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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랭엄/조현욱 역] Catching Fire 요리본능(2009)

독서일기/인류학

by 태즈매니언 2015. 8. 13.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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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훈님의깨알목록 1탄 중 거의 마지막으로 읽은 책인듯. 인류가 유인원에서 진화하게된 도약의 발판을 '화식(익혀먹음)'으로 논증한 뛰어난 번역서적이다. 그런데 이 책이 수준 미달의 편집자를 만나서 흙 속의 진주처럼 묻혀버렸다. 처음에는 번역자의 기본기 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옮긴이의 후기를 보니 출판사 편집자의 고집이 문제였던 것 같다.

 

<Catching Fire: How cooking made us human?> 이라는 훌륭한 제목을 뜬금없이 <요리본능>이라고 옮기다니. '화식'이나 '익혀먹기'이라고 표현하기가 어렵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면 차라리 '조리'라고 하던가. 이 책의 뒷표지를 보면 내 판단이 지나친 억측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요리사다!!'라는 뜬금없는 카피나 아래 문장 모두 함량미달이다. 게다가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도 평소 그의 글과 달리 절반쯤은 쓸데 없는 소리고. 게다가 가장 어이가 없는 건 다른 ...추천자인 에드워드 권의 추천사다. 도대체 이 책하고 연관되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이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쓴 게 뻔히 보이는 추천사를 그대로 실은 편집자를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에드워드 권의 이름이 주는 후광을 이용하려고 했다지만 이런 똥글을 그대로 실어주는 건 패기를 넘어 자기 일을 내팽겨친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정말 좋은 책에 어울리지 않는 표지에 화가나서 말이 길어졌네. 이 글도 좀 길지만 평소에 생식을 하시거나 이를 좋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침팬지를 연구한 영장류 인류학 전문가인 리처드 랭엄은 인류와 침팬지와 인류의 조상이 갈라진 가장 큰 원인을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익히지 않는 음식만 먹고 사는 사회는 없다.'는 사실에서 실마리를 잡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화식가설로 약 200만년 전 하빌리스 중 일부가 성공적으로 이뤄낸 극적인 진화의 도약을 설명했다.

영장류의 경우 대부분의 신체기관은 체중을 이용하여 그 크기를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데 소화관은 섭취하는 먹을거리의 종류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인간의 경우는 소화관이 다른 영장류의 60% 남짓에 불과하다. 대신 인간의 뇌는 신체비율 대비 매우 크고 대사량과 무관하게 섭취하는 칼로리의 20%이상을 소모한다. 날기 위해 소화관을 짧게 하고 어깨근육에 투자한 새의 경우처럼 일종의 교환(trade-off)을 선택한 것이다. 먹을거리를 가능한 잘게 부수고 불의 열기로 익히면 영양소 흡수율이 평균적으로 23.4%가량 향상되고, 소화에 소모되는 칼로리가 10%정도 감소한다. 인간은 질기거나 단단한 먹을거리들을 불로 익힐 수 있는 덕분에 하루에 6시간 이상 음식을 씹으며 보내는 침팬지보다 훨씬 작고 나약한 턱근육과 작은 어금니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하루 중 음식을 씹는 시간은 1시간으로도 충분하다. 단단한 근육결합조직인 콜라겐이 6~70도에서 부드러운 젤라틴으로 변성되는 예처럼 소화비용은 불을 이용한 조리를 통해 극적으로 줄어든다. 또한 횃불을 통해 인간이 밤시간에 자신을 천적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되어 숲이 아닌 평지에서도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나무를 타는데 유리한 신체는 땅을 파서 구근류를 찾는 팔근육과 직립해서 걷는 능력이 발달하였다. 인간은 불 덕분에 털이라는 효율적인 단열시스템이 없이도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털이 없는 피부를 가지게 되었고, 그 대가로 얻은 빠른 체열발산능력덕분에 포유류 중에서도 월등한 지구력을 가지게 되었다. 밤새 꺼트리지 않고 불씨를 유지하며 포식자의 출현을 경보하는 불침번의 필요성은 사회성있는 개체의 자연선택을 촉진하였다. 섭취 및 소화시간의 극적인 단축은 장시간의 사냥시간 투자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고기의 획득가능성과 성별 분업의 효율성을 높였다. 익힌 이유식은 영유아의 성장속도를 빠르게 하였고, 젖떼는 시기를 앞당겨 여성의 가임 터울을 단축시켜 인구증가에 기여했다.

