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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망고/곽영완 역]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2012)

독서일기/중동아랍

by 태즈매니언 2015. 9. 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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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와 터키인을 만들어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대한 제대로 된 전기 중에 유일하게 번역된 책. 아마도 유일하게 번역된 책이 아니었으면 중간에 집어던져버렸을 정도로 책은 정말 못썼다. 중간에 앞뒤가 안맞거나 난데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가 일쑤. 꽤나 두툼한 책이지만 핵심적인 내용들을 추리다보면 결국 나무위키에 정리된 정도를 참고할만하다.

 

15년간 집권한 독재자이고 터키 민족주의를 강조하다보니 소수민족들을 박해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쪽으로 줄을 잘못서는 바람에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던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터키 공화국을 성공적으로 구축해낸 군사적 역량과 세속주의 원칙에 입각한 내정 개혁, 국제정세를 잘 읽고 자국에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판단한 통찰력 모두 대단하긴 하다. 우리나라로치면 김일성의 군사능력과 이승만의 외교능력, 박정희의 국가비전과 실천력을 합친 정도? 거기에 더해 자식도 없이 호치민과 저우언라이처럼 사심없는 모습까지 겸비했으니. 이정도면 20세기 개도국에서 가질 수 있는 정치가 중에서 최상급의 인물이 맞기는 한듯 싶다.

 

열강들 간의 거대한 체스게임같은 주제들의 책을 보다가 2류국가들과 대적하며 악전고투하는 3류국가에 대한 책을 보니 집중도가 떨어지긴 했는데 3류가 그나마 2류로 올라서서 자기 자리를 다지는데 얼마만큼의 노력과 희생, 그리고 운빨이 필요한지 아시아의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터키의 사례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이 책 덕분에 아타튀르크가 서구적 근대화에 호감을 가지게 된 성장배경, 오스만 투르크가 왜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편으로 참전했는지, 터키의 수도가 왜 앙카라로 정해졌는지, 그리스와 터키가 왜 이렇게 철천지 원수와 같은 사이인지, 80년대 터키 정부가 왜 쿠르드 족들을 그렇게 심하게 박해했는지 등을 알 수 있게된 점 정도가 소득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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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아타튀르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살로니카(그리스지명:테살로니카)는 작은 도시가 아니었다. 1878년 러시아와의 전쟁 이후 압뒬하미트 2세에 의해 유지되던 오랜 평화 시기 동안 이 도시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1889년 세르비아와 비엔나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도가 건설됐다. 수도인 이스탄불과 연결된 또 다른 철도망도 불가리아를 거쳐 유럽과 직접 이어지도록 건설됐다. 1901년에는 근대적인 항구가 건설됐다. 1899년에는 전기가 가설됐고, 1907년부터 전차가 운행했다.

 

31쪽

 

아타튀르크는 자신의 삶을 소개한 한 신문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당시 이 학교를 떠나면서 사관생도들이 입는 세련된 서구 스타일의 제복이 입고 싶어 살로니카에 있는 군사예비학교에 들어갈 결심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마조르 카드리라고 하는 이웃집 아들이 이미 군사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어린 무스타파는 그를 매우 부러워했다. 아타튀르크는 후에 동지인 크르츠 알리에게,  어린 소년으로서 셈시 베이 학교의 소년들처럼 동양풍의 헐렁한 바지를 입고 허리띠를 묶는 옷을 입기가 정말 싫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군사 예비학교에 입학해 제복을 입는 순간 나는 마치 나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

 

97년

 

1911년 9월 29일, 북아프리카에 남은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영토 트리폴리와 키레나이카를 빼앗기 위해 이탈리아가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이는 터키가 겪은 대전쟁의 시발점이었다. 터키는 이후 1923년 로잔 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단 1년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전쟁에 휘말렸다.

 

263쪽

 

연합국은 도자기로 유명한 파리 외곽의 세브르에서 조약식을 갖기로 했다. 조약식은 1920년 8월 10일, 오스만 측에서 3인의 전권대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로서 오스만 제국은 이름만 남게 됐다. 이를 통해 오스만이 영토를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이즈미르 지역은 투표를 통해 5년 내에 그리스로 통합되게 되어 있었다. 윌슨 대통령은 아르메니아 지역에 대한 입장을 굳혔다. 국제연맹은 쿠르드족도 원한다면 독립시키기로 결졍했다. 또 술탄은 자리를 유지하되 연합국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별도의 협약에 따라 프랑스가 소유하게 될 지역과 이탈리아가 장악한 남부지역 이외의 소아시아 지역도 연합국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외국인들에게는 치외법권의 특권도 주어졌다.

 

420쪽

 

아랍문자는 불편한 점도 많았다. 네 가지 형태로 되어 있었고, 짧은 모음은 생략되기도 했다. 아랍문자로는 아랍어에 비해 자음이 적고 모음이 많은 터키어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중략)
터키어는 아랍어를 사용할 때와 비교해 읽고 쓰기가 정말 쉬워졌고, 유럽 나라들의 알파벳을 배울 때도 따로 배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이슬람어를 배우기는 무척 어려워졌다. 아랍어에 어원을 둔 문자는 더 이상 추가되지 않았고,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에서 차용해온 단어들은 사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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