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강신주가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뽑아낸 48가지 감정을 주해하고, 각각에 대해 최상급 책벌레임이 분명한 편집자 양희정이 그 감정들을 잘 표현한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식으로 공동으로 펴냈다고 볼만한 책.
두어 문장으로 건조하고 어렵게 서술된 <에티카>의 감정 설명이 물이 담긴 플라스크 안에 넣은 잉크가 실오라기 퍼지듯 무늬를 그리며 녹아내리는 모습을 인용한 소설로 살짝 맛보는 식이다.
이 책은 열심히 읽을 책은 아니고 참고서처럼 집에 두었다가 어느 하나의 감정에 격렬하게 사로잡힐 때 어떤 책을 거울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볼지 찾아보면 좋은 가이드북인듯.
감정수업이라는 타이틀대로 하나하나의 감정에 대해서는 소개된 문학작품들을 음미하며 곱씹어야 하겠지만 자꾸 무뎌져가는 내 감정을 일깨워주는 수업교재로 깨알같이 유익한 책이었다.
194쪽 <동경>
'가장 절정에 있었던 순간'을 꿈꾸는 것이 동경이다. 그렇지만 동경의 이면에는 이미 자신이 전성기를 지났다는 씁쓸한 자각이 깔려있다. 이처럼 과거의 절정에 사로잡혀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다.
306쪽 <질투>
질투의 바닥에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질투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드는 감정이니까.
374쪽 <공손>
온건한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타인에 대한 공포가 드리우고 있는 짙은 그늘이 있다. 말 잘 듣는 아이는 그 공포감으로 인해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394쪽 <후회>
후회에는 모든 불운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정신적 태도, 다시 말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는 의식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고 믿는 것만큼 거대한 착각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더 큰 오만이 또 있을까? 결국 후회는 강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다.
420쪽 <겁>
니체는 강한 자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약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강자는 생각한 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때문에 생각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반면 약자는 너무나 생각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약자에게는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생각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생각을 많이 가지는 것이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정당화하는 데 생각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다. 루자는 나약을 넘어 자신의 삶을 날조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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