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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폴러/이종인 역] 치킨로드(2015)

독서일기/미시사

by 태즈매니언 2016. 5. 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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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면단위 시골에서 살다보니 집에서 닭을 키우는 집들이 꽤 있었다. 닭을 잡는 모습도 여러번 봤었고. 꼬꼬마 시절엔 외갓집에 가는 날이면 대나무살을 짜서 헛간에 붙인 가건물인 닭장 안에 들어가서 달걀을 꺼내오는 심부름도 자주 했다. 그러다가 부산스러운 닭들에 관심이 생겨서 한참을 닭장 안에서 닭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계곡에서 잡아온 가재나 민물고기가 죽으면 마당의 닭들에게 던져주며 치킨런 경주를 열었으며, 닭들이 요란을 떠는 밤이면 족제비가 침입한게 아닌지 외할아버지와 함께 출동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시간 학교앞에서 팔던 50원짜리 병아리를 사서 두번이나 중닭으로 키워서 시골로 보냈었고.(다 키우니 화이트레그혼 수컷이더라.)  지금도 애완닭 까페 회원이고, 얼마 전까지 아파트 베란다에서 닭을 길러볼 생각을 진지하게 할 정도다. 보통사람들은 실제로 움직이는 닭을 볼 기회가 거의 없고, 그래서 닭을 징그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꽤 된다는 걸 깨닫고 충격을 받아 내가 애정(?)하는 닭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댄 쾨펠의 <바나나>와 같은 내용을 기대하며 이 책을 샀었고.


저자는 머리말에서 닭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닭은 깃털 달린 '맥가이버칼'과 같다. 이 다목적용새는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든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준다. 닭을 가장 가치 있는 가축으로 만들어주는 이 적응력은 우리 자신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꽤 오래 붙잡고 있던 이 책을 연휴의 끝자락에서야 겨우 다 읽었다. 괜찮지만 내가 궁금한 내용이 아닌 분량이 300페이지 가량되다보니 그 부분을 꾸역꾸역 읽는게 힘들었다. 그냥 훌훌 넘겨버리며 읽을걸. 닭의 조상인 야생의 '적색야계'가 가축화되어가는 과정과 세계의 각 문화권에서 닭에 부여하는 터부와 투계, 점복 등의 인류학적 사례들은 1/3 정도로 줄이고 현대식 양계산업의 태동과 그 현장에 대한 분량을 두 배로 늘렸으면 좀 더 호응이 좋았을 것 같다. 'cockpit'이 원래 투계장을 의미했다는 사실, 라틴어로 수탉과 프랑스를 가리키는 단어가 똑같이 'gallus'라는 깨알같은 잔지식을 얻긴 했지만.


마당에서 스무마리 남짓 놓아 키우던 가내 양계가 어떻게 500g의 고기를 얻는데 1kg의 사료밖에 들지 않는 엄청난 효율(이를 능가하는 건 양식연어 뿐이라고 한다.)의 국제적인 거대산업으로 발전했는지. 동물복지의 문제에서 많은 논쟁거리를 던져주는 양계 비즈니스의 극한의 오퍼레이션이 궁금했다. 아쉽게도 저자는 양계 대기업들이나 업계 전문가들의 협조를 얻지 못했는지 이 부분이 빠져있다. 


이 책의 제 11장에서는 현대식 공장제 양계업에 대항하는 사례로 와인처럼 1957년에 제정된 법에 따라 AOC 인증을 받아 기르는 프랑스 동부의 브레스(Bresse)닭에 대해, 제13장에서는 베트남의 고대닭으로부터 이어진 재래품종인 호(Ho)닭에 대해 언급하는데 일본 '나고야 코친' 으로 만든 닭요리, 태국과 베트남에서 본 빼빼마른 닭들의 기가막힌 고기맛을 생각하면 이제 우리나라도 치킨 튀김옷과 염지법만 신경쓰지 말고 닭고기 자체를 바꿔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하늘과 계란'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전남 영광의 자연방사 양계농부를 통해 사전 주문한 닭을 받아 먹어본 적이 있는데 나고야 코친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느 닭보니 20분을 더 삶아야했었고, 맛이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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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쪽


