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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코트킨/윤철희 역] 도시의 역사(2005)

독서일기/미시사

by 태즈매니언 2016. 2. 25.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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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권을 읽고 늦은 점심식사를 만들어먹은 후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바이엔슈테판 한병을 홀짝거리며 논픽션 한 권을 읽으니 잠 잘 시간. 반나절 여유가 선물한 완벽한 하루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건 이런 통시적인 논픽션을 쓴 이는 존경할만하다. 책을 쓰고 싶은 하나의 질문을 정하고,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백여권 이상의 책들을 참고하여 질문에 대한 자신의 긴 답변을 적어내는 고통스런 과정을 견뎌내는 끈기. 체험과 독서 등을 통한 간접경험은 작업용 책상의 너비를 결정한다. 똑똑함은 그 다음이고.

 

조엘 코트킨의 The City. 개별 도시사와 빅 히스토리를 다룬 책들에서 다뤘던 내용들이 많아 신선함이 떨어진다. 십 년 전에 출판되었고, 빼어난 책이라는 감흥이 들 정도는 아니지만 분량과 구성을 감안할 때 읽어볼만한 책이다. 저자는 18장인 결론에서 앞으로 성공하는 도시들이 갖춰야 할 특질들에 대해 의견을 내는데, 최근에 나온 에드워드 글레이져가 <도시의 승리>에서 뽑은 요인들과 대부분 겹치고 현재 상황을 봐도 그리 틀린 부분이 없다.

 

세계사의 전체적인 흐름, 교역사, 주요 제국의 중심지들의 도시사를 알고 있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요즘 짬짬이 전자책 단말기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본다. 인물보다는 성읍국가를 건설하고 확장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에 더 관심을 두고 읽고 있는데 연상되는 부분이 많았다.

씨족사회를 벗어나는 수준의 시민 규약을 도출하고 유지하기. 공동체의 가치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외래인들을 지속적으로 편입시킬 수 있는 개방성과 매력. 남들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위한 머리싸매기나 남들이 지갑을 열 특산물 제조 경쟁 등을 통한 일자리 공급. 이름 한줄만 남아있는 성산가야, 아라가야처럼 한반도에 존재했던 무수한 초기 도시들-성읍국가(군장국가)-에도 이런 사연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파트와 구획된 상가뿐이라서 사람이 거주할 장소로서는 칙칙하고 재미없는 곳. 자연 발생적인 상업적 활동은 가끔씩 서는 농산물 시장이나, 행정중심복합도시 내에서는 인가가 불허되는 유흥주점을 연결고리로 하는 지하경제(건설인부들을 수요자로 하는 금남면과 부강면 지역상권) 밖에 없는 세종시는 공산주의 도시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고대 로마제국이 이룩한 도시문명이 파괴되었던 과정과 세르비아 내전시기 selco란 남자의 생존기(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818472)를 볼 때 '도시의 승리'를 지탱하고 있는 주춧돌은 의외로 취약하다고 느껴진다. 어느 페친의 포스팅에서 본 것처럼 지속적인 마이너스 금리 하에서 생활한다는 건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저축이 없고 투자가 없는 시대의 도시생활이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직 덜컹거리는 국제적인 신용시스템이 붕괴했을 때 찾아올 도시의 위기가 더욱 아찔하게 느껴진다.

 

경제활동이 중단되면 도시의 법치주의(행정시스템+사법제도)와 사유재산제도가 무너질게 뻔하다. 그런 상황에서 도시에서 살기란 좀비가 나오지 않는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의 생존과 다를 바가 없다. 무장한 씨족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하더라도 도시보다 시골생활 쪽이 훨씬 생존확률이 높다. 혼자라면 석궁을 등에 메고 자전거 타고 전력질주에서 남쪽으로 도망치는게 낫지 않을까? (석궁부터 사야... -_-)

 

참고로, 난 고담시가 뉴욕의 별명 중 하나인 사실도 몰랐다.('립 밴 윙클'로 유명한 작가 워싱턴 어빙이 붙였단다.) 1895년 급격한 산업발전과 도시화로 인한 코스모폴리턴 가치관의 유입에 대한 토박이들의 공포증을 반유대주의 캠페인으로 활용했던 빈 시장 칼 뤼거를 히틀러가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시장'이라고 칭송했다는 일화에서 얼마전 궁금해했던 반유대주의의 단서도 하나 찾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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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쪽

 

신인류의 선조인 초창기 도시 거주자들은 자신들이 선사시대의 유목 공동체와 농경 마을의 주민들이 직면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문제들에 맞닥뜨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도시 거주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씨족이나 부족의 외부에서 온 이방인들과 공존하고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러러면 그들은 가정 생활에서, 상거래에서, 사회적 담화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행동을 결정하는 새로운 행동 규범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역사의 초창기에는 일반적으로 성직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가르쳤다. 신으로부터 권위를 끌어온 그들은 특정 도시의 다양한 거주자들을 위한 규칙을 세울 수 있었다.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도시는 신들이 몸소 머무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권위를 획득했다. 도시의 신성함은 예배를 위한 중심지라는 역할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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