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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김현우 역] 멀고도 가까운(2013)

독서일기/젠더

by 태즈매니언 2017. 2. 2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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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는 책 중에 취향이 안맞아 읽기 힘들어 하는 분야가 시집과 내가 사적인 내용이 많은 에세이쪽입니다. 취향이 안맞아 잘 안읽다보니 점점 더 접하기가 어렵더라구요.

<맨즈플레인>으로 유명한 리베카 솔닛의 이 에세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부분이 없는 아름다은 문장과 마법같은 구조로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경지의 글쓰기를 보여줬습니다.

한 번 읽고서는 감상을 남길 엄두가 안나서 묵혀놨다가 다시 읽었고요. 지금도 그저 잘 쓴 에세이라서 또래나 손위의 지인들에게 읽도록 권하고 싶은 마음으로 타이핑하고 있네요.

이 책은 어린 시절 솔닛이 살았고 어머니가 사는 집에서 수확해온 살구 세 자루에서 시작해서 여전히 남아있는 두 개의 살구시럽병을 바라보며 끝납니다.

목차도 "살구-거울-얼음-비행-숨-감다-매듭-풀다-숨-비행-얼음-거울-살구" 순서로 시작과 끝이 목걸이처럼 이어지고요.

살구, 어머니의 치매, 유방암 수술, 친구의 죽음과 같은 가까이 있는 것들과 책을 통해서 만난 매리 셸리와 <프랑켄슈타인>, 체 게바라와 <모토사이클 다이어리>, 붓다에 관한 불교경전과 같이 멀리있는 것들이 표지에 그려진 실이 천으로 직조되는 과정처럼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진부한 비유로 보이지만 실을 잣고, 베를 짜아내는 문장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계속 감탄하느라 두 번째도 쉬엄쉬엄 읽게 되네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화분을 사서 베란다에 블루베리 나무를 심었고, 동네 마트에서 세 팩을 묶어 만 원에 팔던 설향 딸기를 사서 딸기잼을 담았습니다. 솔닛의 표현대로 절임은 '역사가의 요구와 요리사의 능력이 만나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 잼을 다먹을 때까지는 혀 끝에 닿는 딸기잼의 단맛 안에 잼을 만들 때 했던 생각들이 보존되어 있을테니까요.

읽기와 쓰기, 그리고 생활과 인간관계 등 여러 실타래를 풀어 짜낸 이 이야기를 통해 에세이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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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쪽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능성,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다. 책은 읽힐 때만 온전히 존재하며, 책이 진짜 있어야 할 곳은 독자들의 머릿속, 관현악이 울리고 씨앗이 발아하는 그곳이다.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쉬지 않고 책을 읽으며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의 가치를 회의했고 무시당하거나 벌을 받을까 봐, 무언가를 들킬까 봐 늘 두려워했다. 이해를 받고 용기를 얻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확신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만한 걸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많은 양의 글을 쓸어 담았다.(중략)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 아닐까? 그것이 둘만으로 구성된 관계일지라도. 말이 전하기에 실패한 것을 글이, 아주 길고 섬세하게 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침묵에서 시작했다. 읽을 때만큼 조용하게 글을 썼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내가 쓴 것을 조금씩 읽었다. 몇몇 독자들이 나의 세상으로 들어오거나, 나를 그들의 세상으로 끌여들였다. 나는 침묵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긴 여정을 거쳐 아주 멀리서도 들리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 목소리는 처음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곧 큰 소리로, 더 큰 소리로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25쪽

파이는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만든 사람이 바로 먹을 수 있지만, 책은 쓰이고 몇 달 혹은 몇 년 후에, 그것도 작가가 없는 곳에서 읽힌다. 작가 본인도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중략)
요리란 그 재료를 먹어 버림으로써 사라지게 하는 일, 음식을 먹는 이의 몸 안에 묻는 흥겨운 장례식이다. 그렇게 먹는 이의 몸 안에 들어간 음식은 변신을 거쳐 다음 생을 맞이하고, 분비물을 통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무언가를 보존하는 일은 그 변신 과정을 무한히 연기하는 일이다. 어쩌면 절임이란 역사가의 요구와 요리사의 능력이 만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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