16세기 말에 이르자 에스파냐는 중국과 상업 조약을 맺었고 마닐라에 잘 축성된 항구를 가질 수 있었다. 에스파냐 갤리선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파낸 신세계 은을 가득 싣고 아카풀코에서 마닐라까지 항해했다. 거기서 그들은 중국 상인들과 거래했다. 이 수익 높은 거래는 3세기 가까이 지속되었고 에스파냐는 필리핀을 점령한 덕을 단단히 보았다. 


296쪽


1692년 여러 노예가 동물을 판매한 수익으로 자신의 자유를 사들이자 버지니아 주 의회는 노예가 말, 소, 돼지를 소유하는 것을 불법으로 선포했다. 노예주들은 종종 자신의 노예가 사냥, 어획, 담배 재배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했다. (중략) 농장주는 노예에게 닭에 관해서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닭은 경제적인 가치를 무시해도 될 정도인 데다 농장 노예들을 먹이는 데 드는 식비를 줄였으며, 서부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 중 다수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훌륭한 가금사육 기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닭 사육은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전문 분야가 되었다. 


308쪽


대규모 양계 농업의 가장 큰 장애물은 번식이었다. 닭의 배아는 껍질을 깨고 나오려면 3주 동안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미 닭은 새끼의 정상적인 발달을 돕기 위해 하루에 세 번에서 다섯 번식 알을 굴려가며 체온으로 품는다. 알의 부화를 위해 온도는 반드시 섭씨 35도에서 40도 사이에 머물러야 하고, 습도는 부화기간에 대부분 55% 가깝게 유지되다가 알을 깨기 전 며칠 동안은 더 높은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암탉은 알을 돌보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이기 때문에 알을 더 낳을 시간이 부족하고, 따라서 새끼를 많이 낳으려면 시간이 더 걸렸다. 

(중략)

중세 시대에 이르러, 유럽인들은 한 번에 수천 개에 이르는 달걀을 부화할 수 있는 나일 강 삼각주의 다중 부화실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비법은 소수의 콥트인 가문들에 세대를 걸쳐 철저한 비밀 속에 전승되었다. 


330쪽


1950년 '내일의 닭' 경쟁이 대중을 사로잡기 전에는 구이용 영계 한 마리는 1.4kg에 도달하는데 평균 70일이 걸렸고, 살 450그램을 찌우려면 1.3kg의 사료가 필요했다. 2010년 47일만에 닭은 약 2.6kg의 무게에 도달했고, 450그램을 찌우기 위한 사료는 900그램도 들어가지 않았다. 60년의 세월동안 폐사율은 종전의 절반인 4%로 떨어졌다. 역사상 그 어떤 가축 사육 프로그램도 양계 산업처럼 꾸준한 생산성 향상과 사료비 절감을 이룩하지 못했다. 


377쪽


닭장에는 암탉의 3대 행동인 충분히 쉬고, 흙목욕하고, 은밀하게 알을 낳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비좁은 닭장에 갇혀 사는 생활 탓에 지독한 부리 공격, 조류 히스테리, 의문사, 심지어 동족 잡아먹기도 종종 발생한다. 암탉들이 서로에게 큰 부상을 입히지 않고 알을 낳게 하기 위해 양계 시설에서는 마취도 없이 부리 끝을 제거한다. 지방간, 두부종창증, 구강 궤양, 족부 기형 같은 충격적인 상태는 흔히 발견된다. 양계장의 소음은 귀청이 터질 정도이며, 공기는 암모니아로 가득하고, 암탉은 발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생활 조건에서는 많은 기억을 형성하고 복잡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설계된 복합 신경계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한 닭 연구자는 결론 내렸다. 실상을 보고 충격받은 한 텍사스의 동물학자는 미국의 일반적인 산란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여긴 닭 정신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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