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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현] 뼈가 들려준 이야기(2015)

독서일기/인류학

by 태즈매니언 2019. 3. 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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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페친들께서 많이 추천했던 책인데 부끄럽지만 국내 학자의 책인줄 알고 미뤄뒀었다. 알고보니 미국에서 정통적인 고인류학 연구를 하시고 하와이대학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분이었다. 최재천 원장님과 이정모 관장님이 추천사로 격찬하신게 괜한 게 아니었다.

 

의사/의학자가 아니면서 사람의 뼈를 연구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골상학의 어두운 인상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진짜 뼈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일반인도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소개하고 있다.

 

저자 자신이 학부 새내기 시절 읽었던 <최초의 인간 루시>라는 책 덕분에 이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특히 한국에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 읽기를 바라고 쓴 것 같다.

 

뼈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고인류학의 스타들과 업계이야기, 법의학, 진화론, 지적설계론 비판 등 읽을거리가 참 많다. 인종간 피부색과 비타민D에 대한 이야기도 뼈 이야기는 아니지만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을 읽고도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적설계론을 고집하는 사람과는 지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없지 싶을 정도로 친절하다. 수요-공급 법칙을 부정하는 사람과 무슨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나?

 

뼈를 연구하는 여성 인류학자인 저자가 직접 출산을 경험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인간의 뼈에 대한 책을 써서 그런지 육아를 경험할 기회가 없는 내게는 어린이의 뼈가 자라는 과정도 무척 재미있었다.

 

미국에서 중중외상센터의 최첨단을 보고 돌아와 한국에서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이국종 교수님처럼 한국인 고인골 연구를 위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뼈를 깎는 고생을 해야할 것 같아 보여 안타깝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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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몸에서 가장 늦게 성장이 끝나는 쇄골이 정자와 난자가 만난 지 불과 5주 만에 엄마 배 속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뼈라는 것이다.

 

139쪽

 

출산 후에는 임신과 모유 수유 때문에 몸에 있던 칼슘이 많이 빠져 나가 이를 완전히 회복하는 데에 1년 정도 걸린다. 물론 임신 중에도 태아의 뼈 형성을 위해 칼슘이 필요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신생아에게는 그보다 4배나 더 많은 칼슘이 필요하다.

 

모유 수유를 하면 이 모든 칼슘을 엄마 젖으로 공급받는데 그 엄청난 양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엄마의 뼈 속에 있는 칼슘까지 끌어다 써야 하는 경유가 많다. 말 그대로 엄마 등골 빼가며 자식을 먹이는 셈이다. 모유 수유를 끊으면 엄마 몸 속의 뼈는 다시 맹렬한 속도로 칼슘과 각종 무기질을 보충해 나간다. 보통 이 과정이 3~6개월 정도 걸린다.

(연년생 자녀들은 어머니께 잘 해야겠습니다. ㅠ.ㅠ)

 

167쪽

 

황색의 피부를 가진 한국인은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고 팔다리를 다 노출한 상태에서 10분 정도 햇빛을 받으면 1000IU 정도의 비타민D가 생성되지만 흑인은 같은 양의 비타민D를 합성하는데 6배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270쪽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과학사에 한 획을 긋게 되길 꿈꾸는 이들이다. 따라서 다윈의 진화 이론과 맞지 않는 현상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그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설 것이다. 그런 발견을 찾기만 한다면, 이는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며 인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남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다윈을 특별히 더 좋아할 이유도 없고, 그의 이론이 맞지 않다면 더더욱 그를 옹호할 이유가 없다. 과학의 어떤 이론도 그 이론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단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이고 훗날 그 이론이 틀렸다는 증거가 나오면 그 이론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299쪽

 

발굴 현장에서 사람 뼈를 찾기란 쉽지 않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초식 동물에 비해 숫자가 많지 않다. 사람이 죽어서 뼈가 잘 보존되는 환경에 묻힌 다음에 몇 백만 년의 시간 동안 썩지도, 쓸려 내려가지도 않고 버틴 후 마침 그 지역에 온 인류학자의 눈에 띈다는 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덕을 쌓지 않고는 여간해서 만날 수 없는 행운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 뼈 화석을 찾느라 평생을 바친 사람도 결국 한 점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310쪽

 

하와이는 1년 내내 날씨가 좋다 보니 미국 전역에서 노숙자가 몰려든다. 노숙자들이 모여 커다란 텐트촌을 만든 곳도 여러 군데다. 주민이 낸 세금으로 이들을 얼마만큼 도와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노숙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문제는 미국 본토에서 오갈 곳 없는 정신 이상자들을 누군가가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 자꾸만 하와이로 보낸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하와이 정부는 골머리를 않고 있다.

 

333쪽

 

사람 뼈 컬렉션의 문이 꽁꽁 닫혀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뼈를 수집할 법적 근거도 없고 사람들의 인식도 부족하니 고고학 유적에서 발견되는 뼈도 그대로 화장해버리기 일쑤다. 뼈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현실이 특히나 안타깝다. 그렇기 때문에 뼈의 중요성을 알리고 유적에서 나오는 사람 뼈를 지금부터라도 모아야 한다고 계속해서 설득하는 것이 학자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뼈를 모아 고인골 보관 센터를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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