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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최호영 역] 영장류 게임(2012)

독서일기/인류학

by 태즈매니언 2015. 8. 9.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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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을 맛보는 건 재미있다. 한 손에 레시피 창을 띄운 폰을 쥐고  팬과 번갈아 흘깃거리며 만들던 음식을, 다른 걸 같이 만들면서 대화도 하면서 만들 수 있을 때 흐뭇해지는 것처럼.

 

지금 지구상에 사는 70억 인구와 이전에 지구상에서 살았던 이들. 그들이 유물로 남긴 지식과 경험들(망자의 것은 대부분 유실되고 극소수의 유물만 남았지만). 이 방대한 지식과 경험의 총합 중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백년전 업데이트 버전이 아주 축약된 형태로 실려있을 뿐이다. 그런 문외한인 분야의 지식이 책 한권으로 인해 크게 확장될 때 광대한 땅을 새로 발견한 개척자가 된 느낌이다. 물론 이미 아주 많은 무리들이 살고 있는 땅에 들어간 것이긴 하지만. 뿌듯함에서 오는 잠깐의 기고만장함을 핑계로 오지랖을 부려보면 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종교를 떠버리고 다니는 이들에게 그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다니면서 보노보 원숭이나 침팬지를 관찰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린시절 열두권짜리 풀컬러 학습도감백과의 생물편에서 시작했던 첫 발걸음이 역사학, 인류학, 진화론, 경제학을 거쳐 진화심리학과 동물행동학으로 왔다. 그리고 그 결과 인간이란 그저 동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이 동물을 닮은 행동을 하는 건 신통한 게 아니고 인간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에 대한 설명에 출발한 이 책은 '털 없는 원숭이' 한 마리인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줬다. 내가 물려받은 신체와 유전자만이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내 행동양식까지 디폴트값이 설정된 진화 프로그램의 지배하에 있고, 현대사회에서도 자연선택을 통해서 그 프로그램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는 관점. 이렇게 짧은 요약으로는 뭔 소리가 싶겠지만 이 책은 그에 대한 학계의 최전선에서 전해오는 성과들을 통해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다.

 

책 내용 중 곁다리이긴 한데 이탈리아와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가 비슷한 부분도 재미있었다. 그나저나 사회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분야가 또 좁아지는 느낌이네. 어쩌면 탑다운과 바텀업으로 접근한 두 분야가 한 지점에서 만난 셈이지만. 기회가 되면 닐 슈빈의 <내 안의 물고기>를 읽어봐야겠다. 마크 하우저의 <도덕적 마음>에도 관심이 가는데 논문 데이터가 검증결과와 일치하지 않았던 점이 밝혀져서 2002년 논문이 취소된 사람이라 망설여진다. 집에서 걸어서 십 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고, 하필 과학특화도서관이라 운이 좋구나. 에헤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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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쪽

 

나는 이제 마흔일곱 살이나 되었지만 팔순이 내일모레인 어머니는 여전히 내 옷차림과 식사 습관에 대해, 그리고 내가 언제 어디로 휴가를 가야 하는지에 대해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신다. 물론 이것들은 하찮은 논쟁거리이며 우리가 이런 문제들로 정말 심각하게 다투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다투는 것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런 문제들을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배의 문제에 대해 다투고 있는 것이다.

 

66쪽

 

연인이나 부부가 다툼 끝에 갈라서는 경우, 대부분 별것 아닌 문제로 그렇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둘의 관계가 저녁 메뉴나 리모컨을 둘러싼 분쟁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치명적인 것은 누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가를 둘러싼 분쟁이며, 나아가 이런 분쟁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와 분열이다. 지배 관계가 불명확한 연인이나 부부도 한동안 관계를 지속할지 모르며 어쩌면 영원히 그렇게 지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의 관게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다.

