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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김흥식 역] 징비록-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2014)

독서일기/한국사

by 태즈매니언 2015. 4. 1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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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할 분량이 한정된 고교 문학교과서에서 <용비어천가>나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같은걸 가르치면서 어떻게 학생들에게 고전에 관심을 가지라고 할 수 있는지. 

좋은 문학이라면 보편성에 소구할 수 있는 울림을 줘야 하는게 아닌가?

드라마 덕분에 증보판으로 나온 이 책 중 흥미진진한 20-30페이지만 읽어줘도 종일 앉아서 졸기도 지겨운 애들은 충분히 흥미를 가질텐데. 

역사 속에 폭군이네 혼군이네 암군이네 표현은 많다. 원군까지 빌어와서 전쟁하는 와중에 시도때도 없이 잔머리 굴려서 양위쑈를 벌이며 그 때마다 세자와 신하들이 일은 커녕 밥도 못먹고 앞마당에서 뜻을 거두어달라며 여러날 빌게 한 선조가 올킬인듯. 이에 비하면 때때옷 입고 비행기 타는거 좋아하는 정도야 뭐.(나도 둘 다 좋아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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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쪽

당시 이순신 휘하에는 8000명이 넘는 병사가 모여들어 고금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군량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는 해로통행첩을 만들기로 하
고 명령을 내렸다. 

"3도 연안 지방을 통행하는 모든 배 가운데 통행첩이 없는 뱌는 간첩선으로 간주하고 통행을 금지한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와서 통행첩 발급을 요청했다. 이순신은 배의 크기에 따라 쌀을 받고 통행첩을 발급해주었는데, 큰 배는 세 석, 중간 배는 두 석, 작은 배는 한 석을 받았다. 당시 피란을 떠나는 배들은 모두 양식을 싣고 다녔기 때문에 그 정도 쌀을 바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며, 오히려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했다. 이순신은 10여 일 만에 1만여 석의 군량을 얻을 수 있었다. 

246쪽

명을 받은 나(심유경)는 한양을 수습하기 위해 다시 김명원과 이덕형을 만났습니다. 
"지금 가서 일본을 봉해주어 그들이 물러간다면, 그 뒷일에 대해서는 귀국에서 잘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이덕형이 응답했습니다.
"뒷 일은 우리 군신이 맡아야 할 책임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중략) "가토 기요마사가 와서 싸움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고 화살 하나 날리지 않았는데 지방관들이 양보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 전에 한강 남쪽은 귀국이 스스로 되찾을 수 있다고 했는데, 되찾은 땅조차 이렇게 읽는대서야 어쩌겠습니까? 또 향후 계책을 세우는 것은 귀국의 책임이라더니 원대한 계책은 듣지도 않고 오직 궐 밖에 엎드려 우는 계책 밖에는 세우지 않는지요?"

276쪽

그 가운데는 각 고을에서 실어와 아직 배 안에 있는 거친 벼 2000여 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건 말에게 먹이로 콩 대신 지금하려고 하나 명나라 병사가 원치 않아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이에 신은 눈앞의 참상을 차마 볼 수 없어 편의에 맞춰 1000석을 꺼내어 파주, 개성부, 장단, 적성, 마전, 고양, 삭녕, 풍덕 등에 사은 굶주린 백성들과 한양에서 흘러들어온 이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습니다.

281쪽

낙 참장이 또 말하기를, "당신 나라는 땅이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해 의지할 데가 없다. 게다가 사용하는 것은 고작해야 쌀과 포목뿐이니, 가난을 어떻게 면하겠는가. 마땅히 산에서 은을 캐서 요동과 거래한다면 식량은 물론 온갖 물건이 유통되어 몇 년 안에 백성을 구제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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