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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게이틀리/박중서 역] 출퇴근의 역사(2016)

독서일기/교통

by 태즈매니언 2017. 2. 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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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의 역사(원제는 Rush Hour)>의 저자 이언 게이틀리(Iain Gately)는 홍콩 태생으로 케임브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하신 분인데 다른 쓰신 책이 <담배와 문명>, <음주:알코올의 문화사>네요.(왠지 오탱 형이 생각나네요.) 제임스 워드가 쓴 <문구의 모험>처럼 지난 수백년 동안 우리네 일상에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필수적이었던 분야에 대해 풍부한 지식의 좌판을 펼친 것 같은 책입니다. 최근들어 근본적인 변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라는 점도 같지요.


제1부 '통근의 탄생, 성장, 승리'는 저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출퇴근이 탄생한 시기부터 현재까지 개인들이 일터와 쉼터를 분리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원거리를 출퇴근하는 행위의 역사에 대한 요약입니다. 제2부 '지옥철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현재의 통근에 대한 이야기이고, 마지막 제3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는 근미래의 통근에 대한 여러 관점과 예견들을 소개하면서 나름의 예측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저자 자신도 햄프셔에서 런던까지 하루에 왕복 4시간 이상을 통근에 할애하고 있으면서도 통근 예찬론자에 가깝다는 사실이 재미있더군요. 직장에서의 근력소모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큰 편이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뭐 그래도 통근이라는 행위가 평균적으로 도시인들의 24시간 중 상당한 기간을 차지하고, 통근에 소요되는 시간 전후에도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물론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가볍게 읽어볼 가치가 있었습니다. 일단 교외(suburb)란 표현도 통근으로 인해 생겼으니까요.


저자는 최초의 통근을 철도가 개통된 1833년 개통 당일 스톡턴-달링턴 철도의 기관차가 이끄는 21량의 석탄화차에 붙은 'Experiment(실험)'이란 이름의 객차가 매년 20만 명의 승객을 실어나른 것으로 보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당시 벌크화물의 주된 운반수단으로 쓰이던 운하 운영업체들의 과도한 이용료 요구와 여름의 가뭄이나 겨울의 결빙으로 인한 화물운송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치했던 철도에서 몰랐던 잠재력을 발견한 것이죠.


건설 및 토목 업계에서 회사의 신뢰도를 상징하는 시공실적을 왜 Track Record라고 부르는지 몰랐는데 이 책을 보니 1846년 한 해에만 영국 내에서 1만 5천 킬로미터의 철도건설 사업제안이 의회를 통과되었을 정도의 철도 광풍 시대에 사업 시행자들의 '선로 건설 기록'에서 유래했더군요. ㅎㅎ

또, 철도의 정기권 제도가 사전 구매자들에게 휴가철 내내 할인 혜택을 제공하던 영국 해안지대의 증기선 운영자들을 모방했다고 합니다.


지금 철도는 안전의 대명사이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철도는 정말 위험한 탈 것이어서 매표소에서 승차권뿐만 아니라 Railway Passengers' Assurance Company라는 보험회사의 생명보험 상품도 함께 판매했다고 하네요.


철도로 인해 표준 시간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시계산업이 발달하고 손목시계가 널리 퍼진 것은 많이들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마을마다 자기 교회 종소리로 알 수 있는 고유의 시간으로 살던 사람들이 철도로 인해 1분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되었을테니.


철도 통근시 통근자들 사이의 '침묵의 규약'이 관습으로 형성되면서 열차 내에서 소비되는 책과 신문의 범람과 이로 인한 문맹률의 하락을 불러왔다고 하는데 비싼 운임과 정기권 비용을 낼만한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이었으니 그런 것 아닐까 싶어서 갸우뚱 했습니다.


미국과 달리 영국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당시엔 '동력 수레' 수준의 개념이었죠.)의 도입이 늦었던 이유를 1865년에 제정된 도로상기관차법에서 기계식 차량이 공용 도로에서 운행할 경우 사람 한 명이 60보 앞에서 걸어가면서 붉은 깃발을 흔들고 나팔을 불어야 하며, 차량 속도는 교외에서는 시속 6km, 도시에서는 시속 3km를 넘을 수가 없고, 그런 차량을 운전 및 조종하려면 최소한 세 명 이상을 고용해야 한다고 규제하고 있었던 영향도 있다고 하는데 법이 기술발전을 가로막았던 좋은 사례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무절제한 자동차 열풍을 비판하는 말들도 많지만 당시 19세기말 축력(말)에 의존한 교통에 기반한 대도시의 끔찍한 상황을 보면 그리 쉽게 비판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1989년 뉴욕에서 열린 국제도시계획학회의 최우선 의제가 말로 인한 공해 해결이었을까요? 농부들이 추수기에 바쁘다보니 말똥을 수거해가지 않을 경우에 공터에 말똥이 20미터 높이로 쌓였을 지경이었으니 그 악취와 침출수, 세균오염 등은 오죽했을까 싶네요.