 

129쪽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생물학자는 자원보유잠재력과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종이나 사회에 족벌주의가 만연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설명한다. 미국의 최근 역사에서는 자원 고갈과 경제 위기, 두 배로 늘어난 인구 때문에 사회적 경쟁이 격화되었다. 어쩌면 미국은 여전히 동등한 기회의 나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동등한 기회를 누리고 있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현재 엄청난 부와 권력은 1945년에서 1960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수중에 있다. 그리고 이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때가 다가오자, 그 자식들이 노동시장에 대거 진입하고 있다. 족벌주의의 완벽한 구현 같지 않은가? 왜냐하면 늙어가는 베이비붐 세대가 온갖 수단을 사용하여 자식들에게 부와 권력을 넘겨주는 것은 족벌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170쪽

 

끝으로, 제임스 하이엄이 관찰한 것과 같은 혁명적 연합은 베타의 값과 전체주의가 중간 정도인 체제, 곧 어른 수컷이 많은 대집단에서 형성되기 쉽다. 연합 결성 비용은 같지만 전제주의가 심해짐에 따라 혁명적 연합의 편익은 증가하고 실현 가능성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혁명적 연합은 서열 상승을 가져다줄 때 실현 가능하고 편익이 크다. 이 연합은최고 수컷이나 베타 수컷에게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중간 서열의 수컷에 의해 결성되기 쉽다. 이 연합의 편익이 이들에게 가장 크기 때문이다. 하이엄이 카요 산티아고 관찰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서열이 높은 수컷들은 서로 쓰다듬어 주는 행위 같은 것을 방해함으로써 수컷들이 친구가 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침팬지 수컷들은 이런 방해에 능숙하다.

 

211쪽

 

동료 리뷰 제도에 대한 연구 결과는 논문 저자가 경쟁을 이유로 특정인을 검토자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요청할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논문이나 보조금 허가 신청이 통과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검토자끼리의 경쟁도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보여주었다. 검토자가 검토서에 서명한 후 자신의 신원을 밝힐 때에는 검토 내용이 파괴적 비판보다는 건설적 비판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236쪽

 

타마린과 오랑우탄은 영장류뿐만 아니라 모든 척추동물에 통용되는 단순한 규칙, 곧 부모 한쪽만으로 새끼를 잘 키울 수 있으면 편부모가 원칙이고 수컷과 암컷은 평생 지속될 한 쌍의 결합을 이루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새끼가 부모 둘 다 있어야 살아남아 어른이 될 수 있을 때는, 수컷과 암컷은 한 쌍의 결합을 이루어 함께 새끼를 키운다.

 

251쪽

 

성인 남녀 간의 장기간의 정서적, 사회적 유대를 조장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연선택은 우리의 유인원 조상들의 뇌뿐만 아니라 몸도 바꾸어놓았다. 유인원 조상들의 몸은 오늘날의 침팬지 모모가 비슷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치열한 성적 경쟁과 성적 다툼에는 적합했겠지만 암수 결합에는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수컷은 암컷보다 더 크고 강했으며, 송곳니는 지금보다 더 크고 날카로웠고, 음경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불알은 더 커서 테스토스테론과 정자를 더 많이 만들었다. 암컷은 월경 주기 동안 성기가 부풀어 오름으로써 가임 기간을 널리 알리고, 수컷 간의 성적 경쟁을 조장했다. 양성 간의 암수 결합과 협력 관계를 조장하기 위해 자연선택은 몸 크기, 힘, 암수 간의 무기 차이를 줄였다. 그 다음에는 암컨의 뚜렷한 배란 표시를 없앴고, 월경 주기 동안의 가임성을 높였다. 이 덕분에 짝을 이룬 남녀는 언제라도 성교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남녀 간의 결합은 강화되고, 남자는 아이가 태어나면 정말로 자기 것이라는 확신이 커져 아버지 노릇을 기꺼이 하려고 했다.

 

동시에 자연선택은 여자와 짝을 이룬 남자의 성적 변화와 바람기 욕구를 감소시키고, 불알 크기를 줄여 테스토스테론 생산량을 줄였다. 남자는 몸크기에 비해 불알이 상대적으로 작아져 침팬지 수컷에 비해 정자와 테스토스테론을 적게 생산했다.

 

암수 결합에 따른 남자의 또 다른 생리적 적응은 여자와 함께 살거나 결혼하여 아이가 딸렸을 때 테스토스테론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낭만적 의리 관계에 있는 남자의 테스토스테론 생산량 감소는 다른 여자에 대한 욕구를 줄이고 아내와 자식에게 집중하도록 만든다.

