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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에델만/김창대 역] 세컨드 네이처(2007)

독서일기/심리뇌과학

by 태즈매니언 2017. 8. 2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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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생리학을 전공한 의사 출신으로 면역학 연구로 197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럴드 에델만 교수님이 뇌과학의 입장에서 본 인식론에 대해 서술한 대중서입니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알려주는 스타일이 아니고 200페이지도 채 못되는 분량으로 서술하다보니 공대생 글쓰기처럼 간결하고 효율적이라 대중서로서의 전달력은 좀 떨어지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뇌의 구조와 부위별 기능, 연구된 동향 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더라면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네요.


마지막 제13장에서 이 책에서 전개된 전체적인 논의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가 정리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책 내용 중에 10분의 1 정도나 이해했는지 의문이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첫째, 뇌기반인식론은 물리학과 진화생물학을 기본토대로 두고, 관념적 설명이나 이원론, 범신론, 그리고 뇌의 구조에 기초하지 않는 정신적 표상들을 부인합니다. 플라톤 이래로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2원론적 전통의 인식론은 개소리라고 잘라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뇌는 몸과 일체이며, 그 몸은 환경의 일부로 깊이 묻혀 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 주장에 공감합니다.


둘째, 인간은 컴퓨터와 달리 사고의 언어를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몸으로써 주변환경을 지각하고 그 환경에 대한 지도를 그림으로써 개념을 발달시켰죠. 생각 자체는 운동영역의 뇌가 활동하여 생기는 결과인 것이므로 언어 없이도 사고는 가능합니다. 다만 높은 수준의 논리적 능력과 수학적 능력을 보이려면 언어습득을 통해 고차의식을 획득해야 하죠. 이러한 논지를 통해서 앨런 튜링머신인 컴퓨터 기반의 인공기능 연구가 왜 수십 년 동안 답보상태였는지, 인간의 뇌를 흉내낸 선택기반의 신경머신이라는 대안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럴드 에덜만 교수님이 추구한 뇌과학과 인식론이 교차하는 궁극적인 성과물이 156~157페이지에서 언급된 ‘지각-튜링머신’같은데 1972년 제럴드 에덜만 교수님께서 세운 The Neurosciences Institute가 계속 연구를 수행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연구소는 뉴욕의 생명공학 박사과정 및 포닥만 운영하는 연구중심대학 록펠러 대학에 있다가 2012년에 샌디에고의 La Jolla(엊그제 알았는데 ‘라호야‘라고 읽는다고 합니다.)로 옮겼다네요. 진정한 대륙 횡단 스케일!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탄생한다면 그 출생지는 아마 라호야가 될 것 같습니다.

원제 Second Nature를 일부러 원어 그대로 쓰고 번역도 일반적으로 친숙한 ‘제2의 천성’이 아닌 ‘제2의 자연’이라고 한 것도 ‘天性’이라는 말 자체가 제럴드 에델만의 주장과 배치되는 뜻의 단어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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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쪽


뇌도 면역계와 같이 각 개체의 삶 내에서 작동하는 선택적 시스템이라고 제안해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견해를 1977년에 처음 제시하였고, 그 후 신경다윈주의(neural darwinism)이라는 이름 하에 이 이론을 꾸준히 확장시켜왔다. 이 이론은 세 가지 원리를 갖는다. 첫째, 뇌신경회로의 발달은 지속적인 선택과정을 거친 결과 엄청난 수의 미세한 해부학적 변이를 초래했다. 이러한 발달상의 선택을 유빌하는 최대 원동력은, 심지어 태아의 뇌에서조차 함께 발화하는 신경세포들은 함께 연결된다는 사실이다.(중략) 둘째, 이미 형성되어 있는 해부학적 회로의 레퍼토리가 동물의 행동이나 경험에 따른 신호를 받게 되면 일련의 부가적이면서 중복되어 있는 선택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경험적 선택은 이미 해부학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시냅스의 강도가 변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84쪽


이러한 (뇌기반 인식론)의 관점에서 보면, 뇌는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 발달하며, 따라서 각각의 뇌는 독특하다. 논리보다는 패턴의 인식이 선행하고, 발달초기의 사고는 은유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 창의적으로 패턴을 형성한다. 이 과정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실제로 적응적 행동의 진화에 꼭 필요한 가치평가시스템은 지식의 습득에서 정서적 경험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논리와 형식적 분석이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사고발달의 후기에도 계속된다.


