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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레빈슨/이경식 역] 더 박스(2016)

독서일기/교통

by 태즈매니언 2017. 12. 1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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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겸 저널리스트 마크 레빈슨의 역작. 빌 게이츠가 2013년에 올해의 책으로 뽑았단다. 초판의 번역이 떨어진다는 페친들의 조언을 듣고 2016년에 나온 개정증보판의 완역판을 빌려 봤다. 

"밋밋한 박스가 한국 경제의 변화를 부르다"라는 제목의 한국어판 서문은 재레드 다이아몬드나 폴 케네디처럼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담고 있어서 처음부터 호감이 간다. '컨테이너화'로 인해 세계 경제에서 한국의 지위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었다. 한국은 정말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았다. 백 페이지 가량인 저자 주와 참고문헌에 감탄했고.

다만 글로된 설명만 보고서는 컨테이너의 각 부위와 갑판과 부두 크레인의 운용방식에 대한 공학적인 내용들을 이해하기 힘들어서 그림이 좀 있었으면 좋았을 걸 싶더라. 

이 책을 보고서 1960년대 이후의 컨테이너항과 그 이전에 운영된 부두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국로이드선급협회가 집계한 세계 10대 컨테이너 항구 중 2위 싱가폴, 5위 홍콩, 6위 부산(올해의 수출호조로 2017년 기준으로는 홍콩을 밀어내고 5위 자리를 탈환할듯), 8위 칭따오 네 컨테이너 항의 위엄을 직접 봤고, 뉴욕 로어 맨해튼과 브루클린 섬에 있는 퇴락한 pier들을 거닐었으면서도 왜 난 부두노동자들이 일일이 파레트를 해체하던 시절과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ㅠ.ㅠ

'Brooks Brothers'가 왜 뉴욕에서 탄생했고, 왜 맨해튼이나 보스턴항등 항구마다 garment district가 있었는지 몰랐는데 제품의 가격 중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던 컨테이너 이전 시절의 제조업과 무역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컨테이너를 통해 하역이 자동화되기 이전, 나무 팔레트 위에 각양 각색의 짐들이 꾸려지고 이를 인력으로 일일이 해체해서 창고로, 트럭으로 옮기던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도 로더와 AKE 같은 컨테이너나 PMC팔레트를 사용하지만 Break down 자체는 그 시절과 별로 변한 것이 없는 항공화물 터미널에서 일하는 지상조업 직원들과 검수(Checker)들의 작업방식이 연상되어 묘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항공사들이 항공화물 시장에서 항상 고민하는 문제가 아웃바운드(수출)과 인바운드(수입)물량의 현격한 격차(그나마 연중 몇달은 워싱턴 체리 실어와서 해결한다지만)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일주 노선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아이디어가 해운에서 먼저 시도된 것인지도 몰랐다.

제5장 <뉴욕항에서의 전쟁>과 제6장 <노동조합의 투쟁>에는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를 못하더라도 몸만 튼튼하고 아버지나 삼촌이 부두노동자였으면 부두노동자로 일해서 괜찮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자본집약적인 크레인시설과 컨테이너로 대체되어 가는 과정과 그에 대한 노동조합의 저항이 나온다. 최근 차량공유와 자가용 유상운송앱의 물결 속에서 저항하고 있는 택시산업과 어쩜 그리 비슷해보이는지.

제7장 <세계화를 연 표준 설정>에는 미국 해운업계 내부에서 시작된 컨테이너의 표준화가 트럭 및 철도 등 연계교통수단과의 협의를 거치고, 국제기구에서의 힘겨루기를 거쳐 표준화에 성공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데 국제표준 제정이 어떤 절차로 이뤄지는지 참고할만하다.

제10장 <폭풍 속의 항구들>에는 컨테이너화의 물결에 올라탔는지 여부에 따라 그 지위가 격심하게 변동하는 항구들을 다루고 있는데 네덜란드를 유럽연합의 관문으로 만든 원동력인 로테르담 항구가 1940년 독일군의 공습으로 항구가 완전히 파괴된 덕분에 현대적인 컨테이너항을 건설하여 한 때 세계 최고의 항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었다. 

한진해운 파산 때 봤던 해운산업의 특성에 대한 기사들을 보고 이해한 단편적인 지식들이 이 책을 통해서 꿰맞춰지는 재미도 쏠쏠하다. 운송거리는 국제적인 공급망에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화물의 물량이 많을 수록, 그 항구를 경유하는 컨테이너선이나, 기차로 이동하는 컨테이너가 많을수록 컨테이너당 비용은 낮아지고 그 배후지에는 제조업이 발전하기 좋아지는 사실. 우리나라의 부산항과 해운사들이 1980년대에 시도했던 도전을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비엣남의 호치민시티, 오만의 샬랄라항, UAE의 두바이항이 벤치마크해서 유수의 항구로 거듭나고 있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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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쪽

1956년에 일반화물을 중간 크기의 화물선으로 운송할 때 드는 비용은 1톤당 5.83달러였다. 그런데 맥린 회사의 전문가들은 아이디얼엑스호에 컨테이너 방식으로 화물을 운송할 때는 1톤당 15.8센트 밖에 들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236쪽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에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자동화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기에 자국 내 완전 고용을 유지하는 일은 지금 1960년대에 우리 미국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292쪽

철도 회사들의 1마일당 총비용은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트레일러든 컨테이너든 일단 화차에 상차되면, 그 이후의 철도 운행 비용은 매우 쌌기 때문이다. 500마일(약 805km)이 넘는 거리에서는 피기백이 전통적인 트럭운송보다 확실히 쌌다.
- 한국의 철도화물이 만성적으로 적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 ㅠ.ㅠ

399쪽

운송료를 책정하는 해운사들의 행태는 철도 회사들의 모습과 매우 비슷했다. 화물 품목별로 운송료를 다르게 책정하거나, 두 개의 운송료를 책정할 때는 하나는 화물의 무게, 하나는 화물의 부피로 따졌다. 브레이크벌크 화물운송은 이럴 이유가 있었다. 어떤 화물은 다른 화물에 비해 선적이 매우 복잡하고 또 어떤 화물은 공간을 많이 차지했으므로, 운송료 책정 방식을 다르게 하는 것이 합리적 방법이었다. 그러나 컨테이너는 품목별로 운송료를 다르게 책정할 근거가 없었다.

479쪽

2014년에 세계에서 컨테이너를 가장 많이 처리했던 상위 20개 항구 중 11개 항구는 1990년에 컨테이너를 아예 처리하지 않았거나 처리했더라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또 어떤 항구는 그 시점에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아예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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