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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커/이나경 역] 치명적인 일본 Dogs and Demons(2001)

독서일기/일본

by 태즈매니언 2016. 4. 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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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직장의 연배가 높으신 경제학 박사님께서 재미있게 읽었다고 <Dogs and Demons>란 책을 추천해주셨다. 원서는 언감생심이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그 날 점심먹으며 들었던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에피소드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며칠 전 찾아보니 교토에서 35년을 살았던 영국인 알렉스 커(Alex Kerr)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게 1996년이고, 2001년에 출판했더라. 우리나라에는 바로 다음 해 <치명적인 일본>이라는 책으로 바로 번역되어 나왔고. 그런데 <국화와 칼>처럼 알렉스 커가 고심해서 지은 제목인 <개와 귀신>을 왜 뜬금없는 제목으로 바꿨는지. (불만스러워서 뒷표지를 찍었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황제가 화가에게 어떤 것이 그리기 쉽고, 또 어느 것이 어려운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화가는 개는 어렵고 귀신은 쉽다고 대답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개처럼 평범한 것은 제대로 그리기 어렵지만, 귀신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고상한 전통과 아름다움을 아는 저자가 개를 잘 그릴 생각은 하지 않고 편집증처럼 온갖 스타일의 귀신그림만 그려대고 있는 90년대 중반의 일본사회에 대해 던진 애정에서 나온 쓰라린 비판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닮은 꼴 국가인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대략 15년 가량 앞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1년에 일본의 문제점을 분석한 책을 읽으며 2016년의 우리나라에 대한 지적으로 대입해서 읽어볼만하다고 느꼈고.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수십가지 일들의 데자뷔를 접했다.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는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시의성이 있다.

 

<Dogs and Demons>를 읽고서 일본에 대한 컴플렉스를 많이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1997년의 경제위기가 우리나라에게 정말 축복이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일본의 어설픈 모작 시스템이었기에 엉성했고, 그래서 좀 더 빨리 고장이 났기에 대대적으로 시스템을 갈아엎을 수 있었던게 천만 다행이다.

 

차가 워낙 성능이 좋다보니 핸들도 안돌아가고 브레이크는 말을 듣지 않는 상태로 너무 많이 가버린 일본은 돌아올 길이 엄청 멀어졌다. 말도 안되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일본 도로공단은 왜 그런지, 일본정부가 막대한 부채를 탕감해주면서까지 JR을 쪼개야했던 이유, 일본 국민들이 우체국 예금을 왜 그렇게 많이 들고, 관료들은 그 돼지저금통을 어떻게 쪼개 썼는지 맥락을 알 수 있어도 좋았고 우리나라를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가끔 편파적이고 선동적인 사례들을 서술하는 부분들을 잘 걸러서 읽는다면 아주 좋은 책이다. 물론 지금 시점의 일본은 알렉스 커가 비판하던 15년 전의 일본보다 훨씬 달라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난 15년 동안 일본이 개선된 속도는 같은 시간 동안 한국이 달라진 속도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알렉스 커가 인터뷰했던 한국 경제정보 웹사이트 팍스텟의 강동진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경제는 일본을 따르기 보다는 미국을 따른다. 한국은 미국이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번영의 방법이 정확히 일본의 반대임을 깨달았다. 우리들에게 있어, 어떤 면에서 선택은 쉬웠다."

 

여담인데, 이 책을 인상깊게 읽었지만 여전히 난 일본을 좋아한다. 석 달을 못 참고 이번 주말에도 짧게 다녀올 예정이고(신용대출 잔고를 보면 안가는게 맞는데 --;). 난 교토에 처음 갔을 때 감동했는데 내가 본 교토는 알렉스 커가 다 망가져버렸다고 비통해하는 교토라는 건 좀 아이러니다. 60년대의 교토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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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쪽

 

1994년 7월, 오사카 법원은 공해병인 미나미타 병에 걸린 59명의 원고에 의해 1982년에 제기된 이후의 소송에 최종 판결을 내렸는데 그 동안 원고 가운데 16명이 사망했다. 평결은 다음과 같았다. '본 법정은 치소사가 해안에 수은을 방류하는 것을 중단시키지 못한 데 대해, 정부나 구마모토현 측의 태만행위를 찾을 수 없었다고 판결을 내린다.' (중략) 1995년이 되어서야 2천명의 원고를 대표하는 미나미타 환자 단체는 정부와의 협상안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의사들이 처음으로 중독사례를 발견한지 40년이 지난 후였다.

 

229쪽

 

일본 도시를 가장 혐오스럽게 하는 두 가지 규제가 바로 상속세와 일조법이다. 일본의 상속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지난 반세기 동안 땅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옛집을 상속받은 사람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그 집들을 팔아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땅들에는 어김없이 아파트 단지가 생겼다. 단층짜리 목조건물이 서 있는 비좁은 공간을 따로이 활용할 방안이 없기 때문이었다. 세무서는 역사적인 지역에 있던 옛 건물에 대해 거의 면세를 해주지 않았다.

 

(중략)

 

일조법은 고층건물이 이웃집의 햇빛을 차단하는 행위를 제한하려는 아주 훌륭한 의도로 1960년대에 통과되었다. 이 법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건물은 이웃집에 햇살이 들어설 공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모양이 되었다. 이러한 법규때문에 도쿄의 경우 건폐율이 50%를 상회할 수 없는데, 이는 파리와 로마를 포함한 세계의; 어느 수도보다도 가장 낮은 것이다.

 

260쪽

 

기념비적인 건물은 그들이 성공적인 현대사회에 살고 있음을 증명해 주지만, 성공한 현대사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러한 하잘 것 없는 일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의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311쪽

 

재무성은 규정을 정해주는 대신 일본 금융계에 엄격한 경계선을 정해 활동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즉 바다에서 상어를 몰아내는 대신에 바다의 크기를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들의 작은 우주 안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재무성 관료들로 하여금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 재정립되고 있는 부의 창출에 대한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되게끔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재무성은 신생 기업의 직원들에게 주는 스톡 옵션을 인정하는 데 대한 절차가 얼마나 복잡한지 현재 몇 안되는 회사만이 허가를 신청한 상태일 정도로 결정과 집행이 뒤지기로 악명이 높다. 그나마도 도쿄 증권시장에 상장되는데 평균 30년이 걸리기 때문에 스톡옵션은 어차피 별로 대단한 인센티브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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