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미연방대법원은 동성 결혼 합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오늘은 서울 광장에서의 퀴어 축제 폐막행사인 퍼레이드가 있었다. 동성애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건 당연히 개인의 자유다. 시민으로서 '소극적 관용'을 못하겠다면 몇 마디 말은 할 수 있겠지만 굳이 팔을 걷어붙이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소금뿌리며 바퀴벌레라도 되는 양 박멸하려고 들 것까지는 없지 않나.
평소 말도 섞고 싶지 않은 무리들이지만 심히 불쾌했다. 오늘 퀴어 퍼레이드 반대집회에 참여해서 "피땀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라며 피켓팅을 하고, 도로에 드러누워 행진을 방해한 사람들에게 나도 몇 마디 좀 하련다.
140여년 전의 이 땅에서 크리스천이란 말은 '사학죄인'이라는 단어와 같은 말이었다. 한강 하류 어귀 양화진 포구를 내려다보는 잠두봉에서 정부는 일만 명이 넘는 '사학의 무리'들의 머리를 뎅겅 잘라 사체를 한강에 던졌다.... 그 후에 그 산의 이름은 절두산으로 바뀌었다.
크리스천들이 주말에 예배보는 것을 사학죄인들이 야소에 미치고 씌워서 알아듣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하니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봐야지 역지사지를 하려나.
김훈의 소설 중 이제 안 읽은 작품은 <현의 노래>와 <강산무진> 뿐이구나. 문장이 유려해서 바느질 한땀한땀을 감상하는 느낌으로 한 문장 한 문장 되새김질해가며 읽는 보람이 있었다.
-----------------------------
125쪽
"야소의 어미 마리아가 그 지아비의 정이 없이도 아들을 낳았다고 하니 이 해괴하고 황잡한 요언이 바로 무부무군의 근원이다. 어째서 열성조의 백성들이 야소 앞에서 슬피 울고 야소 어미의 옷자락에 매달려 숨이 넘어가고 부모가 준 이름을 버리고 사호로 부르고 응답하느냐. 포도청이 빼앗아온 사화(사악한 그림)를 내가 보았다. 어째서 야소의 어미는 부녀로서 바느질을 하지 않고 솔기도 없는 천 조각을 두르며, 발을 땅에 딛지 않고 둥실 떠서 사람을 속이느냐. 발을 땅에 디뎌야 삶의 엄중함을 알 터인데 두 발이 둥실 뜨고 구름에 싸여서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대저, 덕이란 당연히 그러해서 억지로 작위함이 없는 것인데, 두 발이 공중에 뜨니 해괴하지 않으냐.
가르치지 않고 벌주는 것은 군왕의 도리가 아닐 터이나, 내 이미 어린아이 타이르듯 달래고 어르고 또 법으로 금했어도 저 무리들은 미치고 씌어서 알아듣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하니 이제 주륙으로 정법하려 한다. 무릇 인간의 모든 재앙은 스스로 불러들이지 않은 것이 없음을 알라."
[김연수] 스무살(2000) (0) | 2015.12.28 |
---|---|
[김중혁] 가짜 팔로 하는 포옹(2015) (0) | 2015.11.01 |
[김숨] 간과 쓸개(2011) (0) | 2015.06.04 |
[김훈] 공무도하(2009) (0) | 2015.04.22 |
[천명관]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2014) (0) | 2014.11.21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