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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주] 라이스 워(2009)

독서일기/농림축산

by 태즈매니언 2015. 5. 2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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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농촌진흥청에서 33년간 잠업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한 이완주 박사가 쓴 논픽션이다. 비록 본인의 전공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통일벼 품종개발, 보급 및 재배기술연구에 매진해서 주곡의 국내자급 성공을 달성한 선배들의 모습과 그 성취의 의의와 숨겨진 일화들을 담고 있어 2008년 최초로 시상한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수상작이다. 책제목인 <Rice War>보다는 <얘들아, 인제 괴타리를 풀어놓자꾸나>라는 응모작의 제목이 훨씬 와닿는 제목인데 출판사의 판단이 아쉽다.

 

개발독재 시절의 성취에 대해 성웅을 신화화하는 모습도, 일방적으로 평가절하하는 태도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슬슬 은퇴하는 산업화 시대의 주역들이 이런 책을 펴내줬으면 좋겠다. 적당한 자화자찬은 읽는 사람들이 가감해서 읽으면 되는 것이니.

 

지금은 주무부서의 장관이 아무리 큰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중요한 정책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기 쉽지 않다. 장관이 이럴 정도이니 주무부서 산하의 외청, 그리고 그 외청에 소속된 연구기관이 커다란 국가적인 성취를 이룩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 다시 이런 시절이 오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 책에서 전해주는 성공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는 있다.

 

뭐 일반적으로 8년~11년은 걸리는 5대 교배-생산력 예비검정-생산력 검정-병해충 연구 절차를 대부분 생략하여 2~3년만에 농가에 보급한 결과가 좋았던데 다행이지만.

 

다만 앞서가는 농부들이 수시로 해외를 드나들면서 각자 수백가지의 다양한 특용 작물들을  연구하고 재배하는 상황에서 혼자서 다양한 작물들을 다뤄야하고, 인사이동에 따라 전혀 다른 분야를 연구하기도 해야하는 농촌지도사나 연구원의 고충은 남의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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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쪽

이 자리에서는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한국 벼농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위해서는 낮은 온도에도 강한 자포니카형 벼에 키가 땅달해 도복에도 견디고 도열병에도 강한 인디카형 벼의 성질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즉, 도열병에 강하고, 바람에 좀처럼 쓰러지지 않는 땅딸한 키에, 수량도 좋고 밥맛도 좋은 자포니카형 품종이어야 한다.

82쪽

"나는 내가 만든 품종을 지구상의 한 사람만이라도 이용한다면 그것은 브리더(육종가)의 자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의 브리더는 자기가 육종한 품종의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내가 필리핀에서 만든 품종 중에는 여러 개가 인도, 인도네시아, 네팔 등지에서 쓰엿고, 인도에서는 우리나라의 통일벼보다도 더 넓은 지역에서 재배되기도 했어요. 나는 그걸 자랑으로만 생각할 뿐이오. 중국의 경우는 내가 만든 품종뿐만 아니라, 우리가 좋은 잡종벼를 만들어 놓기가 무섭게 백퍼센트 모두 가져가서 높은 수확을 얻곤 해요. 우리가 만든 품종은 IRRI와의 협약에 의해 일단 모두 IRRI에 제공해야 하는데 중국 사람들이 여기서 가져다가 재미를 많이 봤어요. 물론, 우리나라에 있는 것도 몰래 가져가지요."

 

144쪽

노 씨는 마지기(660제곱미터)당 일반 벼는 벼로 세 섬, 즉 360kg, 쌀로 치면 여섯 가마가 나오는데, 통일벼는 벼로 다섯 섬에 쌀로는 열 가마나 나와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 때 부자 됐지요. 쌀금(쌀값)도 좋았구유 양도 엄청 나왔으니께요. 나는 마누라한테 흰쌀밥을 한 솥 허라구 허구 애들들 허구 밥을 먹는디, '애들이, 우리 인제 게타라(허리띠)를 풀러놓구서니 실컷 먹자구나'하고 그날 배터지게 먹었슈."

 

221쪽

미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농업 선진국은 야트막한 구릉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래서 유기물이나 양분의 손실이 적게 일어난다. 이들 나라에서는 봄철 마른 바람이 불면 검은 흑먼지가 차장을 까맣게 덮는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황사는 중국에서 불어오는 것이라 그렇다 쳐도 황사가 아닌 우리 흙먼지도 황토다. 검은 흑먼지와 붉은 흑먼지의 차이는 무엇인가? 양분에서 천양지차다. 검은 흑먼지에는 유기물이 많이 들어 있어 비옥하지만 붉은 흑먼지에는유기물은 적고 철분이 많다.

 

우리 흙의 단점은 이게 다가 아니다. 흙은 본디 태어날 때부터 양분을 품을 수 있는 용량(양이온교환용량)이 정해져 있다. 미국과 유럽의 곡창지대 흙이 가진 용량을 100이라 하면 우리의 흙은 10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비료를 자칫 더 주면 유실이 많이 일어난다.

 

244쪽

농민이 소득이 높아지고 해외를 오가게 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도직 공무원들은 좀체 외국에 나갈 기회가 없었어요. 워낙 정부 예산이 부족했고, 지도사는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보았으니까요. 지금 농민은 자기가 하는 농작물에 도사가 안 되면 살 수 없으니까, 수시로 농업 선진국에 나가 보고 그 한 가지만을 발전시키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도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선진국에 나가 보기도 힘든데다가 공문도 처리해야 하고,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작목을 맡아서 지도해야 하기때문에 전문성 확보 면에서 어려움이 많은 게 현실이에요."

 

농업기술센터는 녹색혁명을 가능케 한 손발이었고 미래 식량 윅리르 막아줄 최일선의 보병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직에서 지자체로 이관되고 나서는 예산과 인사권이 지자체에 속하게 되면서 본래의 지역 농법의 연구와지도에서 엄청나게 약화되었다는 게 농민들의 반응이다.

 

256쪽

1995년 이후 최근까지 10년 2개월 동안 9명의 청장이 바뀌었으니 평균임기가 1년 1개월 꼴이다. 그 연구원의 말처럼 "마치 초등학교의 줄반장을 갈아 치우듯 바꾼 것"이 사실이었다. 청장이 바뀌면 연구기관장도 바뀌고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조직이 마구 개편된다. 기관장이 바뀌면 연구원들은 연구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보고하기에 바빴고, 그게 끝나면 개혁을 한다고 조직을 마구 주물러 놓고 잘 알지도 못하는 정책을 내놓음으로써 동으로 가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갑자기 서쪽을 가리킨다.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연구기관을 행정기관시하고 그 특성을 무시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곳에 몸담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무슨 장기 계획이 가능하며, 거기에 무슨 꿈을 펼칠 심적인 여유와 시간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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