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니얼 예긴, 조셉 스태니슬로/주명건 역] 시장 대 국가(1999)

독서일기/거대담론

by 태즈매니언 2017. 10. 2. 14:02

본문




원제는 <The Commanding Heights: The Battle for the World Economy>. 오랜만에 읽은 벽돌책입니다.. 임명묵님이 중고로 입수해서 Dongshin Yang을 거쳐 저한테 대여된 책인데 대여되고 반납될 때마다 푸짐한 잔치가 있었고 오늘도 있을 예정입니다.

예전에 정책학이라는 애매모호한 학문의 교과서를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름 정독해서 2회독을 하고 나서도 정책학이 어떤 학문인지 와닿지 않더군요. 이 책은 정책학 교과서에서 접했던 파편화된 지식들을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빼어난 책입니다.

최병천님이 최근 포스팅에서 역사를 이해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셨죠. 구조-환경 중심의 거시적인 시각과 행위자-주체 중심의 개체적인 시각...으로요. <시장 대 국가>는 구조와 행위자라는 두 렌즈를 자유롭게 바꿔가면서 1945년 7월의 포츠담 선언에서부터 1997년까지 지구상에서 벌어졌던 국가와 시장 사이의 경제의 조종간을 놓고 벌인 경제철학의 방대한 고지전의 전말을 600페이지 남짓으로 압축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다루는 국가들을 보면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미국-인도-가나-영국-이탈리아-중국-일본-뉴질랜드-말레이시아-일본-한국-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중국-인도-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페루-멕시코-브라질-볼리비아-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러시아-프랑스-유럽연합-독일-네덜란드-미국-영국‘ 순서로 넘나듭니다.

각 국가의 꼭지마다 그 나라에서 경제철학의 방향을 결정지은 중요한 인물들의 개인사와 에피소드들도 언급됩니다. 1999년데 출판된 책이라 거의 20년전까지만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의 흐름도 예긴이 통찰한 흐름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고, 이 책 출판 이후 20년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은 평소에Santacroce G. Namm님의 글을 통해 보충한 것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주장하시는 지금의 대통령께 단 한 권을 책만 권할 수 있다면 바로 이 책을 (이왕이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증보판으로) 읽어보시라 간곡하게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의 한국이 1942년의 베버리지 보고서가 필요한 상황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라고요. 명민한 분이니 이 책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ㅠ.ㅠ

마오로 인한 중국의 삽질과 수 억 인구의 고통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인도의 Permit Raj는 정말... 네루의 계획경제모델이 간디의 향촌사회모델보다 못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온갖 국유기업, 노동조합과의 쎄쎄쎄를 통해서 발전을 추구한 결과가 참담하더군요. 대숙청과 굴라그를 통해 우격다짐으로 근대화와 공업화를 달성한 스탈린 동지의 방식을 따라할 수 없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가 같은 방식의 발전을 시도했던 결과의 한 단면이 1959년부터 생산된 영국 모리스 자동차의 Mark 1 모델을 현지화한 amby(Ambassador)모델이 무려 2014년까지 생산한 사례죠.(인도에서 중고차로 한 대 사오고 싶네요)

이 책을 통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 두 곳 있었습니다. 첫째가 영국에서 대처리즘이 피어나는 과정입니다..(마거릿 대처가 젊은 시절에 그렇게 빼어난 미녀였을 줄은...) Mad Monk 키스 조셉과 마거릿 대처가 영국의 정책 전환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풀 몬티>나 <트레인스포팅>, <빌리 엘리엇> 등에서 묘사된 느낌으로 영국을 접하는 게 친숙했던 제게는 엄청난 충격이었거든요.

둘째는, 하이예크로부터 시작된 몽펠레랑 소사이어티와 이를 통해 연결된 밀턴 프리드먼에서 시작된 시카고 학파의 형성과정입니다. 학부 때 읽었던 책들이나 학교에서 들었던 경제학 수업의 교수님들이 모두 케인지언이다보니 시카고 학파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시각 교정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한국 꼭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인물은 스탠퍼드 경제학 박사 출신의 대통령 경제수석 김재익이었습니다. 당시 그가 취했던 과감하고 시의 적절했던 정책들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주력 수출산업들이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를 기용하고 전권을 맡긴 부분에 대해서 전두환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우 저는 고등학교 때는 되도 않게 종속이론(당시 종속이론으로 <제3세계 연구>란 책을 쓰셨던 임현진 교수님은 대학갔더니 그새 다른 이론으로 갈아타신 ㅎㅎ)에 심취했다가, IMF 직후 대학 입학해서 학생회 선배들을 통해 좌파이론을 소개받았는데 세계는 이미 정반대의 길로 질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

79쪽

뉴딜 정책은 또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다. 소유권이나 국유화 대신 규제를, 집중과 합리화 대신 반트러스트를 그리고 계획 대신 탈중앙화된 통제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뉴딜 정책은 시장을 규제하고 시장이 더 나은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담보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127쪽

만약 세계은행의 사명에 단 하나의 모델이 있었다면 그것은 미국의 TVA였다.

187쪽

(마거릿 대처) “나는 민영화를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라는 내 야망을 달성하는 데 사용하고자 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집과 주식을 소유하고, 또 사회에 이해 관계를 가진 그런 국가를 말한다. 미래의 세대에게 넘겨줄 부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녀의 열정은 그 야망에서 나온 것이었다.

243쪽

(밀턴 프리드먼) “사람의 역할이란 단지 위기가 발생할 때까지 아이디어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294쪽

(싱가폴의 고겡쉬 박사) “성공의 열쇠는 계획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의 문제이다.” 이 나라가 딱 한 번 5개년 계획을 세운 것이 1960년대의 일이었다. 그러나 고박사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주말을 이용해서 생각해낸”일로서 세계은행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선물일 뿐이었다.

(인도의 통상장관 P. 치담바람) “내 눈에는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이나 똑같이 보호주의적 환경에 의해 나약해지는 것이 똑똑하게 보였다.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조악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나는 정부가 어떻게 해서 개입과 억압 그리고 비효율의 정부가 되는지 알고 있다. 그런 정부는 기업가 정신을 억누르고, 아이디어란 아이디어는 모조리 죽여버린다. 그리고 아무런 결과도 내놓지 못한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