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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헌]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2016)

독서일기/농림축산

by 태즈매니언 2017. 4. 1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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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페친님들을 통해 추천받은 책입니다. 저자 이도헌님께서 ‘왜 잘 다니던 금융기관을 그만두고 돼지농장 대표가 되었는가?’라는 지인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게 되었다고 하시네요.

네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유식한 체나 남의 생각 인용 없이 오로지 본인의 경험과 고민을 담은 책이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잘 읽힙니다. 책에서 사용한 단어들도 쉬운 말이고 중간중간 핵심내용들을 장표로 간결하게 정리한 부분도 좋았습니다. 대중교양서 글쓰기의 모범인 것 같아 본받고 싶네요.

작년에 읽었던 우치자와 준코씨의 <그녀는 왜 돼지 세 마리를 키워서 고기로 먹었나>가 일회적인 가정 내 양돈을 통해 생태주의 축산에 대한 체험수기였죠. 반면, 이 책은 국내에 5천 곳도 안되는 양돈농장의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과 고민들을 도시에 사는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돼지사육에 대한 책을 두 권 읽은 사람이 흔하진 않겠지만 제가 일주일에 돼지고기를 먹는 끼니 수를 생각해보면 소비자로서 관심을 가지고 책 한 권쯤 찾아볼 필요는 있지 않나 싶습니다.

몇 년 전 스페인 자전거여행 때 날마다 한 끼는 하몽을 듬뿍 올린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면서 나중에 나이들면 하몽만드는 기술 배워서 값싼 국산 돼지 뒷다리살의 부가가치를 올려봐도 좋겠다 싶었는데 이미 누가 하고 있겠죠? ㅎㅎ

홍성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만해 한용운 선생의 고향, 국내에서 관측된 가장 높은 진도의 지진이 발생한 곳 정도 밖에 없었는데 2016년 6월 기준으로 돼지 54만두를 키우고 있는 국내 최대의 양돈지역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요. (돼지고기 매니아라면 성지로 경배하셔야)

첫 파트인 <인생 후반전을 열다>에서는 금융 비즈니스의 유목민으로 살았던 저자가 새 출발을 위해 세운 세 가치 원칙과, 사업아이템을 선정할 때 고려해야할 요인들에 대해 공감하고 또 감탄하며 읽었네요. (직접 보시라고 구체적인 내용은 옮기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 파트 <돼지농장으로 출근하다>에서는 돼지농장 대표로서 장기적인 농장의 장기적인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고민과 시도들을 지켜보면서 왜 기존 양돈인들이 원가절감과 대형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먹어보지 못했지만 호응이 좋다고 들었던 박찬일 쉐프님이 버크셔K 품종 돼지로 만든 돼지국밥집처럼 식당 종사자와 소비자들이 좋은 재료를 찾아야 농장에서도 이러한 수요를 노리는 경영전략을 짤 수 있겠죠. 시간이 걸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방향으로 갈 거라 봅니다.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방역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지도 처음 알게 되었고요.

세 번째 파트 <경계인의 눈으로 본 농촌과 도시의 삶>은 책 제목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내용들이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면단위 시골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지라 저와 반대로 전세계 유수의 대도시에서만 살다가 충남 홍성군 결성면으로 옮기신 입장을 들으니 반갑더군요.

1인당 온실가스 배출 세계 3위국의 도시민들이 누리는 편익의 대가가 이상기후로 돌아와 농촌에 입히는 타격에 대한 소회나 농촌생활을 경험한 세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미디어마저 농촌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생기는 단절에 대한 내용, 대한민국헌법 제121조(경자유전)와 그 구체화법인 농지법에서 ‘농촌·농민과 대한민국 간의 약속과 합의’를 읽어낸 부분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다만, OECD 최저수준인 식량자급률의 제고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국산 돼지의 항생제 오남용 우려에 대한 항변은 일부 설득력이 있었지만 의구심이 다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과 ‘식품의약품검사법’에 따라 도축시 무작위로 잔류항생제 검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2016년 8월 농림식품부에서 발표한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 (2016-2020)>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사육하는 가축의 항생제 사용량과 내성률이 기준치 이내이긴 하나 선진국에 비해 높다고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마지막 파트 <지속가능한 상생의 길을 꿈꾸며>에서는 도시인들의 눈에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이 농촌사회에서 계속 유지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관찰과 바이오가스 발전소 사업제안 경험담이 인상깊었습니다. 매칭펀드 방식이 장점이 많긴 하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사업제안을 사실상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생각못했던 부분이었고요.

축산분뇨 발전 문제는 전부터 생태학쪽에서도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아직 성공적인 모델이 없는지 몰랐습니다. 어릴 때 시골 외갓집 근처 백수십 마리를 키우던 돼지농장에서 나던 악취를 떠올려보면 이런 부분에 정부 R&D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게 아닌가 싶네요. <똥이 자원이다>와 <똥도 자원이라니까>를 쓰셨던 인류학자 전경수 교수님도 생각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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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쪽

나에게 양돈업은 ‘메모리 반도체 산업’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반도체 산업의 성패는 수율, 웨이퍼 한 장에서 생산하는 반도체의 개수가 좌우한다. 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첨단의 생산 시설과 현장 생산자의 세심한 노력이 중요하다.

46쪽

업계 분위기를 들어보니 의외로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돌아와서 농장을 승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괜찮은 사업이 아니라면 굳이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162쪽

대한민국 농지법에 따르면 농지를 소유한 농부는 농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농지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농지를 강제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평생 농사짓던 농부가 땅을 잃고 터전을 떠나 다른 생업으로 전환하여 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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