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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솔로브/이승훈 역]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2007)

독서일기/법률

by 태즈매니언 2018. 4. 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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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돌님이 추천한 프라이버시법 분야의 전문가 다니엘 솔로브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교수의 책. 2007년, SNS라는 용어도 없던 시절에 나온 책이다보니 오히려 인터넷 세상의 시조새 시절부터 있었던 연대기들을 되짚어 보기 좋았다.

진화인류학책을 통해 사람들이 뒷담화를 좋아하는 건 우리들이 소집단 내에서 프리라이더를 징죄하는데 성공해온 공동체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라는 걸 배웠지만, 무려 서울 지하철의 개똥녀 논란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을 모티브로 해서 시작된 이 책을 보면서 언급된 온갖 사례를 검색하고 싶어 혼났다.

다행히 책을 덮고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다. 검색의 유혹을 가장 참기 힘들었던 사례는 7년 동안 자신이 기숙사 방에서 생활하는 모든 모습을 웹캠으로 생중계한 대학생의 사례...였는데(심지어 친구의 약혼자와 섹스를 나누는 모습도 생중계 --;) 세상에 이런 멘탈갑이 있다니... 존경합니다!

책의 반절은 '디지털세상에서의 루머와 평판'에 대한 파트로 인터넷 시절을 약 20년 가량 겪어온 나를 비롯해 최소한 10년 이상 경험해본 지금의 성인들을 위한 유쾌한 회고담 격이었다.

며칠 전에 Youtube에서 한국-프랑스 커플이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를 함께 여행하면서 현지 여행지 소개는 뒷전일 정도로 물고빨며 온갖 닭살 행각을 벌이는 시리즈를 봤었다.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네들의 풋풋함이 싱그러워보이면서도 동시에 '얘네들은 나중에 헤어지고 나서 이거 다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나. 나중에 또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들도 이거 다 볼텐데..'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더라. 별로 어렵지 않은 이정도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다.

나머지 절반은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 그리고 법'파트인데 미국법을 중심으로 인터넷 세상에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그리고 개인의 평판과 관련된 법률관계들에 대해 서술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번역자가 법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분이다보니 이 책을 읽고서 법학 비전공자가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법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륙법계인 국내법과 미국법의 체계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헌법상의 '사생활의 자유'와 영미법에서의 '프라이버시권'이 다른 것처럼 퍼블리시티권은 재산권의 범주에 속하지만 국내 법체계에서는 성명권, 초상권은 인격권으로 분류된다. 단편적인 논문 정도의 스케일을 떠나서 국내법과 영미법 모두에 정통하면서 이러한 논의를 전개하시는 분이어야(예를 들어 고학수 교수님) 국내 독자들을 잘못 이끌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인터넷세상에서 개인정보와 평판에 관한 전선은 개인정보보호법 외에도 '통신비밀보호법','정보통신망법' ,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등등 지천에 핀 꽃밭처럼 수십 개의 법률과 하위 시행령, 시행규칙에 퍼져있으니까.

난 스포츠 비디오판독, 태권도 시합에서의 전자감응호구처럼 사람을 로봇처럼 다룰 수 있다고 믿는 알고리즘 편집자의 시각으로 법을 다루고자하는 의욕 넘치는 이들이 두렵다. 예를 들어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서 현재 전체 중에서 1% 미만 밖에 공개되지 않고 있는 법원의 판결서들을 개인정보 비식별화처리를 해서 전체를 공개하겠다는 이들. 구글과 같은 회사들이 여러 단계로 비식별화처리를 한 빅데이터들도 복호화해서 개인을 특정해내는 사례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몇 번 겪을 일이 없는 소송 사례들을 복호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식별화할 수 있을 것인지? 만약 그렇게 가렸다고 하면 그 판결서가 판례로서 가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인터넷세상에서 개인의 평판과 관련된 서부개척시대와 같은 상태가 시간이 가면 저절로 나아지리라고 본다. 페니키아 상인들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해상운송과 해적에 관한 관습법들이 결국 국제해양법의 규범들을 만들고 IMO(국제해사기구)를 결성한 지금에 이른 것처럼.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의 <추락>이라는 에피소드에서는 사회적 평판이 수치화되어 관리되는 가상의 세계를 다룬다. 중국정부가 국민들의 준법지수를 관리하고 준수여부에 따라 이익과 불이익을 부과하는 천망시스템(연식이 나오는데 예전 영화 <데몰리션 맨>도 있다.)처럼 사회운영의 알고리즘을 짜는 소수의 법률가와 정치가가 여왕개미이고, 나머지는 각종 일개미의 역할을 분담하는 흰개미 사회에서 프라이버시는 숲속, 집안, 기타 돈을 주고 대여한 공간에서 밖에 존재할 수가 없으리라.

과연 중국의 천망시스템이 검사조직에서 벌어지는 구성원에 대한 성추행과 부당한 인사발령을 적발해낼 수 있을까? 최소한 시스템 오퍼레이터들은 예외일텐데. 아르고스의 눈동자가 천 개가 넘는다고 하더라도 그 눈들은 과연 누가 감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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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쪽

(Robert Post)"가쉽은 한편으로는 사회구성원의 뒷얘기, 허세, 단점, 가벼운 실수, 스캔들을 노출시키며 공동체 규범을 전복시키려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가쉽은 강제성을 띠는 사회적 압박을 동반하며 공동체 규범을 재확인하기도 한다."

135쪽

(Arnold Ludwig)"각기 다른 자아는 경험하는 당사자에겐 진실이며 타인에게는 본성의 발현과 같다. 거짓된 자아와 진정한 자아의 구분은 가치 판단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그 사람의 정체를 드러내거나 개성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비밀을 폭로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폭로는 전후 관계를 무시한 채 사람을 발가벗기기 때문에 그저 귀에 거슬릴 뿐이다.

142쪽

사생활 보호는 변화할 기회를 주고 자아를 정의하도록 도와주며, 기록된 과거의 수형자가 되지 않는 미래를 부여한다. 사회는 구성원을 지나치게 과거에 옭아매고 그들에게 정해진 역할만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개성은 역동적이어서 사회가 원하는 바를 완전히 받아들이기엔 어려움이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질렀던 형사범죄들이 다 드러난다고 하면 우리들 중 대부분은 차꼬를 차고 살아야 하지않을까? 과연 암수범죄가 전혀 없는 세상이 이상향일까? 자기부죄 금지의 원칙이나 본인의 범죄에 대한 증거를 없애는 것은 증거인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리 속에도 이런 뜻이 담겨있지 않을까?)

239쪽

리처드 포즈너 판사는 프라이버시 관련 소송은 그 결과가 공개되어 결국 더 심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일단 소송을 제기하면 미국 법정은 그들의 실명을 감추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떤 법원은 가명의 사용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직 예외의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표명했다. 반면 많은 유럽 국가의 법원은 소송을 할 때 사람들이 신분을 감출 수 있게 한다.

244쪽

가장 최선의 방법은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조정을 하는 것이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더 필요한 것은 손해를 바로잡아 줄 뿐 아니라 손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법이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법인 거의 사용될 필요가 없는 법이다. 법의 적용은 그 절차가 비싸고 시간 낭비기 때문이다.

363쪽

기밀에 관한 문제 중 하나는 더 일반적으로는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기밀이 사실 정보의 확산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일 기밀을 지킨다면 누군가의 평판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가 제거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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