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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바우마이스터/서은국 역] 소모되는 남자(2010)

독서일기/젠더

by 태즈매니언 2017. 2. 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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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갓 명묵님의 추천작이라 한참 전에 사놨던 걸 어제야 읽었습니다. 원래 해나 로진의 <남자의 종말> 읽고 바로 읽으려고 했었던 책인데 말이죠. <남자의 종말>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으시면 소금을 찍어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처럼 이 책의 탁월함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육아법 책보다 이 책을 권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대학시절 학회 성세미나 자리에서 남성 일반을 불의한 가부장제 시스템의 수혜자로 치부하며 열변을 토했던 여학우들에게 이 책을 발제해서 성세미나 한 번 더 하자고 하고 싶습니다. ㅋㅋ


번역자가 <행복의 기원>을 쓰신 서은국 교수님이죠. 에세이라 가벼운 필치로 쓰고 있기 때문에 편하게 잘 읽힙니다. 아직 2월이지만 아마도 제 올해의 책 리스트에 올라갈 것 같네요.


기존의 성차에 대한 두 가지 견해는 '남성이 여성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관점'이 하나, 다른 하나는 '어떤 중요 영역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을 분 아니라 오히려 남성보다 우월할 수 있고, 가부장제라는 시스템이 여성을 억압하고 남성끼리만 보상을 분배해왔다'는 관점이지요.


그런데 둘 다 배척하면서 남녀는 동등하지만 다르다고 봅니다, 남녀의 차이는 기본적인 호불호와 관계모형 성향의 차이와 문화 시스템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하죠. 문화('집단 전체에 공유되어 있으며,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학습된 생활양식')가 남성과 여성을 각각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합니다.


저자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 본인이 요즘의 세태에 대해 약간 억하심정이 쌓여서인지 남성을 감정적으로 변호하는 부분도 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도 경청할 필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읽는 사람이 걸러 받아들이면 되지 않나 싶네요.


아래 부분은 이 책을 다 읽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1. 저자는 문화의 입장에서 여성은 소중한 자원이라는 가정을 계속 고수하는데 그걸로는 가임기가 지난 여성들에 대한 존중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역사속의 가부장제는 바로 그런 여성, 소위 '우두머리수컷의 아내'에 대한 사회적 역할 부여 차원에서 고안된 제도가 아닐까요? 잉여생산물이라고 해봤자 수레에 싣고 옮길 수 있는 물건들 뿐인 유목민에겐 가부장제가 없죠. 하지만, 정주문명에서는 그 자리를 유지하기 바쁜 우두머리수컷이 쌓아둔 부와 권력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역할이 분명 필요하니 문화와 여성의 협력이 이뤄지기 좋은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쥐뿔도 없는 집 시어머니는 노화된 몸을 이끌고 계속 노동해야하니 물론 이러한 구조형성과 무관하지만요.


2. 지구상에는 이미 인구가 많습니다. 생태학적 한계에 있는 티벳에서 일처다부제를 통해 인구증가를 통제했던 것처럼 현대문명에서 사회의 보조를 받지 않는 출산과 양육이 포르쉐나 페라리를 능가하는 사치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성들만이 아닌 여성들도 소모되는 존재로 투입하는 문화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차피 전쟁도 인구 숫자는 의미없고 완편된 항공모함 전대 하나면 어지간한 나라는 다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포드의 가솔린 자동차 대량생산 이후 미국 내 수십만 마리의 말들이 경제학적으로 무가치해진 것처럼 제2의 기계시대가 임박해 있고, 인간노동력이 넘쳐난다고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감차보상금을 지급하면서 공급을 통제하는 택시총량제처럼 인간총량제가 필요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선진국부터 닥치겠지만 개도국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폭스콘의 인건비가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갈수록 진보하는 화낙(FANUC) 로봇을 계속 압도하리라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요.


