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니콜라스 시라디/강경이 역] 운명의 날(2008)

독서일기/유럽

by 태즈매니언 2016. 9. 13. 13:34

본문

 

 

하필 경주에서 우리나라 관측사상 최고치의 지진이 발생한 날인 어제 내가 읽고 있던 책이다. 볼테르의 <깡디드>를 읽을 때는 리스본 대지진이 당시 서유럽 세계에서 어떤 정도의 사건인지 몰랐었는데 우리 시대의 9.11을 찜쪄먹는 사건이었구나.

 

대지진 자체에 대한 내용보다 대항해시대 포르두갈의 심장이었던 리스본의 몰락을 초래한 요인들, 융성기를 지나 몰락의 길에 접어든 나라의 풍경, 그리고 이를 역진시키고자 했던 한 개인의 노력이 더 흥미로웠다.

 

다만 번역판의 표지 문구처럼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은 내용과 맞지 않다. 당시 리스본은 이미 유럽의 변방이었고, 브라질의 물산으로 명맥을 잇고 영국상인이 활동하던 '남부런던' 정도였으니 기껏해야 이베리아 서쪽의 바르셀로나 정도가 아니었을까?

 

에스파냐와 함께 로마카톨릭의 감추고 싶은 흑역사인 포르두칼 종교재판소 건물이 1755년 11월 1일 화창한 만성절 아침 지진으로 무너지고 재판소장과 고문관들도 매몰되어 죽은 건  고소했다.(만악의 근원이라는 금화를 주조하는 주조소는 멀쩡~) 하지만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발언 등을 보니 학살과 광신으로는 도긴개긴이었던 신교도들의 폄하가 지나쳤다. 이런 걸 보면  리스본 대지진을 통해서  근대적 도시계획과 자연과학적 지진연구에 대한 공감대가 발아했다고 보기는 무리인듯 싶다.

 

대지진으로 파괴된 리스본을 재건한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이름 참 길다. -_-;) 후작, 약칭 '카르발류 후작'이란 매력적인 인물을 발견한 것도 하나의 수확. 아래 34페이지에서 인용한 대지진 직후의 혼란 때 주제 1세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이 책을 다 보고나서 휴일 아침에 느긋하게 <임진왜란 1592> 세 편을 몰아왔더니 기분이 좀 묘하다. 1543년 포르투갈의 사인 페르낭 멘데스 핀투가 가고시마의 소영주 다네가시마에게 세 정의 조총과 제작설비를 8천냥에 팔았던 상거래행위의 나비효과가 동아시아 삼국전쟁의 발화선이 되었으니..

 

그동안 리스본은 <리스본행 마지막 열차>에서 봤던 리스본 항구의 풍경과 책 덕후의 성지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베르트랑 서점때문에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니콜라스 시라디의 이 책 <운명의 날> 덕분에, 카르발류 후작이 재건한 도시계획의 성과인 바이샤지구 코메르시유 광장의 주제 1세 청동기마상과 후작의 부조를 보면서 리스본 대지진을 떠올려보는 것도 언제가 될지 모를 리스본 여행의 해야할 일 목록에 추가해본다.

 

----------------------------------------------------------

 

34쪽

 

왕이 물었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이 형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97쪽

 

노예무역은 사람들의 탐욕과 교회의 공식적 허가가 맞아떨어지면서 곧 전성기를 맞았다. 노예무역에 가장 큰 힘을 실어준 것은 교황 니콜라스 5세가 1455년에 내린 교서 로마누스 폰티펙스였다. 이 교서는 '회교도를 비롯한 모든 이교도와 그리스도의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든지 간에 그들의 왕국과 공국, 자치령, 소유지를 침략하고, 약탈하고, 가로채거나, 점령할 수 있는 권한뿐만 아니라 이교도와 그 가족을 영원히 노예로 만들고 그 모든 재산을 정복자와 후손의 소유로 만들고 이용하고 착취할' 권리를 정식으로 승인했다.

 

224쪽

 

식민지가 없다면 포르투칼은 기껏해야 삼류 국가에 불과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리스본을 여행한 프랑스 여행가 슈발리에 데 쿠르띠유도 이 점을 꼬집어 이렇게 논평했다. 

"포르투갈은 왕국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공국에 가깝다. 포르투갈 왕은 유럽 땅에 거주하는 인도 제도의 세력가일 뿐이다. 브라질의 리두데자네이루와 바이야, 인도의 고아, 아프리카의 마데이라, 유럽의 아조레스 군도를 포함하여 신대륙에 방대한 땅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럴 듯한 세력가로 인정받으며 유럽의 해상세력 중 하나로 꼽히게 된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