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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최세희 역]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2014)

독서일기/유럽소설

by 태즈매니언 2017. 11. 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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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소설을 못 읽었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줄리언 반스의 작품이라 기쁘게 집어들었다.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인데도 왜 이리 어려운지. 조금 읽다가 몇 페이지 앞으로 돌아가는 등 고생스럽게 읽었다. 


    번역판 제목의 '그렇게'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내 해석이 맞는지 갸웃하게 만드는 단어라, 자신이 사용된 문장의 뜻을 모네의 수련그림처럼 뿌옇게 흐리는 부사 같다. '이렇게'나 '저렇게'도 마찬가지고. 


    차라리 원제인 <Levels of Life>으로 하지. 이 책을 이루는 세 편의 작품이 “The Sin of Height”, “On the Level”, “The Loss of Depth”인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제목인데. 


     초기 열기구 비행사와 열기구에 탑승한 인기 여배우, 최초의 항공사진사의 활약에 대한 짤막한 역사평설, 실존했던 인물들을 바탕으로 창조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1인칭의 자전적인 에세이. 이 전혀 다른 장르의 글 세 편이 묶여 책이 되었다.


    방향을 조정할 수 없어 기류에 몸을 내맡긴 불안정한 열기구. 열기구는 자전거처럼 주역으로서의 자리를 내놓고서도 여전히 쓰임새가 있는 물건과 다르다. 로켓엔진으로 대기권을 이탈한 우주비행선이나 수심 200미터 아래에서 인간의 삼차원 이동을 가능하게 한 잠수함처럼 전율과 영광을 선사했지만 이들과 달리 엔진으로 조종하는 중비행기의 등장으로 박제로만 남아버린 존재에게 반스는 왜 유독 매혹됐을까? 


    반스는 세 편의 글을 통해 결혼생활의 흐름을 하늘로의 비상, 하늘을 기억하며 보내는 지상에서의 달콤함, 그리고 죽은 이들의 유골과 함께 살아가는 카타콤 거주민처럼 사실상 지하실에 유폐된 단계로 표현하고 있다. 


    다 읽고나니 남겨진 이에게 불쾌할 수 있는 뜻때문에 요즘에는 사용하지 않는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단어를 숄처럼 두르고 있는 늙은 남자의 외로운 뒷모습이 연상된다. 반스덕분에 '미망인'이라는 단어를 '과부'의 동의어가 아닌 '홀아비'의 동의어로도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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