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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모리스/김필규 역] 전쟁의 역설(2011)

독서일기/거대담론

by 태즈매니언 2017. 8. 2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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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War! What is it good for?>. 이언 모리스 교수님의 책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가치관의 탄생>에 이어 세 번째인데 이런 갓갓 명저라니. 사람이 이렇게 방대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해서 체계화할 수 있네요...(<가치관의 탄생>을 읽고서 이언 모리스 교수님이 유목문명의 독자성을 너무 가볍게 본 게 아닌지 했던 의문은 회수합니다!)

이언 모리스 교수님이 이 책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전쟁은 더 큰 사회를 만들어 냈고, 그 사회는 더 강력한 정부에 의해 통제되며, 이것이 평화를 가져왔고 번영의 기반이 됐다"는 도발적인 주장이죠.

전체적으로 정복자(정주형 도적들)이 국지적인 전쟁을 막고, 도적떼를 소탕했으며, 폭력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일도 감소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피...지배자들의 삶도 더 안전하고 부유하게 되었고요.

리바이어던이 전 지구를 점령해가는 과정은 피로 점철되어 있지만 장엄합니다. 이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죠. 예를 들어 서기 2~14세기까지 스텝지대 기병에 의한 제국의 타격과 전쟁의 생산성하락처럼요. 인터넷을 통해 타생한 자생적인 외로운 늑대 테러리스트의 출현이 가져오는 사회적 효용 손실(쉥겐조약의 틀을 흔드는)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외로운 늑대가 트럭운전만 할 줄 알면 과거 제국의 변방을 침략했던 기마궁수 전사와 같은 위협이 되는거죠. (심지어 지금은 제국의 최중심에 갑자기 짠~하고 나타날 수도 있어서 더 심각한.)

인간의 본성과 인류의 진화에 대한 제6장은 최근에 읽었던 책들이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됐습니다. 다만 체계적인 위치가 맞는지 갸우뚱하게 되네요.

마지막 제7장에서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경찰 미국에 대한 도전자인 중국의 시진핑이 1910년대 제2제국 빌헬름 2세와 비교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 정도로 끝나겠거니 했는데 스케일이 한 차원 넘네요. 죽음의 게임을 지배하는 법칙을 제시하고 증명한 다음에 그 게임 너머의 예상으로 끝맺다니. 이 큰 주제를 다루면서도 전혀 힘에 부쳐하는 느낌도 안주고, 그 너머까지 시야에 둘 정도면 학계의 슈퍼맨인 듯 합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전 무정부주의자를 전혀 지지하지 못하겠습니다. 불쌍한 정도로 까이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를 보면서 과대평가된 유명 학자의 최후가 이렇구나 싶어 섬찟했고요.

간단한 지식도 두 개 더 알았습니다. 첫째, 대영제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칭한 이유가 본토는 밤이어도 세계 각지의 식민지는 낮 시간일 정도로 경도상 많은 곳을 점유했다는 뜻이었다니. 둘째, 사과농장이 있는 인구 100만의 미국 10대 도시(고양시도 인구 100만의 한국 10대 도시죠 ㅎㅎ) '산 호세(San Jose)'가 '새너제이'였다니... '애(를)래나'가 아틀란타라는 것에 필적하는 충격이네요.

한반도 거주민으로서 트황상께서 이끄시는 천조국이 세계경찰 노릇에 실패하기 전에 인류를 죽음의 게임에서 자유롭게 해줄 특이점이 왔으면 좋겠습니다.(완독하신 분만 무슨 말인지 아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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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쪽

1080년쯤 한 페르시아의 왕자는 "이 진실을 명심하라"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왕국은 군대에 의해 유지된다. 군대는 금에 의해 유지된다. 그리고 금은 농업발전에 의해 얻을 수 있다. 농업발전은 정의와 형평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항상 정의롭고 공평해야 한다."

603쪽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두뇌 대 두뇌 접속은 고대이야기의 마지막 장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 20억 년 전 박테리아들이 모여서 단순함 세포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억 년 후 단순한 세포들이 모여 좀 더 복잡한 세포를 이루었고, 또 다시 9억 년 뒤 복잡한 세포들은 다세포동물을 만들어 냈다. 각 단계마다 단순한 기관들은 일부 기능을 떼어 버렸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자유를 포기한 셈이다. 그러면서 더 크고 복잡한 존재의 특화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박테리아는 박테리아로서의 성질을 포기함으로써 세포의 성질을 얻을 수 있었다. 세포는 세포로서의 성질을 버림으로써 동물로서의 기능을 얻을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는 의식이라는 단계까지 이를 수 있었다.

아마도 이제 우리는 우리 조상격인 세포 때부터 그래 왔듯, 호모사피엔스를 넘어선 무언가가 되기 위해 개별적인 동물로서의 성질을 버려야 할 시기에 다다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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