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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병] 서울을 바꾼 교통정책 이야기(2014)

독서일기/교통

by 태즈매니언 2017. 1. 2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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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게 업무용 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테니 평소대로라면 서평을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다 많은 대도시 주민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추천하고 싶어 적어보려 합니다.


제 자신도 공공기관에 소속되어서 월급을 받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민간경쟁에 맡기면 효율적인 부분을 행정부와 공공기관들이 법령이나 행정규칙을 통해 촘촘하게 엮어낸 권한들로 틀어쥐고 있는 경향에 비판적입니다. 그래서 공공규제 이야기가 나오면 그로 인해 야기되는 자원배분의 비효율이나 누가 밥그릇 두드리는지부터 관심이 가고요. 고도화된 사회구조를 볼 때 저를 포함해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인적 구성원들의 평균적인 능력이나 제약조건, 인센티브 구조상 공공이 사업을 주도하게 하는 것도 비판적이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무원(공공기관은 제 얼굴에 금칠하기라 제외하렵니다. ㅎㅎ)을 아무런 부가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는 존재로 매도하는 것도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 최순실 특검수사와 관련하여 문체부 공무원들이 줄줄이 수사받고 있지만 공무원이 영혼이 없는 존재도 아니고요.


저는 이런 확신을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얻었습니다. 공직 생활 내내 도시계획 업무에 천착해온 서울시 공무원 출신의 손정목 교수님께서 쓰신 책이죠.(이 책도 추천합니다.) 손교수님께서 담담히 풀어놓는 소회를 통해 서울시를 무수한 난제들을 극복하며 지금도 치안과 기반시설도 괜찮고 재정도 튼실한 세계적 대도시로 만드는데 공무원들이 어떤 역할들을 해왔는지 확인했는데 숨은 영웅들이 참 많더군요.


특히 서울시 공무원이라는 중간적인 지위가 주는 장점이 많습니다. 일단 직접 시민들에게 정책효과가 바로 체감되는 사업이 많지요. 국가사무에 비견할만큼 스케일이 큰 사무를 기획해볼 수 있으면서 입안한 정책의 성과를 당장 확인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도 있고요.


중앙부처의 국가사무는 항공모함의 조타처럼 관계부처 협의나 청와대 및 국회와의 조율이 필요한 일들이 많아 같은 과장이더라도 일하는 맛(?)은 좀 떨어질 것 같습니다.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광역지자체나 기초지자체는 자체사업예산 규모나 인력과 조직의 한계때문에 지자체교부금이라는 천수답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또 매칭펀드 정책때문에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기에 어려움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교통분야에도 서울시 공무원으로 오래 재직하셨던 분께서 쓰신 책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웬걸, 이미 2014년에 이 책이 나왔는데 이 년 넘게 모르고 있었더라구요.


이 책에서 다루는 민자철도사업 재구조화, 후불교통카드 도입, 버스 도착정보 안내시스템 구축, 택시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 공영주차장 유료화, 차고지 증명제 등등의 개별 케이스들은 저한테는 하나하나가 보물단지같았습니다. 저자께서 법학 박사 학위도 취득하신 분이시다보니 법률용어사용도 정갈하셔서 읽기 편했고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의 가장 빼어난 미덕이 주무부서 과장(공무원하고 일할 일이 없으신 분들은 과장의 막강한 파워를 잘 모르시는데, 법원의 부장판사가 회사 부장님이 아닌 것처럼 사이어인들 사이의 초사이어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ㅎㅎ), 국장, 본부장들이 어떻게 정책을 입안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점이라고 느꼈습니다. 잘 모르지만 고위공무원들이 교육받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커리큘럼이 이런 내용들이 아닐까 싶더군요.


주무과장으로서 사무관과 주무관님들 몇몇 분과 함께 직속상관의 지원을 받아 협회 등 사업자단체(교통분야는 조합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골치아프죠), 해당사업분야 산별노조 또는 노동자단체(개인사업자들인 경우는 창구가 없으니 더 어렵죠), 용역 또는 시범사업 업체, 교수 및 전문가집단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또는 자문위원회, 대체관계인 이익단체 등을 상대해야 하는데 언론사, 시의회, 구청장, 유관 중앙부처(국토교통부나 행자부 외청인 경찰청 등), 시민단체, 감사원, 시장(및 정무라인) 등 중간에 조율해야 하는 곳들이 참 많구나 싶더군요. 영화감독 일처럼 보였습니다.


보통 공무원들이 사무관부터 독자적으로 정책 기획과 입안을 할 권한을 가지는데 이게 막상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본인도 알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되고요.


물론 저자 윤준병님처럼 유능한 행시출신이 젊었을 때부터 바로 정책기획을 경험해서 행정의 달인이 되면 최상의 결과지만 이런 능력을 누구나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경험을 쌓는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 발표된 민주당 공약에 찬성합니다. 행시로 5급 사무관을 채용하기보다는 선관위처럼 7급과 9급 공채로만 채용하고 그 중 실무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빠르게 승진시키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골품제를 타파해야 똑똑한 비고시 출신들이 최치원처럼 되지 않을테니.


기회가 닿으시면 이 책을 통해 공무원의 현명한 정책 결정으로 창출되는 사회적 효용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 직속으로 있다보니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공공기관에 퇴직자 낙하산 심는 일은 열심이죠) 감사원의 감사업무 태도에 대한 비판도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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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쪽


단순히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수준의 공부가 아니라 대학 졸업 후 20년이 지난 시점이므로 제대로 법학 지식을 재충전하는 수준의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근처 서점에 가서 사법시험용 6개 법학 과목의 교과서를 전부 구매해서 다음 날부터 고시 공부를 하듯이 공부를 시작했다. 아침 10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식사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법학 도서를 읽었다.

(시장 교체로 인해 좌천되었던 시절을 이렇게 보내셨다니 고위공무원 한직의 한가함과 절치부심의 의지와 성실함이 겹쳐보여 웃픈 구절이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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