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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이경식 역] 욕망하는 식물(2001)

독서일기/농림축산

by 태즈매니언 2015. 9. 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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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마이클 폴란의 책. 무려 2001년에 출판된 책일 줄이야. 분명히 문화인류학 수업 시간에 공진화(co-evolution)에 대해서 배웠고 그 때도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되는 것처럼 새로운지. 사과(달콤함), 튤립(아름다움), 대마초(중독), 감자(단작-몬산토), 우리에게 친숙한 이 네 가지 식물을 통해 인간을 공진화의 파트너로 선택한 성공적인 식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감자에 대한 파트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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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쪽

거대한 공진화의 거래를 통해 달콤함을 즐기는 동물과 크고 달콤한 과일을 제공하는 식물이 함께 번성하고 증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물 종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식물은 동반자의 탐욕으로부터 자기 씨를 보호할 목적으로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예를 들면, 식물은 씨앗이 충분히 발육하기 전까지는 과일이 단맛과 아름다운 색을 내지 못하도록 한다. 그 때까지 과일은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고, 또 열매는 눈에 잘 띄지 않게 녹색을 유지한다. 그리고 또 어떤 경우에는(예를 들면 사과처럼) 씨의 표면을 단단한 특수물질로 처리해서 과일을 먹는 동물들이 씨는 씹지 않고 뱉어내게 하거나 혹시 씨를 삼키더라도 소화되지 않고 안전하게 몸 밖으로 배출되게 만든다.

 

109쪽

 

아생 환경에서는 식물과 해충이, 최후의 승자 없이 공격과 저항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공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 하지만 접붙이기를 통해서 키운 사과나무만 있는 과수원에서는 이 공진화 과정이 실종된다. 아무리 세대가 흐른다 해도 접붙이기를 통해서 얻은 복제 사과나무의 유전자는 늘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나 해충은 여전히 교접을 통해서 재생산됨으로써, 사과의 저항력을 뚫을 수 있는 유전자 결합을 찾아내기 위해 계속 진화한다. 그리고 결국 사과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전자 결합을 찾아낸다. 그러니 사과와 해충 사이의 싸움은 당연히 해충의 승리로 끝난다. 그래서 인간이 농약이라는 현대적인 무기를 들고 나서서 사과나무를 보호해야만 하게 되었다.

 

138쪽

 

많은 꼿들이 이제는 자기가 자기고 있는 위대한 사랑을 인간에게 바친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듯 몸을 앞으로 숙인 원추리꽃도 그렇다. 원추리꽃은 실제로 사람을 향한다. 사람의 사랑을 획득함으로써 원추리는 다른 어떤 곤충이 보장해주는 것보다 확실한 성공을 보장받았다. 치부의 수술을 음탕하게 드러내는 모란꽃도 그렇다. 수천 년 동안 정원에서 음양의 조화와 결합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중국의 시인들은 활짝 핀 모란꽃을 여성의 생식기에 비유하고 여기에 날아드는 벌과 나비를 남성의 생식기에 비유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 모란은 인위선택 과정을 통해 인간의 이런 상상력을 충족시키며 진화했다. 심지어 중국 모란 가운데는 여자의 살 냄새를 풍기는 것도 있다. 향기는 벌에게도 유혹적이겠지만, 이 향기가 궁극적으로 자극하려는 대상은 우리 인간이고, 인간의 정신이다.

 

141쪽

 

스스로 자기 짝을 선택하지 않는 식물은 어떨까? 식물을 대신해서 짝을 선택해주는 꿀벌이 굳이 식물의 건강 상태에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사실 꿀벌은 신경을 쓰지 않지만, 그래도 꿀벌은 건강한 식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준다. 가장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또 꿀을 가장 많이 머금고 있어 꿀벌의 방문을 가장 많이 받는 꽃은 건강한 꽃이다. 이렇게 보면, 어떤 의미에서 꽃은 꿀벌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건강이라는 기준으로 자기 짝을 선택한다.

