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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환] 부동산과 시장경제(2006)

독서일기/부동산

by 태즈매니언 2017. 10. 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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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라 금요일엔 세종시에서 일산까지 장거리 퇴근하다보니 집에서 책을 읽을 마음이 안생기는데 요즘 아빠가 그리는 건설이야기로 더 힙해진 실친 Dongshin Yang이 추천한 <부동산과 시장경제>는 손바닥만한 페이지에 125쪽 분량이라 가볍게 집어들었다.(당장 내일이 반납일이기도 하고 ㅎㅎ) 내가 지금 직장에 들어온 게 2013년이고, 이 책을 쓰신 서승환 교수님께서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계셨던 게 2013.3.~2015.3.이라 대화나눠본 적도 없지만 괜히 반가워인 면도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2006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내게 어쩜 이렇게 딱 맞을 정도로 필요한 책을 만났나 싶을 정도다. 서승환 교수님은 이 얇은 책을 통해 헨리 조지의 토지단일세나 토지공개념 등의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믿음은 자유지만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해보자고 품위있게 권유하신다. 부동산이 일반 재화와 일부 다른 특성이 있지만 시장경제의 범주 안에서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재화라는 경제학적 설명이 왜 타당한지 잘 설명해주시고.


특히 2006년에 이미 최고가격제의 폐해와 분양가 상한제가 같은 것임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셨고, 건설사도 알 수 없는 원가를 공개하라는 주장의 허망함도 이미 날카롭게 지적하셨는데 이 두 가지 정책이 아직도 좀비처럼 공론장에서 걸어다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 또 공공이 주택환매권을 갖는 공영개발 방식과 토지임대부 주택분양정책의 허점에 대한 논박도 마찬가지다.


대학 시절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고 감동했었고,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 공약과 지방혁신도시 건설 등 지방균형성장정책을 지지했었다. 지금은 얼마 전 읽었던 대니얼 예긴의 <시장 대 국가>를 통해 시장주의의 세례를 받았고(당장 김남훈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파이낸셜 타임즈 기자와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 Ricardo Haussmann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정부실패의 처참한 사례를 떠올려 보시라), 주중에 세종시에 살면서 지방균형성장정책의 상징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몸소 체험하고 있는 처지다.


글레이저가 <도시의 승리>에서 주장했듯 도시권간의 경쟁이 격화되는 시대에 재분배 정책과 같은 목적을 지닌 공간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저자가 제안하는 어차피 다가올 지방소멸의 시대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에서 분권의 대안을 시도해보는 것이 나아 보인다. 효용을 상실한 지방의 기초지자체, 8대2의 예산배분 구도를 바꾸는 게행정수도이전이나 혁신도시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세종시에 분양받은 사람이지만 ㅠ.ㅠ)


문재인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외교와 경제분야의 정책에 걱정이 많다.이 책을 읽고나니 이미 잘못된 길이라는 게 '경제학의 법칙'으로 충분히 증명된 것 같은데 왜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한 예외 사례를 만들어보겠다고 무리한 시도를 하는지 안타깝다. 전 정권의 인사지만 차라리 서승환 교수님을 다시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하셨으면 싶을 정도로.


그리고 이 책이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연구에세이>의 59번째로 출판되었던데 학계의 명망있는 학자들이 이렇게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를 좀 더 많이 쓰도록 하는 인센티브가 부여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대학이나 교수의 평가가 SCI, SSCI 논문에 치우쳐 있고, 아니면 연구실 대학원생 인건비, 학술교류비용, 해외 학회 출장비용 등을 마련할 수 있는 연구프로젝트 수주에 힘쓰게 되고. 이를 제쳐두고, 단 한 줄이라도 잘못쓰면 망신당할 수도 있고, 힘들게 출판사 구해도 1만부도 팔기 힘든 교양서를 쓸 유인이 너무 없다.


구구절절 동의하는 부분, 그리고 명쾌한 설명에 감동받은 부분이 정말 많아서 노트 필기 삼아 평소보다 길게 인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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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토지 시장을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이 얼마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거래되는 도시용 토지의 양이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 도시용 토지는 비도시용 토지의 용도전환으로 공급되므로 공급량을 조정할 수 있다.


