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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일본은 악어다(2001)

독서일기/일본

by 태즈매니언 2017. 5. 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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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한 자의 한가함을 만끽하면서 기리야마본진의 주인장 신상목 사장님께서 외교부 재직 중 와세다대 아시아태평양 대학원에서 연수 중에 쓰신 <일본은 악어다>를 읽었습니다. 절판본이라 계속 구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알라딘 중고서점 광주점에 출몰했더군요. 누가 먼저 사갈까봐 걱정했는데 여동생이 바로 시내 나가서 사온걸 엊그제 광주 내려갔다가 받았습니다.

 

임명묵님께서 일본을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한국인일거라고 하셨는데 이 책이 그 말을 뒷받침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됩니다.(물론 <일본의 없다> 같은 책이 엄청나게 팔리기도 했지만요 --;) 최근에 패트릭 스미스의 <일본의 재구성>과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를 감탄하며 읽었는데 학자의 글로 표현된 건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을 바라보는 관점도 유사합니다. 앞의 두 서양학자들의 책이 영어로 출판된 것이 98년과 99년이고 이 책이 나온 해가 2001년이니 거의 비슷한 생각들을 동시에 하고 있었지 않나 싶네요.

 

사회과학쪽에서 특히 학자가 쓴 이론이 아닌 젊은 관료의 에세이가 출판된지 16년이나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일본이 그동안 사회체계를 바꾸지 못했다는 말도 되고요.

 

우리나라가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일본에 부족한 것이 합리적 개인주의와 다수결의 과정에 필요한 토론 문화의 확립이라는 일본 사회의 크나큰 구멍에 대한 지적은 지난 16년의 결과를 비추어 볼 때 타당한 조언이었지요.

 

이 책은 악어의 이미지 아홉 가지에 빗대어 일본을 관찰하고 있는데 저는 이미지4부터 몰입하게 되었고, 뒤로 갈수록 꿀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일본은 파충류 진화의 완결체로서 웅덩이 안의 최강 포식자인 악어와 같은 존재로 남아 있을 것 같고요.(여행객들에겐 친절한 악어!)

 

제가 평소에 인상비평을 좋아하지 않는데 일본을 악어에 비유한 내용들이 저자가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하는데 유용했습니다. 악어의 생태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었는데 알고 보니 악어가 꽤 매력적인 동물이더군요.(책을 보시면서 직접 찾으시도록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리바이어던이 나일 악어를 말한 것이라니 신기하네요.

 

이미지5 ‘악어의 딜레마중에 새역모의 후쇼사 교과서에 대한 문부성의 수정 요구 후 검정, 이등휘 전 대만총통에 대한 조건부 비자발급 등 전체의 화()유지와 당사자의 체면 보존에 집착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은 회피한 채 적당한 선에서의 이익절충 또는 타협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문제해결(125)’이 야기한 딜레마가 연속되는 딜레마에 대한 분석도 인상 깊었습니다. 규범조화적 해석의 본뜻을 가지고 말씀하신 일침이 일본인들에겐 아프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네요.

 

이미지6 ‘악어의 뱃가죽부분에서 2차적 이익집단인 회사에서 봉건적이고 전제적인 거창한 정신들을 매일같이 주입당하는 일본의 회사원들이 어쩔 수 없이 순치되면서도 내면에서는 조직과 유리(遊離)되는 현상도 공감이 되더군요. 예전에 제가 현대자동차 입사시험에 합격했다가 포기했던 이유 중 하나가 매일 아침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단체로 사원체조를 한다는 것 때문이었거든요. 같은 장의 일본의 고입 입시가 주는 중압감과 폐해도 고교 입시 부활론자들에 대한 반박으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빠칭고와 카바쿠라 이야기도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지라 반가웠고요.(풍속업소 밀집지역의 호텔들이 저렴하다가 보니 여행가면 그런 동네에 머무를 때가 많아서 --;)

 

이미지7 ‘악어의 미소에서는 일본의 뒤떨어진 정보통신 인프라에 대해 중요한 시기에 직접 현지에 체류했던 경험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줘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제가 입학한 1998년에 기숙사에 1인당 하나의 아이피를 부여해주는 LAN을 구축해줬는데 당시 일본 ISDN의 요금체계는 정말 괴랄하더군요. 일본의 정보통신 인프라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를 기존의 아날로그 시스템이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도 동의합니다.

 

마지막 장인 이미지9 ‘강화되는 초강력 슈퍼 울트라 보호막은 새역모의 회장 니시오 간지를 통해서 합리적 개인주의의 확립이 아니라 자유로부터 국가와 천황이라는 도피라는 퇴영의 방향임을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새역모의 세계관이 현실주의적이고 외교전략의 관점에서 국익을 얼마나 저해하는지 논증하는 부분은 탁월하더군요. 일본 우익이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한 불신과 반감의 원인이 된 동경전범재판이 코미디가 아닌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수준이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가외로 식민지 포기, 일중관계 개선, 무역 확대 등을 통한 소일본주의가 일본의 번영에 필요하다고 봤다는 이시바시 탄잔(1884~1973)이라는 총리대신을 역임한 정치인을 알게 되었네요.

 

에필로그의 제목은 토끼 같은 한국인데 왜 한국을 토끼에 비유하고 있는데 심약한 존재라서 토끼가 아닌 저자가 주목한 토끼의 특질이 무엇인지 기회가 되시면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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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마쯔시타 전기는 매일 아침 두루마리를 펼칩니다. 직장 단위의 그룹별로 모여, 옛날 닌자 놀이에서 하던 것과 같이 두루마리를 펼칩니다. 거기에서는 마쯔시타의 일곱 정신이라는 것이 적혀 있습니다. 이를 전 사원이 매일 복창한 후, 복창이 끝나면 소감발표라고 해서 그룹 멤버가 순번을 정해 자신의 감상을 모두의 앞에서 발표합니다. (사타카 마코토, <일본의 회사와 헌법>에서 재인용)

 

175

 

합리적 개인주의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외치기가 어렵다.

 

202

 

일본에서 기존의 발달된 아날로그 시스템으로 인해 인터넷 등에 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지 않고, 이에 따라 디지털 시스템의 구축이 신속히 진전되지 않는다는 것은 향후 일본 경제가 어떠한 진로를 걷게 될 것인지와 관련하여 큰 의미를 갖는다.

 

251

 

새역모는 금번 교과서 문제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반발할 것이라는 것을 애초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한테는, 한국, 중국과의 관계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머리 속은 보다 강력한 경쟁자,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될 적인 서양(보다 정확하게는 미국)으로부터 일본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한국, 중국 등의 반발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작은 희생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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