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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퐁/이충호 역] 생존의 한계(2012)

독서일기/의학

by 태즈매니언 2018. 5. 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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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번기의 일꾼처럼 정신없이 2주일을 보내면서 책 한 권 못 읽었다. 나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크고 바쁜 직업에 종사하시면서도 책을 놓지 않는 분이 존경스럽다.

 

그래도 부끄러움만 겨우 면할 수 있는 글들을 납품한 덕분에 이렇게 휴일 아침 인류의 풍성한 지식의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올해의 책 후보작까지는 아니지만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알찬 책이다. 어려운 의학과 생물학, 물리학의 용어와 설명들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비유하는 저자의 실력에 어려번 탄복했다.

 

저자 케빈 퐁은 학부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했다가 의학을 전공하여 NASA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등 극한 상황의 생리학을 연구하는 의학 박사이자 마취와 집중치료 전문가라고 한다.

 

정말 괜찮은 책인데 편집이 유일하게 아쉽다. 전체 9개의 챕터 중 처음부터 100페이지가량까지 나오는 3개 챕터가 책에서 제일 임팩트가 약한 내용이라 보다가 던져버리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차라리 이국종 교수님으로 연상되는 '응급의학과 외상치료'에 대한 챕터4와 '집중 치료와 생명 유지 장치'를 다루는 챕터5가 맨 앞으로 왔으면 흡입력이 있었을텐데. '저체온 생리학'을 다루는 챕터1은 끝에서 두 번째나 행성간 비행관련 우주의학 앞에 위치시키지. (그러니 이 책을 집어들고 108페이지부터 보시는 걸 추천한다.)

 

챕터4 '응급 의학과 외상 치료'는 내가 이국종 교수님과 응급외상센터의 역할, 닥터 헬기의 필요성 등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응급외상의학이 시작된 배경과 핵심적인 미션에 대해 알려줬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챕터5와 '화상과 피부이식'을 다룬 쳅터6였다. 흔히 '소아마비'라고 불리는 질환이 자기복제 능력이 없는 신경세포의 세포체를 파괴하는 폴리오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벌어지는 회식질척수염으로 운동신경을 파괴하는 메커니즘이었구나. 인체의 면역 메커니즘이 폴리오바이러스와 전투를 벌이는 동안 호흡과 삼키는 행위를 하는 수의근육을 담당하는 장수인 신경세포가 전사한 상황에서 대체할 지휘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 기관지삽관을 통한 인공호흡법이더라.

 

그리고 사향고양이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되어 중국 남부에서 발생하였으나 홍콩을 통해 대규모로 전파된 SARS에 맞서서 당시 발병 원인도 몰랐던 이 전염병에 맞서 봉쇄와 병원균 확인을 통해 WHO에 심각성을 보고했던 의사 카를로 우르바니의 영웅적인 분투(심지어 그는 방콕에서 휴가를 보내러 가는 길에 하노이의 병원에 들렀다가 특이한 호흡기 환자를 발견혔을 뿐이었다.)를 통해 항공운송이 보편화된 시대에 역학와 공중보건의,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적인 생명유지를 위해 헌신하는 집중치료실 의료진들의 역할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

 

'집중치료'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 달리 그 치료의 목적은 인간의 생리적 기능이 생존 가능한 한계를 넘어서서까지 오래 버티도록 의학적으로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환자를 충분히 오래 살아남게 하다 보면, 뭔가 호전의 계기가 생기길 기대하는 것이었구나.

 

'화상과 피부이식'을 다룬 챕터6은 이 책에서 가장 큰 감동을 준 부분이었다. 난 피부는 그저 외부 세계에 대한 수동적 장벽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고, 성형외과의학이라고는 막장 성인 미국드라마 <NIP TUCK>으로 밖에 접한 적이 없었다.

 

피부(특히 진피층)이 담당하고 있는 중대한 역할에 대한 저자의 자세한 설명을 읽고나니 대부분의 사회가 특수화상 치료에 들이는 비용과 피부미용 및 화장산업의 규모를 대조해보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닙턱에서도 에피소드로 나왔던 기억이 나긴 한다.)

