12년 더 집권했다. 서거 33년이 지난 시점에 딸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유가 무엇이든 그는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세계사에서 이만큼 성공한 군사쿠데타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사실 그의 인격과 행위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시민들 자신이 쏟았던 열정과 이루었던 성취, 자기 자신의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122쪽


대한민국은 서유럽국가와 달랐으며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었다. 자본화할 수 있는 중세적 특권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다른 나라를 수탈할 능력도 없었으며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동원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생산시설이 조금 있었지만 그나마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되어 버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실정에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채택했으며 자본을 해외에서 차입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폭리를 취하게 함으로써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이룬 것이다. 최초 해외자본 차입의 주체는 정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의 해외 차입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정부는 독점기업들이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폭리를 얻도록 했으며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강력하게 탄압했다. 소비자와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기업들은 짧은 시간에 막대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179쪽


전제정치를 타도하는 민주주의 정치혁명의 유일한 방법은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궐기해 경찰과 군대, 사법기관과 정보기관을 동원한 권력집단의 폭력을 힘으로 제압해야 정치혁명을 할 수 있다.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그 나라의 환경과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대한민국은 국토가 좁고 인구가 도시에 밀지해 있다.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 균질성이 매우 높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겨울이 너무 추워서 난방시설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정글도 넓은 산악지역도 없다. 북쪽은 철책으로 단절되었고 나머지는 바다로 가로막힌 사실상의 섬나라다. 중국과 베트남, 중남미와 달리 특정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장기항전을 벌일 수 없다. 중동 국가들처럼 인접국가에 무장투쟁 기지를 만들 수도 없다. 게다가 국가는 엄청난 규모의 상비군과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연속적-동시다발적-전국적 도시봉기'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적합한 저항권 행사 방식이었다. 


349쪽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헌법 규정대로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시장에서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사람이 국가에 대해 최저생계비 지급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했다. 그래서 이 범의 보호를 받는 사람을 '수급자'가 아니라 '수급권자'라고 한다. 



359쪽


'레드 콤플렉스'는 단순한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려는 삶의 방편이다. 북한 편으로 몰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양심의 자유를 포기하고 자유와 권리의 박탈을 묵인하는 정신적 병리현상이다.



406쪽


서독은 동독을 흡수통일하려고 한 적이 없다. 동독 국민이 원하고 동독 정부가 결단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교류협력하고 지원했을 뿐이다. 동독이라는 위험요소를 제거하려 하지 않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안정적으로 관리한 것이다. 서독은 그렇게 함으로써 동독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으며 동동 정부의 무장을 해제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