102쪽


인간의 뇌는 본질적으로 논리보다는 패턴을 인식하는 쪽으로 작동하는데, 패턴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뇌는 매우 구성적인 동시에 오류에 대해서는 매우개방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고차원적인 신념은 물론 인지적 착각(perceptual illusion)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학습 같은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적절한 보상과 처벌을 가해 지각과 구성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수정할 수도 있다.


104쪽


뇌나 의식적 정신상태의 진화는 물리법칙의 틀 안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일어났다. 따라서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정리될 수 있다 : 호모사피엔스가 진화하면서 언어와 고차의식이 등장했고, 이것들로 인해 증명 가능한 진실을 추구하는 경험주의적인 과학이 가능해졌다. 언어와 외부세계의 관찰에 대해 논리를 적용하고, 영구적인 지적 대상에 대해 수학을 적용함으로써 의식의 발달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의식은 논리나 수학에 의해, 또는 논리나 수학의 형태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떤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일어났다. 나아가 고차의식과 패턴인식이 가능하고 자연선택의 원리를 따르는 뇌가 특정한 역사적·문화적 상황에서 예술적, 미학적, 그리고 윤리적 체계를 생성시켰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제 우리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에 논리적인 분열은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110쪽


신경체계 내에서의 선택은 유전을 통해 전해 내려온 가치평가시스템과 지각에 기반을 둔 기억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이 체계는 지향성, 신념, 욕망 그리고 감정상태와 더불어 기능하다. 또한 이 체계는 외부환경에서 발생하는 우발적인 사건만큼이나 개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 체계는 규칙성뿐만 아니라 유일한 상태를 보이며, 그 상태의 일부는 더 이상 달리 환원될 수 없는 주관적이고 사적인 것으로 경험됩니다.


111쪽


우리는 보통 정신적 사건이나 현상적 경험이 마치 어떤 원인이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의식은 재유입되는 역동적인 핵심부에서 발생하는 신경세포의 통합적 활동과 더불어 생기는 하나의 과정이므로 의식 자체는 원인이 될 수 없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시적 차원에서 물리적 세계는 인과적이지 않다. 오직 물질과 에너지수준의 교류만이 인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시상피질핵의 활동은 인과적이지만 그에 수반되는 현상적 경험은 인과적이지 않다.


156쪽


의식이 있는 인공물을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그러한 인공물의 의식이 꼭 살아 있을 필요가 있는가? 살아 있는 시스템은 자기복제가 가능하며 자기복제는 선택의 원리를 따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개발된 뇌기반장치가 (현재로서는 의식적 시스템이 가져야 하는 기본조건에 부합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지침을 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인공물의 의식이 반드시 살아 있을 필요는 없다는 점일 것이다. 지각과 운동시스템을 가진 몸이 주어졌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기초적인 기저핵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시상피질이 지닌 정도의 높은 복잡성이다. 현재로서는 이런 복잡성을 실현할 수 없다.


157쪽


어떠한 경우이든 그러한 실체가 제작되었을 때 그것이 지각과 튜링의 논리가 합쳐진 복합체, 소위 지각-튜링기계로 통합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정말 흥미롭다. 이런 복합체는 인간이 만든 소프트웨어프로그램을 따르는 컴퓨터와 같은 구문론적 기계의 강점과 새로운 상황과 연한할 수 없는 입력을 처리할 수 있는 인공물의 의미론적 능력을 합쳐놓은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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