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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 블루메/박정미 역] 화장실의 역사(2005)

독서일기/미시사

by 태즈매니언 2015. 8. 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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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한 이야기는 안보고 싶은 분들은 이 글을 피해주시길. 


여행지마다 화장실 사진을 꼭 찍어오는 지인도 있는데, 나도 예전 시골생활의 경험과 인류학과 수업을 들을 때 <똥이 자원이다>, <똥도 자원이라니까(무려 저자서명본)>를 펴낸 전경수 교수님 덕분에 화장실에 대한 관심이 좀 있는 편. "인간의 배설물에 대한 인식과 그 처리방식의 변천사"라는 부제가 내용을 잘 담고 있다. 문학사와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라서 수세식 변기의 상세한 원리 이런 것까지 나오지는 않는다. 


유럽과 중근동 이외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자료도 꽤 빈약한 편이서 아쉬웠다. 화장실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쓸거면 18세기에 이미 인구가 백만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급 도시였던 일본 에도(도쿄)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측간이 이용되었고,  배설물을 길거리에 버리는 없이 근교 농민들이 수확한 야채와 물물교환하였다는 내용 정도는 들어갔어야 하는 것 아닌지. 나름 생태학적으로 '오래된 미래'로 칭송받는 시스템인데 말이다.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저자가 여러가지 고대, 중세, 근대의 다양한 텍스트에서 인용한 화장실 문화에 대한 글들도 유익했는데, 해박한 배경지식도 그렇지만 그만큼  이용가능한 텍스트들이 많다는 사실이 부럽더라. 엄밀하게 분석하는 내용이 아니라서 화장실에 관한 풍속사를 흘낏 들여다본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읽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은 여자들이었고, 남자들은 앉아서 소변을 봤다는 사실에서 슬며시 웃음. 방귀예술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에도 깜짝 놀랐다.좌변기가 보편화된 이후에 배설압력이 낮아져서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급증한 것과 물 낭비를 생각하면 지금의 화장실이 최선의 방법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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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5세기경 중세의 대도시였던 - 14세기에 이미 도시의 인구가 20만명을 넘어섰다.- 파리의 길거리에는 배설물이 너무 높이  쌓여서 굽 높은 신발이 발명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른바 쇼핀느(Chopine)라고 하는 이것은 굽이 무려 60센티미터나 되는 나막신 비슷한 신발로, 신발을 신은 상태에서 그것을 덧신게 되어 있었다. 

(중략)

한편 수치심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이동 간이화장실 서비스업자를 불러 서비스업자가 두르고 있는 망토에 몸을 숨기고 볼 일을 보기도 했다. 이동 간이화장실 서비스업자들은 망토 속에 양동이 두 개를 메고 다녔는데, 필요한 사람은 그 양동이에 앉아 배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가지도 에든버러와 함부르크에서 "화장실 필요하신 분?"하고 손님을 부르며 돌아다니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중략)

프랑스어에서 'Toile'는 처음에는 화장할 때 두르는 망토를 가리켰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사람의 배설 과정을 의미하게 되었고, 'Toilette'는 배설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로 발전하였다.


71쪽


재를 비롯하여 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경석을 비롯하여 쓸개즙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노예들은 주인의 몸과 옷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수없이 많이 알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소변은 가죽을 무두질할 때 뿐 아니라 세탁을 할 때도 인기가 좋았다. 소변을 이용할 때 단 한가지 단점은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소변이 옷감을 거칠게 만든다는 것이다. 


92~94쪽


종이가 여전히 그곳을 닦아 내는 용도로 쓰이는 가운데 1857년 미국에서 화장지가 첫선을 보였다. 조지프 가예티라는 사업가가 낱장 종이를 작은 상자에 담아 미국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중략)

1879년 영국에서 월터 알콕이라는 사람이 화장지를 다시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취선을 내어 한 장씩 간편하게 뜯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두루마리 화장지였다.


125쪽


여전히 농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도시의 주민들은 구덩이의 내용물이 거름으로 필요했으므로 대개는 1년에 한 번씩 추운 계절에 - 분뇨가 딱딱하게 얼어서 운반하기도 쉽고 냄새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덩이를 퍼냈다. 


135쪽


1617년부터 1775년까지 화장실 분야에서 영국의 특허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그냥 단순한 소파나 책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야간용 또는 임대용 배변의자 같은 것만 관심을 끌 뿐이었다. 

(중략)

태양왕 루이 14세의 가구 목록 가운데에는 단순한 의자 모양의 야간용 간이변기 208개와 서랍을 빼내고 그 안에 그릇을 넣게 되어 있는 배변의자 66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149쪽


17세기에 황제 프리드리히 3세는 슈바벤 지방의 로이틀링겐이라는 도시에서 하마터면 말과 함께 똥거름 진창 속에 완전히 잠길 뻔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역시 슈바벤 지방에 있는 도시 투틀링겐을 방문하려던 황제의 계획은 그 도시가 황제를 맞기에는 너무 더럽다는 이유로 무산되고 말았다. 


175쪽


베를린 사람들도 더럽기는 마찬가지였다. 1671년에는 자신이 농사지은 것을 베를린에 내다 팔려는 농민이라면 누구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차 한 대 분의 분뇨를 도시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조치로도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자, 1732년에는 자신의 배설물을 계속 길에다 버리는 시민이 있으면 창 밖으로 던져 버리라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182쪽


메르시에는 "파리의 분주한 거리에서 갑자기 볼 일이 보고싶어지면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는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알지도 못하는 건물에 들어가 이 문 저 문 두드리며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뭔가 가져갈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둑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193쪽


사람의 대변과 소변은 전반적으로 물과 유기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대변의 수분 함량은 약 77퍼센트이고, 소변의 수분함량은 약 94퍼센트에 이른다. 사람의 배설물을 구성하는 기타 성분으로는 죽은 세포와 박테리아, 질소, 칼슘, 인, 칼륨, 요소, 탄소 등이 있다. 


194쪽


1898년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의 대변이 노동자나 군인의 그것보다 훨씬 영양분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노동자의 대변은 1톤당 거름의 가치가 9.74프랑인데 반해 부르주아의 대변은 1통당 15.47프랑이나 되었다.


224쪽


영국 상원의 빈민위원회 서기장이었던 에드윈 채드윅(1800~1890)는 1842년에 출간된 <영국 노동자 계급의 위생상태에 관한 보고>에서 노동자 계급의 주거 환경을 인상깊게 설명해주는 자료들을 수집했다.


275쪽


브레멘의 <DJ Harry & DJ Heino> 제작사는 1920년대에 가장 유명했던 방귀 예술가 요쉬카 스베틀로브스키를 베를린 근처에서 찾아내어 그의 자작곡 두 곡을 녹음했다. (중략) 이 방귀 예술은 항문을 통해 공기를 들이 마셨다가 다시 뿜어내는 것이 요령이었기 때문에 아무 냄새 없이 녹음이 이루어졌다.(무려 88번이나 방귀를 뀌었다.)


293쪽


WC(water closet)는 화장실 개발에서 영국이 거든 승리를 대변한다. 1775년 영국의 시계 제조업자 알렉산더 커밍스는 연통관을 토대로 하여 S자형 방취관을 고안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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