 

216쪽

 

대마초 재배자들에게 1990년대의 암스테르담은 작가에게 1920년대의 파리와도 같았다. 네덜란드에서 대마초 재배가 합법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수백 군데 커피숍이 대마초를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허가를 정부로부터 받았고 또 이들에게 대마초를 공급하기 위한 소규모 재배는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대마초를 단속하는 움직임이 거세지자, 사람들은 마약과의 전쟁을 피해 암스테르담으로 갔다.

 

293쪽

 

농경의 기원에 관한 재미있는 이론이 하나 있다. 길들여진 식물, 즉 경작식물이 처음 나타났던 곳이 바로 쓰레기더미였다는 이론이다.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채집해서 먹은 뒤 그 식물들의 씨를 쓰레기더미에 버렸고, 거기에서 씨들이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고 또 이종 교배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식물을 채집해서 먹었다는 것은 것은 단맛이나 크기 혹은 효능을 기준으로 그 식물을 선택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선택된 식물이 쓰레기더미라는 인공적인 공간에서 장차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사람들은 이식물들에게 정원이나 텃밭의 한 자리를 제공했다. 그 뒤로 사람과 식물은 서로를 영원히 함께 변화시킬 공진화의 긴 여로를 함께 걸어왔다.

 

311쪽

유전자 공학을 바라보는 시각 가운데는, 유전자 공학 덕분에 방대한 양의 인간 문화와 지능이 식물에게 이식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뉴 리프'는 다른 감자들보다 더 똑똑한 셈이나. 콜로라도감자잎벌레가 습격할 때, 다른 감자들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지만, '뉴 리프'는 해충과 비티 균에 대해서 인간이 아는 내용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본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외계의 낯선 생물체처럼 보였던 유전자 조작 감자가 다르게 보였다. 어떻게 보면 다른 어떤 식물들보다도 인간을 많이 닮은 셈이나. 인간의 지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319쪽

 

밀도 감자처럼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밀은 감자와 달리 문화에 의해 변모된다. 요리할 때 감자는 그냥 냄비나 불에 던져넣기만 하면 되지만 밀은 그렇지 않다. 수확을 한 뒤 타작과 제분, 혼합, 반죽, 모양내기, 굽기 등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마치 기적처럼 무형의 반죽덩어리가 빵으로 탄생한다. 분업화된 노동과 초월서으이 암시를 담고 있는 이 정교한 과정은 원시 자연에 대한 문명의 지배를 상징한다. 단순한 음식인 빵이 인간과 영혼 사이 교감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랜 세월 빵이 예수의 몸을 상징해왔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뭉툭한 덩어리인 감자가 천한 물질이었다면, 빵은 기독교인의 마음에서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었다.

 

334쪽

 

몬산토 사는 정부 관리들과 함께 비티 균에 대한 내성을 지연시키는 소위 '내성 관리계획'을 마련했다. 이 계획은, 비티 균 유전자를 이식한 작물을 심는 농가에서는 일정 면적의 경작지에 일반 작물을 심어서 박멸하고자 하는 대상 해충들이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마련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내성을 가진 최초의 해충이 나타났을 때, 이 해충이 안전한 피난처에 있던 일반 해충과 짝짓기를 하도록 유도해서, 이 해충이 역시 내성을 가진 해충과 짝짓기를 해 슈퍼 해충이라는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예방하자는 게 이론적인 근거이다. 이 계획은,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야생을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장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럴 듯한 논리이다.

 

354쪽

 

전세계적 욕망과 기술이 동맹을 맺은 것은 '러셋 버뱅크'로서는 크나큰 축복이었다. 최소한 생산되는 감자의 수량으로만 봐도 그렇다. 역사상 '러셋 버뱅크'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감자 품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성공은 무척 불안정한 것이다. 이 특정한 감자 유전자군은 자연의 변덕이나 특정한 종(바로 우리 인간)의 무책임함 앞에서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단일 재배 작물이 오랜 세월 계속해서 성공적인 작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감자 기근이 들기 전까지 아일랜드 사람들이 즐겨먹었던 '럼퍼'는 지금의 '러셋 버뱅크'만큼이나 지배적인 품종이었지만 지금 이들의 유전자는 도도새의 유전자만큼이나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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