 

의학도 건축이나 토목공학과 비슷해서, 보다 다양한 물성의 재료들을 발견하여 선택지는 늘어나지만 결국 자재비용과 시공비용, 시공난이도와 구조적인 안정성 등을 고려하여 신공법이 쉽게 도입되지 않은 신뢰성을 중시하는 영역인 듯 싶고.

 

책 표지와 함께 추가한 사진들 중 앞의 사진은 피부이식 분야의 개척자였던 영국의 의사 아치볼드 매킨도가 화상을 입은 조종사들을 치료했던 욕조치료시설이다. 작은 화상도 거즈를 떼어내거나 수건으로 물을 닦을 때 쓰린데 스스로를 '기니 피그 클럽'으로 불렀던 이 조종사들은 선구자 매킨도를 만난 덕분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블랙 유머 속에는 수십 개월 동안 수십 번의 수술을 받으며 피부의 수용기가 내뿜는 통각을 견뎌야 했던 환자들의 쓰라림이 담겨있다.

(몰랐는데 항공유가 탈 때 무려 1,000도가 넘는다고 한다. 제로센같은 경우는 특히 연료탱크 장갑이 취약했다고 하는데 왜 당시 군조종사 중에 화상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된다.)

 

세번째 사진은 고압전기 감전사고로 얼굴전체에 화상을 입었던 텍사스 사나이 댈러스 윈스의 성형수술 전 모습과 얼굴이식을 받은 후의 모습이다.

 

2009년 미국성형외과의학회 회의에서 '얼굴을 잃은 남자' 댈러스 원스에 대해 알게 된 성형외과의사 보흐단 포마하츠는 2011년 사랑하는 사람이 뇌사자가 된 상황인 가족들에게 심장이나 간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기증하는데 동의해달라고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치료 중 가족을 잃고 의사를 살인자 취급하는 환자의 친지나 이대 목동병원 의사들을 비난하는 시민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 당신 자신 혹은 뇌사한 가족의 얼굴을 벗겨줄 수 있는가?)

 

포마하츠가 얼굴이식수술을 승인받는 과정과 얼굴 적출 및 수송절차, 21시간에 걸친 수술과정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수술의 결과가 세번째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선글래스를 쓴 남자의 사진이다.

 

아무리 이미 시력을 잃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지만, 자신이 어느 공간에 들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대화가 끊기고, 신음소리가 들리는 상황을 겪으며, 네 살 난 딸이 뺨에 해주는 키스를 느낄 수 없었던 아빠에게 포마하츠와 현대의학이 얼마나 큰 선물을 했는지 보라.

 

(길어서 미안하다.ㅠ.ㅠ) 챕터7은 저자의 주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우주의학을 다루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우주로부터의 귀환>이나 앤디 위어의 <마션>에서 흥미있어했던 이야기들을 전문적으로 그러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줘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이 내용에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이소연에 대한 이야기가 꽤 나온다. 슬프게도 그동안 언론에서 우주비행사 이소연에 대한 보도들에게 한 번도 듣도보도 못한 내용들이었다.

 

과학잡지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개인의 신상털이 대신에 우주비행사의 선발절차와 교육훈련 프로그램 과정에 대한 정보들을 전달해줬으면 이 책처럼 훨씬 흥미진진할텐데.(클릭 수가 잘나올거라고는 못하겠지만 ㅠ.ㅠ) 우주비행사 이소연은 후속사업의 종료와 처우 문제 외에도 어찌면 1886년 미국에 가서 브루클린 브리지를 보고 돌아온 보빙사들처럼 대화하기 힘든 막막함 때문에 미국으로의 이민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이해가는 선택이고.