모델 T를 만든 헨리 포드가 '이 도시는 죽을 운명이다. 우리는 도시를 떠남으로써 도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선언하고 디트로이트로부터 15km 떨어진 곳에 2천에이커의 부지를 확보하는 등 '교외'라는 개념을 통찰했다는 것도 신기하더군요.


최초의 교통 신호등은 존 피크 나이트란 사람이 고안해서 1868년 런던의 한 교차로에 설치된 것이라고 합니다. 붉은 색과 초록 색의 가스등을 이용해서 정지 신호와 출발 신호를 보내는 장치였는데 설치 한 달만에 폭발해버렸다고 하네요.


사랑스러운 디자인의 베스파(Vespa:말벌)는 1946년 엔리코 피아조에 의해 로마 골프 클럽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초반 중국과 수교를 했을 때 베이징의 넓은 도로를 가득 채운 똑같은 색깔과 모양의 자전거 물결이 엄청 신기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옷도 비슷한 인민복을 입은 사람들이라 더 강렬했었죠. 기어가 하나 뿐이고, 핸들은 비치크루저 스타일로 휘어있으며, 원시적인 브레이크(1932년에 생산된 자전거 모델을 본뜬)였던 이 자전거는 무려 5억대 이상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달용이라는 선입견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되지는 못하지만 정말 편리하고 고장안나는 혼다의 자랑 C100 오토바이(대림혼다의 citi100이 혼다 오토바이의 라이센스 버전이죠. 이걸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한 젊은이도 있는데 고장 한번 안났다고 하더군요.)도 과거의 노새처럼 볼품없다고 여겨져서 주목받지 못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통수단입니다.


개인적으로 왜 자전거전용도로를 붉은 색으로 칠하는지 몰라 궁금했는데 의문을 해결했습니다. 항공에서 '활주로 지연'을 tarmac delay라고 하는데 'tarmac'의 원뜻은 '쇄석과 타르를 섞어 굳힌 포장재료'를 뜻하더군요. 1970년 영국 버킹엄셔주의 도시인 밀턴 케이스의 도시기본계획에 따라 최초로 설치된 자전거 도로가 tarmac으로 포장해서 붉은길(Redway)'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휴우 1부에서 인상깊었던 내용들을 정리하는 것도 이렇게 길다니. 말씀드렸던 것처럼 2부는 현재의 통근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치한들의 성추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성 전용 객차(이름이 '꽃의 열차')가 1912년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니 생각보다 빠르네요.


뭄바이의 통근 노선인 뭄바이 교외철도는 1953년 영국이 인도대륙철도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건설한 철도인데 지금도 매일 사망자가 10명씩 나오고, 지난 10년 동안 사망자가 3만 6천명이라는데 이 숫자가 너무 아득해서 현실로 와닿지가 않네요. 우리나라에서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대략 4천명 정도인데...


자동차 통근자들에게 도로 정체는 열차나 버스 통근자들이 겪는 승객 욱여넣기(이게 표준어였군요.)와 같은 느낌이죠. 출퇴근길 정체에 시달리는 통근자들을 칭하는 Road Rage로 인해 이름을 떨친 러시 림보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들이 좋더군요. '도로를 따라 똑같은 방향으로, 속도 제한을 준수하고 맘대로 멈출 수도 없는 제약으로 인해 긴장은 가중되고', '공식적인 의사소통용 몸짓 언어를 갖고있지 않은 제약(비상깜빡이를 빼고요.)', '서로 마주볼 수 없고 상대방의 꽁무니만을 보게되는 비대면 상황의 지속', '운전자가 욕을 하고 소지를 질러도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무기력감' 등의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설명들이 유용했습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는 운전 중 예의범절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청정지대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이죠. 기리야마 본진의 신상목 사장님께서 일본 거주 시절에 경험한 일본인들의 운전습관에 대한 글을 봤는데 일본의 운전자들이 운전석의 선(禪) 수행자처럼 보였고, 예의범절을 교환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처럼 존경스럽더군요.


호주의 Perth 시에서는 30분 내외의 여행 시간에 맞춰 대중교통을 재편했고, 그 결과로 근린 조성과 보행자 친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Neo-Uranism의 전형으로 꼽힌다고 하는데 BRT와 자전거를 활용해서 도시 중심 어디에서도 대중교통과 도보로 30분 이내에 행정중심복합도시 어느 곳이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세종시도 비슷한 지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한창 건설 중인 도시인 관계로 평가는 하지 않겠습니다. ㅠ.ㅠ)


통근자들의 소비성향이 휴대성, 소형화, 연결성을 추구하는 신제품들의 개발이라는 혁신을 촉진했다는 저자의 분석도 일리가 있더군요. 저는 최초의 상업용 휴대전화 서비스가 고속철도에 처음 도입되었는지도 몰랐거든요.


