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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빈센트/공경희 역] 548일 남장체험(2006)

독서일기/젠더

by 태즈매니언 2017. 3. 9.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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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소모되는 남자>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던 <Self-made Man>이 무려 10년 전에 번역되서 나왔다는 걸 명묵님 덕분에 알았습니다. 중고서점에서 상태 좋은 걸 저렴하게 득템해와서 3월 8일 '여성의 날'에 다 읽었습니다.

원제의 느낌을 살려 번역하기가 어려워서 <548일 남장체험>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번역판 표지의 부제 그대로 노라 빈센트라는 LA타임스 칼럼니스트가 남자로 생활해본 기록이죠.

서두부터 제대로 남자역할을 하기 위해 근력을 키우고, 발성법을 지도받으며, 수염에 가짜 페니스까지 붙인 철두철미한 노력이 흥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남성들의 성욕을 탐구하기 위해 선택한 참여관찰 방법들도 기발했고요. (책 읽으실 분들의 재미를 남겨두기 위해 구체적으로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ㅎㅎ) 대다수의 남자들이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호감을 표현하면서 상대방의 의구심을 없애는데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는지 공감하는 부분에선 빵 터졌어요.

노라 빈센트는 548일간의 경험을 통해 천형(天刑)과 같은 성욕과 문화가 강요하는 남성다움이라는 형틀에 눌리는 괴로움을 이해하게 된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노라가 느꼈던 그 ‘괴로움’이 어쩌면 성정체성장애(gender identify disorder) 케이스처럼 자신의 성정체성에 맞지 않은 생활을 계속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스트레스를 남성들의 고통으로 오해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이 책을 읽고 나니 일베에서 김치녀나 삼일한 운운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좋아하는 이성으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에 소금을 뿌리는 역할을 하는 고통스러운 성욕.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가 고통에 못 이겨 발광을 하며 욕설을 하는 상황이 떠올랐거든요.

<남자의 종말>과 <소모되는 남자>와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이제 리베카 솔닛의 <맨스플레인>만 읽고 젠더 문제를 다룬 책들은 좀 쉬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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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쪽

우리는 흔히 남자가 여자를 대상화함으로써 성적인 권력을 휘두른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관찰한 남자들은 자신들의 근본적인 욕망 때문에 오히려 고통스러워했다.

156쪽

남성들에게는 여성이 큰 힘을 발휘한다. 남자를 흥분시킬 뿐 아니라 가치, 자기존중감, 의미를 부여한다. 경험을 통해 나는 극단적인 남자들이 여자에게 왜 폭력을 휘두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가진 것은 폭력뿐이고, 그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여성들보다 나은 게 폭력뿐이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폭력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뜻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남자로서 이런 마음과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나야 그러지 않았지만, 버림받은 남자의 마음 속에서는 거부당한 것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된다는 것을 알았다.

320쪽

문화는 남자가 완전한 인간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배운 대로 남자다운 태도를 취해야 한다. 세상이 기대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이 검열에서는 나약한 남자로 인식되는 것이 최악의 평가이다.

322쪽

나는 그 밑바닥도 보았다. 수치스런 성욕이 사람을 얼마나 저속하고 집요하게 만드는지, 끝없는 여자 생각이 얼마나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보았다. (중략) 남성성을 발휘하라는 기대를 받을 때 성욕은 더 저급해진다. 그 기대는 욕설과 허세로 욕구와 불안을 덮으라고 선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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