 

챕터8의 행성간 우주비행시 요구되는 조건들과 챕터9의 노화의학에 대한 내용들은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분량의 문제가 있다보니 맛보기 느낌이라 이를 별도로 다룬 책으로 더 접해보고 싶다.(내가 늙기 전에 노화의학이 최대한 발달하길 ㅎㅎ)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인체의 탐험과 의학의 세계에서 지난 100년 동안 일어난 변화를 다룬 출발점에 가깝지만 의학이 오늘 아 자리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큰 그림과 충분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저자가 알려주는 참고문헌들이 다 꿀잼일 것 같은데 국내에 번역되지 않는 이상 접하긴 어려울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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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쪽

 

마취가 초래하는 무의식 상태는 잠과는 다소 다르다. 이것은 비행 중에 자동 조종 장치를 해제하고, 수동 조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악천후를 만났을 때 비행기를 무사히 운행하기 위해 기장이 직접 조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취사는 수술과 부상과 질병이 제기하는 위험을 무사히 헤쳐나가기 위해 환자의 생리를 제어해야 한다.

 

172쪽

 

전염병과 세계적 범유행병에 맞서는 싸움은 첨단 의학의 개입이 아니라 공중 보건 조치를 통해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집중치료실의 노력은 그저 제스처에 불과한 것으로, 비유하자면 대화재가 온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고작 덤불의 불을 끄려고 애쓰는 상징적 싸움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략) 치명적인 질병 앞에서 그토록 작은 이득을 얻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는 집중 치료 의학의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집중치료가 결코 헛된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다. 사스가 유행할 때 집중 치료실로 실려온 중환자 4명 중 3명은 살아남았다. 집중 치료실에서 인공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더라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191쪽

 

뜨거운 차가 담긴 찻잔의 온도가 섭씨 42도라면, 여러분은 그 찻잔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수 있다.이것은 여러분의 정상적인 심부 체온보다 불과 섭씨 5도 높을 뿐이다.정말로 변변찮아 보이지만, 거기까지가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한계이다. 여러분에게 뜨거운 컵을 놓게 만드는 감각 뒤에는 똑똑한 수용기가 있다. 얼마나 뜨거운가에 따라 통로를 열지 닫을지 조절하고 열감각을 통증으로 바꾸는, 이온 통로에 죽 붙어 있는 단백질들이 바로 그 수용기이다.
(안그러면 단백질 변성온도에 달해서 체세포가 죽어버릴테니 ㅎㅎ)

 

228쪽

 

여압실이 없는 상태에서는 더 높이 올라갈수록 들이마시는 공기 중의 산소 농도가 더 높아야 한다.하지만 고도가 1만2,000미터를 넘어서면, 순수한 산소로도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이 고도에서는 기압이 해수면 높이에 비해 5분의 1로 떨어진다. 여기서는 산소의 압력이 충분하지 못해 폐포 막을 통과하지 못하므로 헤모글로빈 분자와 결합할 수 없다.
(중략)
1만 8,900미터를 넘어서면 암스트롱 한계를 만나게 된다. 암스트롱 한계는 몸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고도에 해당한다. 압력이 낮아지면 액체의 끓는 점이 낮아진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서는 물이 섭씨 70도를 조금 넘는 온도에서 끓는다. 그리고 1만8,900미터에서는 물의 끓는 점이 인간의 정상적인 심부체온인 섭씨 37도까지 떨어진다.

 

252쪽

 

우리는 심부 체온이 불과 1~2도만 올라가도 생리적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 만약 3도 이상 올라가면 열사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 여기서 유인 우주선 설계자들이 봉착한 문제는 섭씨 3,000도에 이르는 고열에 맞서는 고열 차단막을 만들고, 세 우주 비행사가 들어갈 그 뒤의 작은 캠슐과 생명 유지 장치를 25도가 넘지 않도록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280쪽

 

지금까지 우주여행에 나선 사람은 약 500명인데, 그 중 200일 이상 우주에 체류한 사람은 10명이고, 1년 이상 체류한 사람은 단 2명뿐이다.

 

296쪽

 

외상 호출은 비록 영웅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축구 경기에 비유한다면 골라인 부근에서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것과 같았다. 몇 초 안에 급박하게 플레이를 펼쳐야 하지만, 실수를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실수를 만회할 가능성이 있었다.

 

노인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체스 게임을 하는 것에 더 가깝다. 한 수만 삐끗하더라도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들은 천천히 그리고 작은 움직임으로 일어난다. 때로는 폰 하나의 전진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후퇴도 받아들여야 하며, 심지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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