23쪽


누가 보아도 불로소득인 로또복권 상금에 부과되는 세율이 33%인데, 1세대 2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양도세는 최소 50%에 달한다. 부동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을 전부 불로소득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인데도(노력의 결과가 저축에서 부동산으로 바뀐 경우가 많을텐데) 부동산에 대해 로또복권보다 높은 세율을 부과해야 할 정당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40쪽


개발부담금은 개발사업을 하는 사업자에게 부과되므로 개발사업 전에 이미 이득을 챙겨 떠난 투기꾼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개발계획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미등기 전매 등의 방법으로 이익을 챙겨 지가를 올리는 행위가 문제인가, 아니면 정상적으로 개발사업을 하는 개발사업자가 문제인가? 개발부담금제의 원래 취지대로 한다면 개발이 이루어지는 지역 내의 지가 상승뿐만 아니라 개발지역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도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개발지역 주변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야말로 전형적인 우발이익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개발이익 환수를 생각한다면 부과 방법은 토지초과이득세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보나마나 헌법불합치다.


51쪽


지가상승률과 부동산 정책을 동시에 살펴보면 지가상승률이 높았던 해에는 규제 강화책이,지가상승률이 비교적 낮았던 해에는 규제 완화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한 해도 예외가 없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57쪽


선제적인 정책을 쓰는 경우는 최선의 결과가 본전치기이다. 예측이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혹은 예측은 정확하게 되었는데 집행된 정책이 적절하지 못한 경우는 모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경우 정책집행자의 입장에서 볼 때 최선의 전략은 무엇인가? 예측모형의 예측결과를 항상 장래의 시장은 안정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선제적인 정책을 쓸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다시 말해 절대로 선제적인 정책을 집행하지 않고 뒷북치기식으로 나가는 것이 우월전략이 된다.


60쪽


지나치게 세밀한 정책을 만드는 배경에는 정책당국자가 부동산 시장을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감은 대부분 허망한 것이다.


66쪽


강남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엄밀하게 말해서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이 아니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정책이 아닌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형식적 평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의 하나는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68쪽


미국의 경우 재산세는 지방정부가 지방 공공재(local public good)를 공급하기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으로써 응익세(benefit tax)의 성격을 갖는다. 재산세를 낸 만큼 혜택을 받는다는 것인데, 실제로 재산세를 많이 내는 지역은 지역 생활환경 수준도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와 사정이 다르다. 특히 실효세율 1%를 목표로 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는 국세이며 추가 확보되는 종합부동산세 재원은 거래세 감소분 보전과 재정력이 취약한 지자체의 재원 확충을 위해 전액 교부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곧 종합부동산세가 응익세가 아니라 부유세라는 것을 의미한다.


71쪽


최근 들어 부동산 갈등론이 야기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급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단지개발을 통해 주택을 공급하려 하는 경우 개발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며 적절한 개발이익이 보장되어야 주택 공급도 가능하다. 개발이익이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수준을 초과하고 있다면 이를 세금으로 적절하게 환수하면 된다.


80쪽


분양가를 규제할 때 확실하게 이득을 보는 사람은 최초 분양자뿐이다. 주택공급업자는 자기 마음대로 값을 쳐서 받을 수 없으니 물론 손해이다. 장기적으로 주택가격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니 분양받지 못한 모든 국민들도 손해를 본다.


83쪽


원가를 굳이 파악하려면 이 건설업체가 수행한 모든 사업을 한 데 놓고 보는, 이른 바 결합 및 연결 재무제표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나 현실적으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원가를 정하는 것도 어렵지만 설혹 원가를 안다고 해도 원가를 얼마 초과하는 것이 폭리인지를 결정하는 일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무엇이 폭리인지를 정할 능력이 있는 것은 시장 뿐이며,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부와 단체가 없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이 끝난 사실이다.


104쪽


어느 기업이 수도권에 진입하는 것을 강제로 막으면 지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 나간다. 자본의 국외 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의 진입을 강제로 막는 방식의 수도권 정책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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