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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가족]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2015)

독서일기/여행

by 태즈매니언 2015. 10. 28.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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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집과 세종시의 책장에는 사놓고 아직 펴지도 못한 책들이 많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냥할 추천도서목록도 수십 권이고. 그런데도 "공짜"의 유혹은 막강하다. 이미 합법적으로 납치해온 책들은 킵해놓게 되더라. 공짜로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들이 꼭 읽어야 할 돈주고 산 훌륭한 책들을 읽을 순서 사이로 끼어든다.

 

인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는 방법은 탄생 직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접혀진 주름들을 펴고 다시 덮으며 비효율적으로 산다. 계획했던 읽을 책들 순서 사이로 새치기하듯 끼어든 대부분의 책들은 세월의 풍화작용 속에서 금방 낡아가 바스라져버릴 책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소소한 이야기들이 접하는 시간들이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적으로 자극이 되고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보다, 구성도 좀 엉성하고, 틀린 정보도 꽤 담고 있는데다가 조판이나 편집도 부실한데도 여러 사람들이 같이 읽었던 책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처럼.

 

모든 경험이 공유되는 요즘같은 때에 그나마 개인의 경험으로 남는게 독서라지만 가끔은 책 한권을 여러명이 붙잡고 같이 읽던 예전 시절이 그립다(아무리 그래도 교과서는 절대 사절 -_-).

 

내 공짜 책 공급장소는 세 곳이다. 집에서 걸어서 400미터 거리에 불과한 일산 백석도서관이 가장 멀고 불편하다. 다음으로 같은 직장 내에서 직장 내 도서관이 있다. 책은 많지만 업무용 서적과 저널들이 대부분이라 잘 안가게 된다. 결국 학급문고 같은 느낌의 노동조합 사무실 책장을 월등히 자주 찾게 된다. 일과시간 중 화장실 가는 척 슬그머니 들러서 새로 구매한 책들을 훑어보고 얼른 빌려간다. 다른 이들도 패턴이 비슷하다보니 대출일지 페이지는 계속 넘어가는데 책벌레끼리도 일년에 한 번 얼굴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중년의 부모와 세 중고생 자녀로 구성된 가족의 유라시아 왕복 버스여행을 다뤘다. 속초에서 포르투갈까지 8인승 버스로 유라시아를 가로질러간 것도 대단한데 타원을 그리며 버스로 되돌아오기까지 하다니. 책을 덮고나서 하루의 1/3 이상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떠올려봤다. 이런 대출일지만 남기는 느슨한 독서클럽에는 술자리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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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쪽

 

대부분의 남자들은 차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신감을 넘어 자만의 경지에 올라 있다. 차는 제 뜻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 제 뜻대로 움직이는 몇 안 되는 애인이고, 격렬한 운전으로 힘없는 자신을 '상남자'로 포장해줄 수 있는 물건이고, 돈을 자랑해야 성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소장품이다. 그 자신감 속에는 전화 한 통이면 차를, 정비, 수리할 수 있다는 배후가 숨어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자랑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도 똑같다. 다른 남자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 곳에는 아버지를 도울 배후가 없다는 것이다.

 

89쪽

 

쓸데없는 것과 쓸데 있는 것의 차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라는 말을 참 많이도 하고 살았다. 아버지 삶의 경험에서 나왔던 좋지 않았던 결과들을 아이들이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아이들이 경험해보지도 않은 일을 '틀렸다!'라고 말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삶과 아이들의 삶은 환경적, 물리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없으니 경험도 다르게 적용될 것이라는 걸 간과하고 살았다.

 

98쪽

 

시베리아는 러시아어로 '시비르'라고 한다. 시비르는 타타르어로 '잠자는 땅'이라는 뜻이다. 시베리아는 우랄산맥에서 동쪽으로 태평양 연안까지의 가로길이 약 7,000km미터, 세로길이 약 3,500km 크기의 땅덩어리다. 우리 가족이 미니버스를 타고 이 곳까지 오는 데 한 달 반이 걸렸다. 그동안 시차가 여섯 번이나 바뀌었다. 이곳을 그저 통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달 반이라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집을 조금씩 움직여 이곳까지 왔다. 삶의 연장선이었다.

 

136쪽

 

"핀란드에서는 세금 많이 납부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핀란드 국세청은 우리나라의 전화번호부 같은 책을 마을마다 발행한단다. 누구나 열람이 가능한 그 책자에는 마을 사람들이 전년도에 납부한 세금 액수가 적혀 있다. 다른 동네 사람이나 유명인의 세금 납부액은 인터넷 검색이나 국세청으로의 전화 한 통이면 알 수 있단다. 툴라 할아버지는

세금보다 누진세를 적용하는 핀란드의 벌금제도가 더 훌륭하다고 말씀하신다.
"만약 속도위반에 걸리면 경찰이 휴대폰으로 국세청에 기록된 납세 기록을 확인하고 범칙금을 정한다. 정해진 벌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소득만큼 내라는 제도다."

 

340쪽

 

우리나라의 도로는 북유럽을 제외한 유럽의 그 어떤 나라보다 좋다. 우리나라 도로를 기준으로 캠핑카 내부를 개조하면 위험하다. 캠핑카 실내의 수납장은 대부분 잠금 장치가 되어 있지만 여기에 만족하면 안된다. 수납장 안의 물건도 일일이 고무 밴드로 묶어 고정시켜야 하고, 그렇게 하기 어려운 물건들은 투명 플라스틱 박스에 넣어 보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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