그리고 산업혁명 이전 영국의 상류층과 중산층에게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시간이 아닌 사교의 기회였기 때문에 아침을 먹고 나와 저녁 식사 전까지 따로 식사를 하는 문화가 없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소위 신사들은 침묵과 고독 속에서 음식을 집어삼키는 것을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차라리 굶었다고 합니다. 뭐 결국은 lunch가 슬금슬금 일상으로 들어왔지만요.


헥헥 쓰는 것도 힘드네요. 이언 게이틀리는 마지막 3부에서는 통근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구 선진국들이 인도와 같은 해외로 전화상담 등의 업무를 아웃소싱하면서 자국 내 통근수요는 줄게 되지만 오히려 새로 들어선 전화상담센터 주변의 도로 정체는 증가하게 되는 점을 비꼬고, 정부가 아무리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권장하더라도 고용된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집에 일하다보면 고용주가 언젠가는 다른 어딘가의 누군가가 더 적은 월급을 받고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지 않을까 두려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터로 출근해 능력 뿐이 아니라 얼굴도 보여주고, 정수기 앞에서 서로의 아이 이름까지 묻고 답하는 잡담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게 유리하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수긍이 가더군요. 내 업무의 아웃소싱을 방지하기 위한 특효약이 통근인 셈이죠.


IT업체의 경우 구글버스와 같이 통근수단을 제공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원격 근로의 아킬레스 건인 자료 보안의 문제때문이라는 점은 미처 몰랐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것이 연료를 아끼고 매연을 덜 배출할지는 몰라도 이로 인해 IT분야에 추가로 투입되어야 하는 에너지와의 비교도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현재 IT업계가 전세게 전기의 10%나 사용하고 있다네요. 저자는 원격 근무시 보안 및 버퍼 유지로 인해 일반적인 서버 데이터보다 많은 용량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또한 저자는 싱클레어의 C5나 세그웨이, 외바퀴 전기스쿠너 라이너 등 대안적인 퍼스널 교통수단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자동차를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마이크로 모빌리티들이 장애인 보조용 의자차나 브롬톤 자전거의 영역을 빼앗아올 수 있을지 의문이고요. 이는 기술적이거나 편의성 부분의 문제가 아닌 인도와 차도 구분과 같은 법적이고 관습적인 부분의 제약때문일 겁니다.


저자는 통근으로 인해 현대인들이 겪고있는 이런 고난들을 열거하고 있고, 통근시간의 증가를 삶의 질이 저하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국제기구의 판단기준도 소개하지만 통근자들은 불행한 사람이고 통근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한 개념이 1939년 뉴욕의 세계박람회에서 GM의 후원으로 설치한 1960년대의 미국에 대한 상상 모형에 등장했었고, 앨런 머스크의 하이퍼루프를 가동시키는 진공 튜브 열차와 유사한 공기 압축식 철도가 이미 1847년에 건설되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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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쪽


처음에는 철도 회사마다 운행 시간표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시간이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대부분의 회사들이 1840년 11월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가 도입한 '철도 표준시간(GMT:Greenwich Mean Time)'을 채택하게 되었다.


82쪽


'통근하다(commute)'라는 단어는 패터슨-허드슨강 철도에서 유래했다. 1843년에 승객 가운데 일정 기간 동안의 승차 요금을 미리 '일괄 지불(commute)'하고 싶은 사람, 즉 할인을 조건으로 정기권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회사의 대리인과 만나 약정서를 작성"하라는 권유가 있었던 것이다.


145쪽


최초의 상업용 자동차 라디오는 1930년에 Galvin Corporation이 개발한 Motorola 제품이었으며, 나중에는 이 상표명이 회사 이름이 되었다.


245쪽


SUV 판매량이 급증한 원인으로 미국 남성들의 남성성 회복과 군용 장비에 대한 애호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일반 승용차보다 월등히 큰 크기에 있었다. 사람들은 더 큰 차량을 보면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큰 차량에 탄 사람은 스트레스가 덜하다. SUV는 바로 이런 위협의 인식에 맞춰서 진화했으며, 그 어떤 도전에도 끄떡없는 능력을 강조하는 광고의 지원을 받았다.


284쪽


최초의 상업용 휴대전화 서비스는 1969년 뉴욕과 워싱텅 DC를 오가는 고속철도 메트로라이너 열차에 처음 도입되었다.


316쪽


통근자들이 마주하는 모든 표지판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거기에 적힌 내용은 단계적 공개의 원칙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중략) 정보는 반드시 알 필요가 있을 때 중져야 한다. 선택지가 너무 많을 경우 군중이 얼어붙게 되고, 런던 지하철의 통로 내에 막힘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396쪽


사우스 데번 철도회사는 1847년 전설적인 공학자 킹덤 브루넬이 설계한 공기 압축식 철도 구간을 건설했으며, 조용하고 매연이 없는 대기 속에서 최대 시속 110km의 속도로 엑서터에서 뉴턴 애벗까지 승객을 실어 날랐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쥐들이 가죽 풀무를 갉아서 구멍을 내고 금속제 설비가 바닷바람에 부식되면서, 겨우 이듬해에 가동이 중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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