 

리처드 랭엄은 인간의 가족의 구성도 배타적인 성적 파트너로서의 결합보다 남자는 주로 수렵을 통한 단백질 취득, 여자는 채집을 통한 탄수화물 취득이라는 차이와 불을 지키고 사냥을 마치고 왔을 때 고열량의 식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조리서비스의 제공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부분들처럼 명쾌하게 납득이 되지 않긴 하다. 하지만 조리의 접근성과 투입시간 및 노동량이 줄어들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고전적인 성별분업의 필요성이 낮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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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쪽

 

북극 지방은 땔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로 요리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여자들은 여름에는 잔가지로 불을 피우고 겨울에는 바다표범이나 고래의 기름으로 불을 땐 돌 냄비에 요리를 했는데, 겨우 불을 피워 눈을 물로 녹인 다음에도 고기를 익히는데 또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이렇게 요리가 어려웠지만 고기는 늘 푹 익혔다. 스테판손은 1910년에 남긴 기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 사람들은 피가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를 게걸스럽게 먹지만 이누이트가 덜 익은 고기를 먹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58쪽

 

생식주의자가 잘 살아가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번성할 수 있는 것은 품질이 예외적으로 높은 음식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 환경에서뿐이다. 그러나 동물들은 야생의 먹을거리를 날로 먹으면서도 잘 살아간다. 진화 식단의 단점에서 시작된 의심은 옳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우리에게는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 대부분의 환경에서 우리는 익힌 음식을 필요로 한다.

 

127쪽

 

다른 자료들을 보면 주위 생태계의 변화가 영구적이면 그곳에서 서식하는 종에게도 영구적인 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게다가 그 변화는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섬에 고립된 동물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중앙아메리카 본토 보어뱀은 벨리즈 연안의 섬으로 이주 한 지 8,0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포유동물을 잡아먹는 식습관이 완전히 바뀌어 새를 잡아먹게 되었다. 따라서 새를 사냥할 수 있는 나무 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몸통이 가능ㄹ어지고 암컷과 수컷 간의 몸집 차이도 없어졌으며 체중은 과거의 5분의 1로 줄어드는 등 확연히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다.

 

177쪽

 

연구가 잘 이루어진 9개의 집단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여자들이 구해온 음식에서 얻을 수 있는 열량의 비율은 16퍼센트에서 최대 57퍼센트에 이르렀다. 평균적으로 볼 때 여자들이 공급한 열량은 3분의 1, 남자들이 공급한 열량은 3분의 2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균치 만으로는 남녀가 제공하는 양식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남녀가 각각 구해오는 양식의 상대적인 중요성은 1년 중 어느 시기냐에 따라 달라지고, 남녀가 제공하는 식량 모두가 서로의 건강과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253쪽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음식의 영양 성분 표시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도 한 약정은 바로 애트워터 시스템이다. 이 체계를 발명한 윌버 올린 애트워터는 1844년에 태어나 19세기 말 코네티컷에 있는 웰슬리안 칼리지의 화학 교수가 되었다. 애트워트는 가난한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먹을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뜻깊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먼저 다양한 음식들이 제공하는 열량을 각각 알아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261쪽

 

<국가표준 식품영양 DB>와 <음식의 성분>에 씌어진 자료를 모은 과학자들은 날음식이 익힌 음식에 비해 체내에서 실제로 생산하는 에너지가 더 적고, 날음식의 비율이 높을수록 신체에서 이용되지 못하고 배출되는 비율도 높아진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구시대적인 근사치 측정 기술에 갇혀 있었고, 그 결과는 거짓말을 낳았다. 영양 성분표의 자료는 음식의 입자 크기는 중요하지 않고 음식을 익히는 것은 에너지 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반대가 진실임을 증명하는 증거 자료들이 풍부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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