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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2015)

독서일기/독서법창작론

by 태즈매니언 2015. 10. 24.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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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광주 본가에 내려갔을 때 광주천변 어떤 다리에 붙은 유시민씨의 글쓰기 특강 펼침막을 봤다. 몸담았던 모든 정당에서 욕을 먹고서 결국 은퇴한 정치인이지만 그의 글솜씨는 다들 인정하는구나 싶어서 슬며시 웃음이 나더라. 그래서 그가 이 책을 펴냈단 소식을 듣고서 한 번 봐야지 하고 기억에 담아뒀다.

 

학창시절 무수히 읽었던 무협소설에 나오는 정파와 사파의 구분이 떠오른다. 정파의 직전제자(直傳弟子)는 사숙과 사형제들과 함께 자파의 개파조사(開派祖師)가 남긴 무공의 원류에 깊이 천착한다. 사파는 강호를 주유하며 사선을 넘나들면서 접한 각종 무공들의 장점들을 조합하여 자신의 독문무공(獨門武功)을 창안한다.

 

동년배 중 가장 먼저 장관의 자리에 올랐던 유시민씨는 5년 이상 계속했던 직업이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 자신이 추구하는 업을 '지식 소매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즉 그는 사파고수에 속하는 사람이다.

 

잉곳을 숯불에 넣었다가 모루에 대고 두드리고, 찬물에 담그는 식으로 물결치는 무늬의 명검 접쇠단조 다마스커스검(pattern-welded damascus sword)을 만들어낸 장인이라기보다 이 칼날에 그 지역 검객들의 칼잡는 방식에 딱맞는 칼잡이와 칼집을 만들고, 칼날의 날카로움을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숫돌과 칼가는 법을 전수하는 전문 상인에 가깝다. 

 

그가 요 몇년 펴내는 책들은 사파고수가 강호의 후배에게 전하는 초식들처럼 느껴진다. 경험으로 체득한 것들이기에 정파의 무공처럼 절학의 원류를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체득한 방식 그대로의 초식으로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같은 무명소졸은 초식 위주의 유시민씨의 글을 좋아하고 그 매력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다마스커스검 장인이나 정파의 직전제자처럼 없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에 깊이 천착해온 이들은 이런 사파 고수에 대해서 호감을 갖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책을 덮고서 명민함과 인격을 다 갖춘 리버럴이신 분께서 왜 굳이 유시민씨를 불쾌해하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내려본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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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쪽

 

텍스트 요약은 귀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바르게 이해해야, 남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남들이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먼자 남이 쓴 글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말로든 글로든, 타인과 소통하고 싶으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바람직하다.

 

68쪽

 

요약은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추려 논리적으로 압축하는 작업이다. 텍스트를 이해하고 문장을 만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독해력과 문장 구사력 그리고 요약 능력은 서로를 북돋운다.
(중략)
텍스트 요약은 혼자 해도 괜찮지만 여럿이 함께하면 더 좋다. 텍스트를 오독하거나 핵심을 잘못 파악할 경우 혼자 하면 깨닫기 어렵지만 여럿이 하면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90쪽

 

나는 우리가 만든 유인물을 받은 사람을 몰래 따라가서 헤아립니다. 내가 관찰한 사람 중에 몇 명이 우리 것을 다 읽은 다음에 접어서 넣느냐? 그걸 보는 겁니다. 그게 많을수록 잘 쓴 겁니다. 대충 보고 나서 깔고 앉는 건 야당에서 만든 두꺼운 아트지 홍보물인 경우가 많아요. 흘낏 보고 버리는 것은 상투적이라 그래요. 제목만 보고 접어서 넣는 건 무서워서 그런 겁니다. 나중에 사람 없는 데에서 보려는 거죠. 무섭지 않고 공감이 가는 유인물은 그 자리에서 다 읽어요. 그리고 아는 사람한테 보여주어야겠다 생각하면 집어서 넣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유인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112쪽

 

독자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뜻과 느낌이지 원서의 문장구조가 아니다. 문장구조를 그대로 둠으로써 원문의 뜻과 느낌을 그대로 전한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거나 오해일 뿐이다. 번역서든 아니든, 우리말 책은 우리말다운 문장으로 써야 한다. 그러므로 번역을 잘하려면 우리말을 잘해야 한다.

 

119쪽

 

말 못 하는 아기한테도 자주 말을 걸어주어야 한다. 아기는 부모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부모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때 아기의 뇌에서는 행복한 비상상태가 일어난다. 청각신경이 포착한 음성 정보를 해독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 아기의 뇌는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에 더 많은 뉴런을 배치하고 교신을 더욱 강화한다. 따라서 반쪽자리 말을 하는 아이라도 완전한 문장으로 대화해야 한다.
(중략)
아이가 언어 능력을 온전하게 발전시키도록 하려면 부모가 우리 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우리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말 공부를 새로 할 수도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말을 바르고 예쁘게 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부모가 완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친숙한 목소리로 읽어줄 때, 아이의 뇌는 그 음성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170쪽

 

어떻게 하면 잘못 쓴 글을 알아볼 수 있을까?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만약 입으로 소리 내어 읽기 어렵다면,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잘못 쓴 글이다. 못나고 흉한 글이다.

 

253쪽

 

글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실용적인 면에서든 윤리적인 면에서든, 읽는 사람에게 고통과 좌절감을 주는 글은 훌륭한 소통 수단이 될 수 없다. 타인에게 텍스트를 내놓을 때는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글 쓰는 사람이 지녀야 할 마땅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런 자세를 유지하려면 지식과 전문성을 내보이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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