페미니즘으로 인해 남성들은 좀 더 덜 소모될 수 있는 수혜를 얻었지만 기술진보를 선도하고 가장 많은 임금을 주는 기업들은 여성들도 소모되는 존재가 되도록 회유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성차별의 철폐, 유급 출산휴가,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의 확충, 난자냉동비용 지원 등 말이죠. 문화는 필요하다면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주부인 남성을 소방관이나 CEO처럼 매럭적으로 묘사하여 이런 우두머리암컷의 배우자 풀을 넓혀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3. 일부일처제의 정착, 안전한 피임수단을 확보한 상태에서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확대, 전지구적 시장경제의 보급으로 소모되는 존재를 더 많이 갈아넣어 기술진보와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경쟁친화적 문화집단이 승리하는 추세 등을 볼 때 지금까지의 선진국을 만들어낸 문화의 선택은 이제 여자들도 소모되는 존재로 만들거나 아니면 선별적으로 엘리트 이민자 남성을 받아들여 기존의 시스템을 고수하느냐의 선택이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두 가지 전략 중 어느 쪽이 장기적으로 성공한 전략이 될지 상당히 기대되네요.


이 하는 인용한 문장들입니다. 인상깊었던 책이라 좀 많이 인용했습니다. 어줍잖은 요약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직접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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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쪽


제이슨 와일더와 동료들의 DNA연구를 통해 오늘날 인류 조상의 약 67%가 여성이고 33%가 남성임이 밝혀졌다. (중략) 전문가들은 이 불균형이 더 심할 것으로 여겼으며, 대략 75~85% 정도가 여성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부일처제가 전세게적으로 퍼진 현대사회 이전의 대부분의 역사, 특히 선사시대에 심했을 것이며, 많은 동물 세계에서는 고작 20%의 수컷들이 90%에 육박하는 암컷들과 번식을 한다.

(전략) 결정적인 점은 남녀 삶의 보편적인 결말이 달랐다는 것이다. 성인기까지 생존했던 대부분의 여성들은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자식을 두었을 것이며,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그렇지 않다. 생존했던 대부분의 남성들은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야생마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유전적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129쪽


진화의 핵심은 생존이 아닌 '재생산'에 있다. 진화를 이끄는 자연선택의 결론은 결국 재생산을 위함이다. (중략) 진짜 핵심은 더 많은 자손을 성공적으로 '낳을 수 있는' 자식들을 낳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일을 해낸다면 당신의 수명과는 관계없이 유전자를 전달하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169쪽


여성들은 일대일로 연결된 가까운 관계의 작은 영역에 맞게 설계된 반면 남성들은 많은 사람들과 연결된 대규모 영역에 더 잘맞게끔 설계되었다. 남성들의 이런 관계는 여성들의 전문 분야는 일대일 관계만큼 친밀하거나 강렬하지는 않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중요하다.


177쪽


어느 쪽도 더 우월하지 않다. 단지 다를 뿐이다. 각각의 대인관계 방식은 한 종류의 관계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자연히 다른 종류의 관계에는 덜 적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트레이드오프(trade-off)다.


250쪽


큰 규모의 집단은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으며, 훨씬 더 광범위한 노동분업과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때로는 친근하고 때로는 잔인한 경쟁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생각들을 시도할 수 있었고, 승자가 누구든 이 같은 경쟁은 집단 전체에 이득을 가져왔다.


312쪽


남편의 독점을 원하는 여성도 일부다처제 하에서 더 잘 살 수 있다. 일부다처제는 미혼 여성 수는 부족하게 하고, 미혼 남성 수는 넘쳐나게 한다. 그래서 일부다처제 하에서는 일부일처 관계의 남편을 원하는 여성도 훨씬 많은 남성들 중에서 자신의 남편을 고를 수 있다.


377쪽


사람들은 대개 위대함을 추구하기 위한 희생이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낮은 확률을 뚫고 위대한 성취를 달성하는 데 그들의 삶을 바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다소 비합리적인 이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383쪽


살펴보았듯이 자연은 위대함을 추구하지 않는 남성들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으며, 야망이 없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결국 생식의 종말을 맞이했다.


429쪽


대부분의 현대문화가 내놓은 해결 방법은 이혼하더라도 남성이 계속 전처와 자녀들에게 자신의 부를 전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남성이 전처와 새로운 아내 모두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 경우 이것은 일부다처제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남편으로서 전처에게 가졌던 권리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435쪽


문화와 여성은 이 부분에서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남성이 열정적인 사랑의 최고치에 있을 때 문화와 여성은 남성의 착각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이 소중한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 덕분에 남성은 기꺼이 영구적인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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