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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강지원]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2016)

독서일기/사회학

by 태즈매니언 2017. 5. 3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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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묵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입니다. 제목과 부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책을 읽고 나니 '소통 공동체 형성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팬덤'이라는 문구가 이 책의 주제의식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것 같네요.

재미있는 건 이 책의 공동저자인 강지원씨가 강준만 교수님의 따님이라는 점입니다. 심지어 따님께서 강교수님이 재직하고 있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셨더군요.

좋은 질문을 던진 것은 강지원씨지만 이를 책으로 엮어낸 것은 강교수님의 역량이었습니다. 제가 요 몇년 동안 강교수님 책을 안읽긴 했지만 5~6년 전에 쓰신 책들에 비해서 이 책에 공을 많이 들인 품이 역력하더군요. 그만큼 따님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고요. 덕분에 강지원씨는 만 스물 다섯 나이로 괜찮은 교양서적의 공동저자가 되었죠.
('현재 한국엔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연습생 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와 같이 어이없는 소리를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어 읽는 중간에 신뢰도가 확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연보(2015)>를 보면 전국의 고교생이 178.8만명인데 말이죠. ㅎㅎ)

이 책은 '빠질'은 전 사회적인 현상임을 밝히면서 빠순이들이 누려 마땅한 인권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팬'과 '빠순이'를 분리하지 않는 태도가 좋은 출발이었고요.

오늘날 도시는 근대화의 성과물인 빽빽한 아파트숲으로 상징되듯 공동체적 관계성과 사회부조가 사라진 공간이죠. 두 저자는 기성세대의 '상식'을 깨부수는 논거를 하나씩 제시하면서, 관심사에 대한 소통을 나누며 소속욕구와 인정욕구도 충족할 수 있는 공동체로 빠순이 팬덤은 다른 여느 문화처럼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논거를 따라가며 읽다보면 대형교회에서, 축구나 야구팀 팬질로, 디씨인사이드 고정닉 활동, 도쿄 신주쿠 골든거리의 심야식당 단골방문, 고급브랜드 시계, 오디오나 자동차 커뮤니티 게시판에 상주하고 있는 아재들과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빠순이들이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당장 저부터도 내장기어 3단 밖에 없고 무게는 12kg이 넘게 나가는 쇳덩이로 만든 200만원짜리 자전거 빠순이라서 쏙쏙 와닿았습니다.

'브롬톤(Brompton)'을 타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이나 로드, MTB, 픽시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같은 미니벨로를 타는 사람들에게도 겉멋만 신경쓰는 된장같은 부류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처지죠. 현실에서는 일반인 코스프레 하며 살면서 가끔 '이게 보기보다 좋은 점이 많다'고 변호하기 바쁘지만 같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위로받고 서로 뽐뿌 넣어주는 팬덤 커뮤니티의 가치를 스스로 절실하게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죠.(직장 외 지인은 한 명도 없고, 어느 커뮤니티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다보니)

7~8년 동안 TV없이 살다보니 연예인을 좋아하는 빠순이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던 아재로서 그간 제가 폄하했던 빠순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합니다. 저도 빠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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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쪽

10대들이 처해 있는 전쟁의 참상이 어떠하건, 중요한 건 그로 인한 '소통 공동체'의 부재다. (중략) 정서는 통하면서도 소통의 소재 고갈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면서 그들에게 그 어디서도 맛보지 못했던 공동체의 결속과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게 바로 팬덤 공동체다.

164쪽

"빠순이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가 빠순이와 사생팬을 혼동하는 것이다. 사생팬은 가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일명 사생활을 침해하는 팬으로 툭하면 언론에 '비뚤어진 팬심'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사생을 가장 엄격하게 패는 것이 바로 같은 빠순이다."(이진송)

244쪽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발언할 권리는 우리의 생존과 존엄과 자유에 기본이 되는 조건이다. 나는 한때 폭력적인 방식으로까지 침묵을 강요당했지만 이제는 내 목소리를 갖게 된 데 감사하며, 그렇기 때문에라도 언제까지나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권리에 결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리베카 솔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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