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었던 유명한 극작가 유진 오닐, 그의 희곡을 처음으로 읽었다.
애증이 교차하는 가족이란 관계에 대해서 이런 걸작은 흔치 않다. 얼마 전 읽었던 심종문의 <변성>에서 취취와 사공노인의 관계가 전근대 가족관계의 전범을 보았다. 삶 자체가 복잡해지고 혼자 감당해야하는 여지가 커진 근대 개인주의 사회에서 가족들이 적절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했을 때의 비극을 이 보다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사후 25년이 지났을 때 이 작품을 발표해주길 원했던 유진 오닐이나 그의 사후 3년만에 작품을 공개한 아내 칼로타의 마음 모두가 이해간다.
1910년대 미국의 성공한 1.5세대 아일랜드계 이민가족이나 베이비부머 부모와 그 자식들로 구성된 가족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후자는 이 나이까지 같이 살지 않고, 묵은 상처를 잊을만큼 거리를 확보하고 살아서 굳이 솔직한 말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정도?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의 헌사은 내 기억에 가장 훌륭하고 읽는 이의 마음을 후벼파는 헌사여서 길지만 인용해본다. 원문으로도 보고싶은 글. 참고로, 나무위키를 통해 유진 오닐의 아픈 가족사에 대해 조금 알고 읽으면 더 저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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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타에게,
우리의 열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사랑하는 당신,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바치오.
행복을 기념하는 날의 선물로는 슬프고 부적당한 것인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당신은 이해하겠지.
내게 사랑에 대한 신념을 주어
마침내 죽은 가족들을 마주하고 이 극을 쓸 수 있도록 해준,
고뇌에 시달리는 티론 가족 네 사람 모두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 글을 쓰도록 해준,
당신의 사랑과 다정함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 글을 바치오.
소중한 내 사랑, 당신과의 십이 년은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로였소.
내 감사의 마음을 당신은 알 것이오.
내 사랑도.
유진 오닐
타오 하우스에서 1941.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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