 

257쪽

 

비비 수컷은 싸움을 할 때 공격 동맹이나 상호 원조와 관련하여 서로 협력관계를 맺는다. 앞 장에서 본 비즈니스 파트너나 낭만적 파트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비 수컷도 의리 문제 직면한다. 다시 말해 파트너 한 명이 상대방을 속이거나 배반할지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관계를 종식시켜 상대방보다 득을 많이 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의리 문제와 관련하여 특이한 방법을 찾아냈다. 상대방의 불알을 애무하는 것이다.

 

상대의 불알을 애무할 때 비비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어느쪽이든 상대의 불알을 터뜨림으로써 쉽고 빠르게 번식 능력을 영원히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불알을 애무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상대의 호의를 크게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 다른 수컷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 불알을 잡으려고 하는 수컷은 공격당할 가능성에 자신을 노출하게 된다. 비비 수컷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물린 상처는 평생을 갈 수도 있고, 인사를 먼저 거는 데는 위험천만한 침해에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으리라는 엄천난 확신이 필요하다. (불알)인사는 두 수컷이 똑같이 우호적일 때만 가능하다.

 

다른 영장류들도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 로마에서는 두 남자가 서로 상대방의 불알을 쥔 채 충성 서약을 했다. 남자들은 고아장에서 증언을 할 때 자신의 불알을 정직함의 표시로 여켰다. 증언하다(testify)라는 말은 불알(testicle)에서 나왔다. 비비 수컷과 고대 로마인 남자의 행동은 '핸디캡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인간관계에서 파트너의 약속 이행 여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파트너에게 비용을 부과하고 파트너가 그것을 부담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279쪽

 

집개는 전적으로 주인에게 의지하는 만큼, 안심하고 잘 수 있는지, 길거리에 내버려질 걱정은 안 해도 되는지 알기 위해 의리를 시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하비에 따르면, 개가 당신 무릎에 뛰어오르거나 얼굴을 핥거나 당신이 하는 일에 끼어들 때는 당신이 아직 그 개를 좋아하는지, 개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지 확인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주인과 잠시 떨어진 뒤나 주인이 막 떠나려고 할 때는 정보 수집이 특히 중요하다. 이때야말로 관계가 지속될지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 개가 당신 얼굴을 핥으면 그게 애정을 표시하는 것이겠거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왜 애정을 이런 특수한 방식으로 표시하는지 곰곰이 짚어봐야만 한다.

 

313쪽

 

생물학적 시장 이론이 발전하기 훨씬 이전인 1970년대에 영장류학자 로버트 세이파스는 추측하기를, 낮은 서열의 암컷들이 최고 서열의 암컷을 손질해주려고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그리고 수요와 공급에 따른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모든 암컷들이 타협할 수밖에 없으며 서열상 자기보다 바로 위에 있는 암컷을 손질해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비비 집단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자신의 추측이 옮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대다수 암컷 비비들은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암컷들을 손질해주었으며, 특히 서열상 자기보다 바로 한 계단 위에 있는 암컷을 손질해주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 후에 이런 현상은 짧은꼬리원숭이나 버빗원숭이 같은 다른 영장류 동물에게서는 물론이고 우리가 7장에서 살펴보았던 점박이하이에나 같은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관찰되었다.

 

359쪽

 

투비와 코스미데스가 사용하는 용어로 말하자면 "특정한 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설계된 프로그램들이 만약 동시에 활성화된다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출력들이 산출되어 서로의 기능을 방해하거나 무효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결과를 피하려면 마음 속에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될 때 다른 프로그램들을 무효로 만들고 비활성화하는 상위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위 프로그램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서이다. 즉, 정서는 다른 모든 행동적, 생리적, 인지적 하위 프로그램들의 활동과 상호작용을 이끌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중략)
투비와 코스미데스를 인용하자면 "정서란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 내기를 거는 것과도 같다. 테러를 당햇을 때 도망치는 것, 메스꺼움 때문에 음식을 토해내는 것, 분노에 차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 등은 모두 이런 반응을 유발하는 조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 조상들에게 최고의 평균 이익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다시 걸게 된 내기이다."

 

370쪽

 

전 세계의 대다수 사람들이 비슷한 사회적 상황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사회적 행동이 많은 부분 유전적으로 통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행동은 가변적이며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가변성은 무한하거나 자의적인 것이 아니며, 예측 불가능하거나 부적응적인 것도 아니다.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낱낱이 예측하기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하기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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