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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시/박경희 역] 만들어진 고대(2001)

독서일기/한국사

by 태즈매니언 2016. 9. 1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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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본류지만 올해 한국사에 대한 책은 딱 두 권 읽었다. 존경하는 페친의 구매리스트가 아니라 그런지 둘 다 실패해서 한 권은 악평 가득한 서평을, 나머지 한 권은 읽었다는 사실을 남기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 기록도 안했다.

 

나는 '국사'교과서를 두고 벌이는 좌우파의 역사전쟁에 흥미가 없다. 그 싸움에서 누가 이기던 십대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주입하려는 목적은 똑같고 주입의 강도는 중국과 일본의 사이가 될터이고. 그래서 동아시아사 및 아시아 유목제국사 관점의 전근대사와 범세계적 관점의 근대 이후 서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지역단위의 역사가 더 보강되면 좋겠고. 내셔널리즘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과잉이니.

 

(물론 교육부의 검정교과서 체제에서 꿈같은 소리지만) 제발 지금처럼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중고교 시절 열심히 탐독했던 학생들이 자신이 배운 편향된 관점들을 극복하는데 배웠던 것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을 들어야 하게는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19세기 민족주의의 유산인 국사 체제를 탈피해야한다는 이야기야 이미 한참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그 정도는 깨우치고 있다는 자만심도 있었고. 다행히 이 책 덕분에 뭘 한참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처음 알게된 저자 이성시씨는 재일교포 2세로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30년 이상 고대 동아시아사 연구를 해온 학자였다. 이 책은 그가 88년부터 2000년 사이에 발표한 8편의 시론을 정리한 책이고. 학부시절 사회학 학회지는 한번도 안 봤으면서 역사분야의 학회지를 들춰본 적이 있는데 까막눈에게는 그나마 시론이 잘 읽히던 기억대로 가독성이 좋아서 고교수준의 역사지식으로도 무리없이 읽어낼 수 있다.

 

제1부를 읽으며 광개토왕비의 비문과 관련하여 뜨거운 감자인 무훈 부분의 해석론이 신선했다. 고구려의 독자적인 제도인 수묘인들에 대한 금령과 벌칙과 연관지어서 비문의 독자가 누구었는지, 왜 독자들에게 그러한 포고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논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즐거움이 쏠쏠했다.(혹시 이진희선생의 석회도포 비문변조설을 믿으신다면 필히 읽어보서야...) 물론 사료가 부족하다보니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부분이 많긴 했지만.

 

3부에서 언급된 [양서] <신라전>에서 무령왕시절 신라의 사신이 백제의 사신을 따라서 양나라에 조공했을 때 양나라 관리 앞에서 직접 발언도 못하고 백제에 종속하는 9개의 소국의 일원으로 병풍치고 왔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4부에서 우리나라쪽에서는 그나지 강조하지 않는 <조선사편찬위원회>와 <조선사편수회>의 활동과 업적, 일본보다 앞서 실시된 <조선 고적 조사>와 <고적 및 유물보전 규칙>을 조명하면서 이러한 활동의 목적이 19세기 유럽의 식민주의국가의 고고학의 연구동향을 충실히 따른 것이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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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쪽

 

광개토왕비는 만년 후까지 광개토왕릉의 수묘역을 보존 유지하기 위한 법령 선포의 매체이며, 그 독자는 왕도에 집주하는 5부의 구성원이었다. 그 때문에 비문은 지배 공동체 내부의 텍스트였다.

 

93쪽

 

북한의 학계가 '남북국 시대'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중략)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 남북조는 일반적 이해에 따르면 명분론상의 정당성을 다툴 때 사용하는 개념으로서 본래 그 이전(남북조 이전)에 양자 모두가 정통이라고 인정하는 국가나 왕실 계보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106쪽

 

원래 중앙아시아, 몽골 고원, 북아시아 및 중국 동북부에서는 예부터 유목 수렵 민족의 국가들이 흥망해 왔는데, 그 국가들의 민족 구성은 복잡해서 오늘날 왕실을 중심으로 한 지배자 집단의 민족을 따져서 그 국가들에 대해 특정 민족의 역사에 속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지역에서 일어난 국가는 지배자 집단의 민족이 늘 바뀌게 마련이고 그 영역도 일정하지 않다.

 

185쪽

 

중국 문화권 내의 지역에서 언뜻 보면 과도한 중국화, 중국 문화의 공유로 보이는 것 중에서도 정치하고 교묘한 차별화 전략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영향력이 강한 문화 아래에서 살아가는 소수 민족이 적극적으로 그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차이를 만들어 낸ㅁ으로써 정치적 압력을 피하고 기존의 문화나 정치 체제를 보존하는 전략으로 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문화의 표면적인 공통성을 논하는 것이 왜 그다지 의미가 없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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